바이러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이미 여러 번 겪었으니 어찌 보면 안 오는 게 이상한 거였다. 남극 대륙과 가까운, 춥고 외진 섬에 인간이 발자취를 남기는 순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이 섬에만 살던 <앤탁틱디오스흡혈박쥐>는 펭귄보다 따뜻하고 맛있는 인간의 피에 환장하게 되었다. 수백 마리의 박쥐 떼가 두툼하게 가려진 방한복 사이에 드러난 인간의 얼굴 살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한 촬영팀들은 서둘러, 타고 온 보트를 몰아 본선으로 도망갔다.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재앙은 지금부터였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도착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팀은 2주간의 휴가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서 돌아온 뒤 대략 90일쯤, 촬영팀 직원들이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고열과 복통, 피부 발진, 홍반, 괴사, 오심, 구토, 설사, 출혈까지, 바이러스 감염 질환의 모든 증상을 겪은 그들은 병원 입원 후 며칠 만에 모두 사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게 어느 정도의 재앙인지는.
아일랜드에서 시작한 전염병은 며칠 만에 영국 전역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앤탁틱디오스흡혈박쥐>의 학명에서 이름 지어진, <디오스 바이러스>에 의해 전 세계 1억의 인구가 사라졌다. 통계에 의하면, 앞으로 1년 이내에 10억의 인구가 사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각국의 모든 국경이 봉쇄되고, 도시에 사는 인간은 집에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인간의 행위가 멈췄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시간문제였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무척 똑똑했다. 그리고 나는 대단히 성공한 사업가다. 나는 적은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나는 영악하고 냉혈한이다. 나는 더러운 빈민가에서 자라, 아무리 울어도 내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깨우쳤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학교 폭력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깨달은 나는, 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가차 없이 처박아 버리고, 녀석들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갖다 바쳤다. 그들의 따까리가 되어 나만큼 비천하고 만만한 학우들을 쑤시고 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돈이 권력이라는 사실을.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 그리고 보았다. 불법 온라인 음란사이트가 대단히 큰돈을 번다는 것을. 개발자를 끌어모으고 가출 여자들을 섭외하여 사이트를 개설했다. 물론 바지사장도 내세웠다. 돈이 쏟아졌다. 하지만 절대로 국내에서는 오래 할 수 없는 것. 서버를 외국으로 옮겼다. 그때 나는 루마니아를 알게 되었다. 연이어 불법 도박 사이트도 개설했다. 나는 루마니아와 한국을 오가며 떼돈을 벌었다. 학창 시절 나를 두드려 패던 녀석들이, 이제 모두 내 밑에서, 굽신거리며 내게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결코 나를 그냥 둘 리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