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의 남자

하미자

by 남킹

하미자는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녀의 본명은 김인자. 미국명은 <엘리자베스 킴 하일>. 중학생 때 계부를 따라 미국 미시간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곧바로 한국으로 왔다. 재작년 시월이었다. 여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나는 자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투박하고 수수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책상 위에, 손바닥만 한 투명 아크릴 액자가 놓여 있었다. 헤벌쭉 웃고 있는 그녀 옆에 키가 한 뼘쯤 더 큰 동생이 우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다지 닮은 것 같지 않은데?” 나의 농담에 그녀는 정색했다.

“사진이 그렇게 나왔을 뿐이야. 잘 봐봐. 키 빼고는 나랑 판박이니까.”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직 미시간주에 살고 있다. 생부는 오래전에 이혼하여 추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이혼 후 만난 적은 없고?”

“음…. 없어.”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사도 모르고?”

“중국에 있다는 얘기만 들었어. 그것도 먼 친척한테서.” 그녀는 작고 까만 눈을 껌뻑거렸다.


미자를 알게 된 건, 다분히 극적이라고 해야겠다. 아침부터 안개처럼 뿌리던 가랑비가 온종일 습한 기운을 실내 구석구석에 흘리고 다니던 날이었다. 락 카페 중앙 홀에 들어선 나는, 맞은 편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있는, 진한 화장을 한 여인을 보았다. 가슴 철렁하게 노출한 의상이었다. 그녀는 연신 깔깔거렸다. 그녀에게는 마치 삶의 내막이 한순간도 감추어지지 않은 듯이 쾌활한 듯 느껴졌다. 이런 여인은 쉽게 잊을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연주가 끝나고, 사라져 버린 그녀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보게 된다면 말이다.


사람이 많은 거리. 불특정 다수의 주목을 받으며, 그녀는 무심한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런 일은 흔히 보는 일은 아니다. 무릎을 꿇은 남자는, 한 손으로 그녀의 호흡을 보는 듯했지만,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지는 쑥스러움이 그를 움츠리게 했다. 서투른 행동이 사람들의 비웃음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인파 속에 흡수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애써 꾸며 볼 수 있는 계기가 빨리 오기를 바라는 쪽으로 어정쩡 거리고 만 있었다. 여자의 발끝에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서 있는 동료는, 마치 죄수인 양 홀로, 흐르는 인파가 멈추어 선 도심 한가운데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이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듯 보였다.


나의 행동도 좀 특이했다. 예전 같으면 틀림없이 구경꾼이었다. 애써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선량한 인간도 아닐뿐더러, 종교에 심취하여 선지자의 말씀대로 하는 인간은 더더욱 아니란 말씀이다. 그냥 요즘 인간의 대세로 떠오른 방관자적 무심론자. 한마디로 회색인. 모든 일에 신경끔.


나는 대번에 그녀를 알아봤다. 하긴, 누군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나치게 짙은 화장, 짧은 옷, 문신, 촘촘히 박힌 귀걸이, 붉게 칠 한 입술. 나는 신기하게도 빠른 솜씨로, 뺨을 그녀의 입 근처에 바짝 댔다. 얕은 숨결이 느껴졌다. ‘살아있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당기며, 한쪽 손은 이마에 놓고 다른 손은 목 뒤에 대 턱을 들어 올렸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골키퍼를 동료가 응급조치하는 장면을 TV에서 봤다. 쉿 하는 쇳소리가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은 지나치게 울퉁불퉁 부었다. 홀에서 본 깔깔거리는 모습이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녀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지저분한 락 카페 입구.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 그녀는 어정쩡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370m 거리의 응급실까지 업고 간 은인에 대한 감사의 미소. 아직 붓기는 남아 있다. 비대칭으로 갈라지는 입술.

“많이 좋아진 것 같네요.”

“네, 덕분에. 재료에 아몬드 대신 값싼 땅콩을 몰래 넣는 식당이 있거든요. 어제처럼.”

“아 그, 인도 전통 식당이라는 곳?”

“네, 심할 땐 정신이 아득해지고 마비가 되죠. 어제처럼.” 마치 남 일인 듯 말한다.

“공연 스케줄 좀 적어 주세요. 자주 찾아올게요.” 이런! 일정표 같은, 그런 사치스러운 게 있을 리가 있나! 대타로 잠시 한 거뿐인데. 그것도 한가한 이른 저녁 시간에.

“전 주로 길에서 연주합니다. 쓰러진 곳 바로 그 근처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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