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단편소설
동굴
집사와 알베르는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동굴에는 곳곳에 CCTV가 마이크와 함께 설치되어 있다. 카메라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촬영 영상은 자동으로 메인 서버에 저장이 되었다. 나는 모니터실에서 그들은 지켜봤다. 집사는, 거의 여든이 다된 할아버지다. 그는 알베르를 지긋이 쳐다보며 천천히 말을 했다.
“이곳은 원래 공포 테마파크로 만든 인공 동굴입니다. 고객님도 잘 아시다시피 드랴큐라가 우리 성의 메인 테마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알베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므로, 가시는 중간마다 무서운 장면이 연출될 것입니다.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인형일 뿐입니다.”
“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들은 소곤거리듯이 말을 했지만 내 귀에는 속속 들어왔다. 나는 마이크 성능에 만족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린다면, 이 동굴은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즉, 10단계입니다. 그리고 단계마다 2개의 구멍이 나타납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구멍. 그냥 재미로 만든 거니 당황하지 마시고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시면 되십니다.”
“어느 곳으로 들어가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건가요?” 알베르는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집사를 쳐다봤다.
“네, 한 곳은 다음 단계로, 나머지 한 곳은 빙글빙글 돌아 다시 원위치로 나옵니다. 그러니 잘못된 구멍으로 들어가셔도, 어차피 나와서 처음에 선택하지 않은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시면 다음 단계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쉽죠?”
“아,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혹시 해답지 같은 거 있지 않나요? 각 단계에 무슨 색 동굴로 들어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알베르는 잠시 생각하더니 노인에게 물었다.
“해답은 없습니다. 알베르 님이 구멍 입구에 멈추는 순간, 바닥에 설치된 발판이 시스템에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메인 작동 프로그램이 무작위로 빨간색과 파란색을 순간적으로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게 정답인지 모릅니다. 그 순간 컴퓨터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꽤 신경을 쓴 부분이었다. 나의 멋진 동굴 시스템. 나는 이제 내가 설계하고 만든 이것이 내 생각대로 진행되는지를 설레는 가슴으로 지켜보고 있다.
“네, 알겠습니다.” 알베르는 마지 못한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각 구멍의 입구에는 알약이 놓여 있습니다. 그 약은 설탕에다가 약간의 진정제 성분을 추가했습니다. 동굴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여러 가지 기괴한 형태를 연출하다 보니 일부 관람객들이 본의 아니게 극심한 공포를 느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약을 준비했으니 혹시 불안감이 커지거나 공포를 제어할 수 없다고 느끼시면 약을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내 비장의 무기. 그건 진정제가 아니라 환각제였다. 공포를 더욱 두렵게 느낄 수 있는….
집사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 그리고 이 동굴에 한 번 들어가게 되면, 출구는 딱 하나입니다. 즉, 뒤돌아 나올 수는 없습니다.” 집사의 말에 알베르는 당혹스러운 듯 그의 얄팍한 입술을 말아서 입술로 자근자근 씹기 시작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잘못되어도 1시간 내에는 출구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행운을….” 집사는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알베르를 쳐다봤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믿고….” 알베르는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듯이 결심을 하며 대답했다.
집사는 나가고 이제 알베르 혼자 동굴 입구에 남았다. 그 순간, 동굴 입구의 문이 쇳소리를 심하게 내며 열렸다. 그는 약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발을 옮겼다. 그가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는 놀란 듯 주춤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때, 안내 방송이 울렸다.
“블라드 체페슈 지하 동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0초 뒤에 당신 앞에 빨간 구멍과 파란 구멍이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의 현명한 선택이 당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동굴 내의 그의 행동은 모두 녹화가 되고 있었다. 나는 느긋이 앉아 내 첫 고객의 반응을 살펴봤다. 알베르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의 기대에 꼭 들어맞는 인간이었다.
