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Laetitia
“늦었네.” 창으로 바다가 넘실거린다.
“시간이 갑자기 빨리 가.” 거짓말. 따끈한 구들 방에 외풍을 즐기며 그냥 뒹굴었다. 문갑 위에 정연히 놓인 탁상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누에고치 같은 베개에 엉덩이를 댄다. 모서리, 파리가 투명 거울을 탈출하려고 애를 쓴다. 꾀죄죄한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좋은 일이지 뭐.” 분홍색 일회용 커피잔에 ‘Laetitia’라는 글씨가 하얗게 새겨졌다. 밑에는 ‘하늘을 닮은 바다를 담는다’라는 문구가 그려졌다. 미자의 입술 자국도 선명하다. 번데기처럼 뭉툭하다.
“오래되었어?”
“아니, 뭐 여기 분위기 좋아하잖아. 미리 좀 즐겼지.” 까맣고 못생긴 재떨이에 꽁초가 하나, 둘, 셋, 네 개가 널브러져 있다. <Leonard Cohen>의 <Boogie Street>가 흐른다.
‘o my love, I still recall
The pleasures that we knew’
“아침은?” 지나치게 둥글고 짙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녀가 빤히 쳐다본다. 오후 3시가 넘었다. 홀은 관광객이 흘리고 간 부산함이 떠돈다. 디귿으로 톡 튀어나온 벽에는 길쭉한 그림이 걸려있다. 와트만지에 템페라로 그린 듯 낯설고 몽환답다.
“샌드위치.”
“그건 간식이지. 난 밥을….” 여자가 팔짝 뛰며 휴대전화를 보여준다. 화려하지만 무척 작은 양의 요리가 흰 접시에 담겨있다. 사치가 흘러내린다. 포크나 수저로 장식을 부숴, 입에 넣는 행위가 죄스럽다.
“비싸지 않을까?”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내가 절반 낼게.” 앙상한 어깨에 걸친 민어깨 블라우스가 지쳐 보인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녀는 제안하고 나는 받는다. 그녀는 검색하고 나는 결과를 본다. 여자는 선택하고 남자는 수긍한다. 여자는 세상에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남자는 설득당하는 데 익숙하다.
“마셔야지?” 입꼬리에 번진 루주를 닦아 주고 싶다. 그녀는 항상 과하게 덧칠을 한다. 바닷바람에 행인들이 멈칫거린다. 줄지어 선 워싱턴야자 잎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춘다. 남녀가 손을 잡고 우두망찰 서성거린다. 나는 유리 너머 펼쳐진 요란한 풍경을 주시하며 천천히 일어나 1층 주문대로 향한다.
“내 것도.” 그녀의 메뉴는 거의 변함이 없다. 아메리카노. 늘 달고 다닌다. 집에서도 물 대신 마신다. 물을 과하게 부어, 숭늉같이 해서 마신다.
그녀의 블로그는 온통 커피투성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마치 세상의 모든 커피를 다 맛볼 요량으로 카페를 전전한다. 그게 일주일에 단 하루라는 게 천만다행이다. 주 5일 근무자였다면, 사진이 2배로 많았을 것이다. 휴대폰과 카페. 미자의 세상이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즈음 보통 사람들의 세상인가?
“뤼자님이 모닉끌라스 카페에서 인증샷 올렸어.” 그녀를 추종하는 제자.
“어떻데?” 그녀 앞에 길고 부서지기 쉬운 커피잔을 놓으며 물었다. <Gary B.B. Coleman>의 <The Sky is Crying>이 막 흐물거리며 떠다닌다.
‘Can't you see the tears roll down the street’
바다는 따갑고 하늘은 눈부시다. 그녀에게 눈을 돌리자 검은 안개에 앙상한 팔다리만 형체로 나타난다.
‘더럽게 눈부신 하늘이네.’
“매번 똑같아.” 여자의 댓글을 채우는 추종자들은 감탄사밖에 모른다.
<쿠오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선지자가 온라인에 남긴 흔적을 순례자들은 따른다.
“그래도 뭐 다른 게 있을 거 아냐.” 미자는 입술을 뭉툭하게 모으고 눈을 천장에 둔다. 옆 테이블을 채운 중년 커플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투명 벽으로 차단된 공간. 흡연석. 내부는 막히고 외부는 베란다로 열려있다. 열린 곳으로 거친 바람 소리가 쇳소리같이 들린다.