이윽고 빨간 구멍과 파란 구멍에 조명이 들어왔다. 작지만 그 끝을 알 수 없어 보이는 구멍 속을 알베르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빨간 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성인 어른이 수그려서 겨우 들어갈 정도의 높이를 그는 끙끙거리며 천천히 나아갔다. 점점 깊게 들어갈수록 높이는 올라갔으나 폭은 좁아지고 조명은 더욱 검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짐승의 울부짖음과 바람 소리가 흘렀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옆에서 튀어나와 그를 옭아맬 듯한 분위기였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완전히 겁에 질려 넋이 나간 듯 보였다. 나는 그를 지켜보며 참을 수 없을 만큼 웃음이 나왔다. 나의 완벽한 늪에 그는 완전히 빠진 듯 보였다.
나는 이제 그를 슬슬 골탕 먹이며 갖고 놀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패널에 있는 <블러드>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동굴 천장에서 핏방울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100% 순수 사람 피였다. 흔한 게 사람 피인데 굳이 값비싼 가짜 피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피는 알베르의 머리와 어깨를 적시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붉은 조명 속이라 물방울로 생각했다가 냄새를 맡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의 얼굴을 줌으로 당겨 확대된 화면을 보았다.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 장면이었다. 악마에게 혼이 다 뺏긴 표정이었다. 그는 몇 번 더 주춤하며 비실거리다가 뭔가 작정을 했는지 갑자기 속도를 내어 뛰기 시작했다. 어둡고 좁고 울퉁불퉁한 동굴 속에서, 그는 부딪히고 넘어지고 괴성을 지르다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필사적으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나는 이 모든 영상이 고스란히 촬영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백마 탄 왕자처럼 훌훌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가 겨우 빠져나온 동굴은 바로 그의 출발지였다. 그는 빙글빙글 돌아 원위치에 다시 섰다. 그의 옷과 살갗은 군데군데 찢기고, 다리는 서 있기조차 힘들게 부들거렸다. 그는 동굴 입구에 놓여 있는 알약을 보자마자 대번에 삼켰다. 그리고는 파란 구멍으로 비실거리며 들어갔다. 그가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푸른 조명은 서서히 검푸르게 변하였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그는 이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기적어기적 나아갔다.
나는 이때, <아이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동굴의 바닥에 핏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질퍽질퍽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닥의 핏물은 얼어붙기 시작했다. 쩍쩍 발이 달라붙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베르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나는 <미끄럼> 버튼을 눌렀다. 동굴의 바닥이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이 동굴을 이렇게 훌륭하게 꾸민 할리우드 특수 제작팀에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알베르는 잠시 버둥거리다 속절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부정하고 모난 동굴을 그는 수십 차례 받혀가면서 튕기듯이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는 바닥에 나 뒹굴어진 채로 한동안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이런 방송이 들려왔다.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1단계를 무사히 건너셨습니다. 2단계도 변함없이 빨간 구멍과 파란 구멍이 60초 뒤에 나타났습니다. 당신의 현명한 선택이 당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알베르는 악을 쓰며 겨우 일어났다. 그는 또 일어나자마자, 구멍 입구에 놓인 알약을 꼴딱 삼켰다. 아무리 약한 환각제라고 하지만 벌써 2알을 삼킨 그는, 허공에 뭔가가 나타났는지 팔을 휘우 적 휘우 적 저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파란 구멍으로 먼저 들어갔다. 나는 그를 보면서 물에 빠진 생쥐가 불현듯 생각났다.
어릴 적 나는 저지대 빈민촌에 살았다. 낡은 집과 집 사이에 아주 좁은 도랑이 흘렀는데 그곳은 쥐의 천국이었다. 나는 집안 어디를 가든지 쥐와 마주쳤다. 변소에도, 부엌에도, 안방에도, 다락방에도 내 시선이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쥐들이 몰려다녔다.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았던 아버지는, 유난히 쥐를 무서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매일 쥐덫을 놓았다. 철사로 엮어 만든 길쭉한 직육면체의 쥐덫 안에 미끼를 달아 놓고 문을 열어 두면 어김없이 다음날, 까만 눈동자에 겁에 잔뜩 질린 쥐가 걸려들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녀석을 곱게 죽이지 않았다. 빨간 대야에 물을 절반쯤 받아 놓고는 쥐덫을 거기에 담가 두었다. 그리고 꼭 나를 불렀다. 우리 부자는 다정하게 앉아, 좁은 우리 안에서 숨을 쉬려고 코끝을 하늘로 향한 채, 발버둥 치며 수영하는 쥐를 재밌게 감상하곤 하였다. 그러다 결국, 쥐가 죽으면 아버지는 가죽을 벗기고 손질을 한 다음, 연탄불에 쥐 고기를 구웠다. 그 향긋한 향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고기가 빨리 익기를 학수고대했다. 특히, 나는 쥐의 대가리를 아주 좋아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던 나의 아버지는 모든 쥐의 대가리는 나에게 양보하셨다. 나는 쥐 대가리를 꾹꾹 씹으며 아버지의 사랑에 감복하곤 하였다. 그리고 공장에서 어머니가 퇴근해서 오기 전까지 우리는 말끔히 모든 증거를 없앴다. 어머니는 그 집을 끔찍이 싫어하셨지만, 아버지와 나에게는 사실 천국 같은 곳이었다. 나는 잠들기 전, 항상 내일이 빨리 오기를 빌었다. 그러면서 마치 쥐 대가리를 씹듯이 쩝쩝거렸다.
나는 지금, 처량하기 그지없는 몰골로 구멍에서 비실거리고 있는 알베르를 보면서 그때처럼 입을 쩝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쉐프를 호출했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나는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저기 저 화면에 보이는 녀석이 죽으면, 몸뚱이는 떼고 대가리만 장작불에 구워 오늘 저녁 메인 요리로 제게 올려주세요.” 그러자 쉐프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나는 다시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이번에는 <워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동굴이 급격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발악하면서 잠시 버티는가 싶더니, 거의 다이빙하듯이 밑으로 떨어졌다. 좁고 깊은 물웅덩이였다. 마치 우물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는 허우적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 장면을 지켜봤다. 어릴 적, 나를 행복의 도가니로 집어넣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 나는 등골이 오싹할 만큼 짜릿한 쾌감에 오줌까지 지릴뻔하였다.
알베르는 웅덩이 벽면을 손끝으로 잡고 올라오려고 하였지만 미끄러운지 계속해서 빠져들기만 하였다. 나는 그가 힘들게 올라오다 결국 미끄러질 때마다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그를 여기서 익사시킬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겨우 2단계였다. 적어도 5단계 정도는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의 멋지고 훌륭한 동영상 작품을 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쉽지만, 이쯤에서 <밧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동굴 천장에서 밧줄이 천천히 웅덩이 한가운데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알베르는 마치 생쥐처럼 두려움에 가득한 눈동자로 힘들게 뭍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한동안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의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허망한 인생이 곧 종료될 줄도 모른 채 그는 그저 헛된 희망을 품고 저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알베르는 비실거리며 다시 동굴 입구에 섰다. 그곳은 2단계 입구. 그는 이번에도 한 바퀴 빙글 돌아 원위치로 온 것이다. 그는 다시 알약을 하나 집어삼키고는 빨간 구멍으로 천천히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들어갔다. 나는 이쯤에서 내가 고안한 이 멋진 동굴의 비밀을 하나 정도는 살짝 흘리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빨간 구멍이던 파란 구멍이던 어디를 선택해서 들어가더라도 첫 선택은 항상 빙글빙글 돌아서 원위치로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10단계를 모두 통과한다면, 당신은 모두 20번의 구멍을 무조건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만든 이유는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