“플래버(Flavor)가 좀 약하데. 와이니(Winey)도 거의 못 느끼고. 한파 때문이야.”
여자는 와이니에 푹 빠져 있다. 커피 품질의 잣대. 와인은 좋아하지도 마시지도 않지만, 커피에서 시큼한 와인을 찾는다. 구수한 담배 연기가 가득하다. 베란다에 머물던 세 녀석이, 꽁초를 허공에 튕겨내고, 미자를 끈적하게 쳐다보며 지나간다. 여자의 드러난 허벅지는 끌림이다.
“한파가 왜?”
“브라질에 한파가 두 번이나 들이닥쳤대.”
“브라질 한파가 왜? 와이니는 블루마운틴에 많다고 했잖아.” 참고로 블루마운틴은 자메이카 산임. 여자의 미간에 세로줄이 선다. 팽팽하던 이마가 쪼그라든다. 짙은 화장이 가면처럼 툭 떨어질 것 같다.
“바보야! 경제학과 나온 거 마저?”
“...”
“내가 뭐랬지? 커피는 배합이 중요하다고.”
“???”
“커피 최대 생산국에 한파가 오면 생산량이 줄고 생산량이 줄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배합이 달라지지. 비싼 아라비카 대신 값싼 로브스타가 대신하지. 그중에 가장 비싼 블루마운틴 양도 당연히 줄겠지. 이 바보야.” 대단한 <나비 효과>.
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 브라질에서의 약간 쌀쌀한 날씨가 (절대 우리네 엄동설한에 닥치는 한파가 아님) 지구 반대편 한 소녀의 도도한 취미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가?
나는 그 순간 엉뚱하게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E = mc²> 이 생각났다. 이런, 질량이 에너지라니! 그럼 나도 에너지네. 내가 에너지가 되면 이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나오네. 지구를 수십 번도 더 산산조각 낼 정도의 에너지. 하지만 그는 이론 물리학자이지. 증명은 하지 못했지. 그랬다지. “내 생전에 증명하기는 힘들 거라고.” 웬걸. 당신이 눈 감기 전에 이미 증명뿐만 아니라 시제품까지 만들었지. 히로시마 원폭 투하. 덕분에 한가지 불안이 더해졌지. 인간이 세상을 한순간에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한 인간의 날갯짓이 후대인들의 마음을 짓밟을 수도 있는가?
“비웃는 거야?” 인간은 놀랍게도 찰나와도 같이 스치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어낸다. 다만 엉뚱하게 해석할 뿐.
“아니,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
“무슨?” 입술을 엷게 편다. 이즈음에 생긴 그녀의 버릇. 모든 사진에 똑같은 입술 모양.
“멸망한 지구.”
“또, 영화 봤구나!”
“아니, 난 단지 커피나무가 사라진 브라질….” 나의 거짓말.
“제발, 그런 황당한 영화 좀 보지 마!” 인간은 축적된 경험으로 정의한 각자의 상대방을 소유한다. 그는 내가 아니다. 나는 종종 심하게 왜곡한 나를 간직한 지인을 만난다. 그건 고통이다. 그리고 점점 참을 수 없게 된다. 물론 미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척 사랑스럽다. 좀 별스럽게 진한 화장을 하고 무척 짧고 얇은 옷을 걸친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아, 예 예 예…. 네 잠시 제주도 내려왔습니다. 네 네 네 뭐 별일은 아니고…. 네 네 네 골프 좀 치고…. 근데 바람이 세서…. 네 네 네 맞습니다. 매번 오면 절반은 못 치고 갑니다…….” 중년 아저씨는 우렁차게 전화 통화를 한다. 모서리 파리는 아직 발버둥 친다. 뒤에 열린 공간을 두고 투명하게 막힌 공간에 몸을 있는 힘껏 비빈다. 애석하지만 바라볼 뿐. 신의 마음.
“알잖아. 그땐, 지구 멸망 후의 세상을 그린다고….” 웹 소설가. 직업은 아니다. 부업. 아니 엄밀히 말하면 취미. 아직 이걸로 돈을 못 벌었다. 빈약한 상상력 때문. 그래서 무척 많은 SF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거 중단했잖아?” 연재는 18회에 멈췄다. 관심 2명. 댓글 0. 조회 평균 10회 미만. 그나마 18회까지 간 건 단 한 줄의 댓글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듯한 인간 군상의 우울한 미래.’
“네 네 네, 그건 좀 곤란하고요….” 중년의 여자가 남자의 담배를 대신 끈다.
“그래서…. 좀 사실적인 거 쓰려고.” 나는 휴대폰에 넷플릭스를 띄워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뭐야, 전부 사형수 얘기네.” 한순간의 실수 혹은 멍청한 짓으로 인생이 완전히 꼬여 버린 인간들의 이야기. 나는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감방에서 몇 년을 보내다 우연히 DNA 감식이라는 첨단 과학 덕분에 풀려나게 된, 그런 뻔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려는 게 절대 아니다. 나는 진짜 살인을 한 그들의 뇌 속에 잠재된 폭력성을 분석하고 유추하고 잘게 쪼개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의 능력 밖이다. 지난 2주 동안 36편의 관련 영상을 본 후, 결론을 냈다. 글쓰기 포기. 나의 에너지는 가끔 지나치게 나를 높게 본다. 능력 미달.
“그런데 포기했어.”
“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아.”
“당연하지.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좀 써!”
“맘마미아 같은?” 미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여자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우울한 사춘기를 마감했다. 왕따로 점철된 지긋지긋한 학창 시절의 종말. 적개심이 사라졌다. 로맨스, 지중해, 뜨거운 태양, 음악, 댄스에 퐁당 빠졌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귀밑과 손등에 손톱만 한 문신을 새겼다. 7개의 귀걸이를 하고 하얀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보온용 옷은, 최소한의 가림 용으로 빠르게 바꿨다. 굽은 올라가고 머리는 물들었다. 테크노에 심취하고 호세쿠엘보 테킬라를 마시며 손등에 바른 소금을 홡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이야기다. 작년 이맘때, 두 번째 데이트에서.
“하 하 하 하….” 남자의 금니가 반짝인다. 미자는 거슬리는 듯 실룩거리고, 중년의 여자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재떨이에서 푸른 연기가 한줄기 올라온다. 남자의 배는 지방으로 충만하다. 군 턱이 풍요롭다. 남자는 고개를 꼰다. 해말갛게 생긴 여자의 코는 누가 봐도 불편하게 뾰족하다.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털어준다. 헤어젤이 흘러내릴 듯 묻어있다.
두 쌍의 흡연자들이 들어왔다. 다정히 불을 붙이고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허공에 연기를 토해낸다. 쑥덕공론이 이어진다. 섬뜩할 정도로 마른 여인은 지나치게 큰 유방을 지녔다. 다시 깨질듯한 큰 웃음. 입술의 달싹임보다 턱이 더 까분다. 단추가 하나씩 엇끼워진 모습의 여인은 남자의 어깨에 눈물을 훔친다.
“그런 거 쓸 수 있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물론 나는 쓸 수 없다. 하지만.
“그럼 당연하지.”
“나를 주인공으로 해서 해봐. 비련의 주인공은 말고.” 여자는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그리고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일어선다.
‘I got a bad feeling, my baby don't love me no more.
Now the sky's been crying, the tears rolling down my door’
파리는 이제 지쳤다. 그냥 공간에 붙어있다. 그러다 별안간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거리며 돌기 시작한다. 나는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냅킨으로 녀석을 잡아 죽였다. 나는 선하게도 녀석의 고통을 없앴다. 할리우드의 멍청이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숱한 악당들을 죽였다. 정말 멍청한 짓이다. 죽음 뒤는 아무것도 없다. 즉, 고통 따위가 있을 수가 없다. 진정한 정의는 살아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흉악범들에게는 자연사할 때까지 성심성의껏 잘 돌보며 독방에 가두는 게 진정한 형벌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 지나치게 느리게 가는 시간.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누가 말했지? 아 그렇지, 아인슈타인. 느리게 가는 만큼 고통은 늘어난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36편의 사형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나의 시간은? <더럽게 느리다>.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미자와 보내는 시간을 빼면 말이다.
흡연자들이 흘리고 간 과자 부스러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비둘기 2마리가 나타났다. 비둘기는 세찬 바람 속에 호르르 부풀려진 가슴 털로 비실거리며 바닥을 쪼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