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nalog Guy In A Digital World
새벽 1시. 도로는 젖는다. 오래된 도시의 밤은 무관심하다. 어둠이 들면, 사람들은 서둘러 문을 닫고, 거리를 내 버려둔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바람. 적막함. 친근한 젖음.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경적. 노란 가로등 불빛 속으로 눈물 같은 비가 쏟아진다.
어둡고도 깊은 재즈바의 입구에서 일행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즐거움에 비실거린다. 그들이 발산하는 깊은 연대감이 부럽다. 껴안거나 치거나 건드리거나 웃고 달아난다. 비에 젖은 도로가 아주 기이하게 축 처져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멈칫거린다. 격자무늬 입을 한 차량이 끈적거리며 지나간다. 일행 중 한 명이 주저앉으려 한다. 그를 부축하는 나머지가 뒤엉킨다. 웃음과 묘한 함성이 터진다. 누군가는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비가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다. 허둥지둥 그가 다시 나온다. 파안대소. 제비꽃이 그려진, 붉은 벽돌집 테라스로 그들이 몰려간다. 인적이 사라진 거리. 비에 젖은 전단이 너덜너덜하게 구석에 처박혀있다. 그들은 담배를 주고받는다. 드디어 누비 잠옷 같은 잠바를 걸친 사람이 내게 비실거리며 다가온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한군데 더 갈 수 있을까요? 추가 요금은 드리겠습니다만….” 재즈 패거리의 리더인 그는 묘한 웃음을 띤다. ‘냉정하게 잘라야 해. 특히 마지막 날. 본전 뽑으려고 득달같이 달려든단 말이야.’ 선임 가이드의 예측대로 그들은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꼴딱 새울 생각이다. 나는 망설인다. 이 순간, 내 표정이 어떨까?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숱한 작은 것들로 이어진다. 순간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하다. 시간을 곱씹어야 한다. 서두르거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버리면, 하찮은 일들에 익숙해져, 어느새 잊힌다. 기억이 지워진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의 모습이. 다만 조각만 달라붙어 빗물에 반사될 뿐.
“어디로?”
“...” 이번엔 남자가 망설인다. 그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배어있다. 빗소리가 강해진다.
“혹시 FKK라고 들어 보셨나요?” 잘 알고 있다. 택시 광고판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곳. 시내 대형 세움 간판에도 버젓이 추켜 올라가 있다. 젊은 음악가를 내내 사로잡은 욕망. 성욕. 젊은이여. 부끄러워 마라. 이방인이 맞이하는 마지막 날은 원초적인 욕망에 휘둘리게 되어 있는 법. 그래. 우린 서글프게도 인간이잖아. 당연하게도.
“네, 어느 FKK로?” Freikörperkultur (FKK). Free Body Culture. 나체주의. 독일 나체주의 운동의 한 가닥은 사우나식 매춘으로 변질하였다. 아니 바뀌었다.
“어느 곳이든…. 추천해주세요.”
로마풍의 아치가 입구를 장식했다. 간결하지만 정갈한 모습. 간헐적으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맞은편 거리는 은은한 불빛과 잘 깎여진 수목들이 정연하다. 꼭대기 합각머리에 검투사가 장식되어있다.
“같이 들어가시죠. 어차피 꽤 기다려야 할 텐데…. 입장료는 내드리겠습니다.” 리더는 어색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일행의 뒤를 따른다. 구부정하게 이어진 자갈길. 사각거리는 발소리. 담벼락 마디 끝에 장식한 불길이 일렁거린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젊은이들의 감탄이 이어진다. 천국이 따로 없다. 여인들은 모두 벗었다. 가까이 머물던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혹스럽다. 몇 안 되는 남자들은 수건만 걸친 채 앉아 있거나 돌아다닌다. 심장이 빨라진다. 시선은 끊임없이 사방을 맴돈다. 호사스럽게 장식된 하얀 천장. 각각 다른 각도로 조명하는 갈색 조명.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 모든 게 지금까지보다 더 강하게 파고드는 욕망. 과거 어느 시점에 딱 멈춰버렸던 것이 꿈틀거린다. 여인들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이쁘다. 주체할 수 없는 욕구가 내 발밑에서 딸각거리며 돌아다닌다. 늘 처져 있던 몸뚱이들이 달아오른다.
사우나에 들어선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심히 몸을 씻어 재끼더니 서둘러 빠져나간다. 혼자 남겨졌다. 흐린 거울에 닳고 더러워지고 주름이 잡힌 얼굴이 보인다. 세월처럼 늘어진 턱선. 포장 속 내용을 알아 버리자 갑자기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수건을 배에 두른 채 사우나를 빠져나온다. 나는 서둘러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는다. 감미로운 음악이 홀은 적신다. <Martin Roth>의 <An Analog Guy In A Digital World>.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앉거나 서 있다. 걷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는다. 돈과 욕망. 그리고 흥정이 이어진다.
모퉁이에 머뭇거리던 여인이 나체로 다가온다. 짙은 마스카라와 마젠타색 입술을 하였다.
“할로!” 그녀는 막 공허에서 깨어난 듯 몽환다운 미소로 말을 건다. 몸에 걸친 거라곤 팔찌와 달각거리는 슬리퍼뿐. 흥분이 컥 하며 숨을 막아선다.
“할로.”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문장(紋章) 속의 수선화가 그려진 우윳빛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에 일렁이는 야외 수영장 물결. 다리가 짧은 갈색 닥스 개가 벗은 주인 옆에 누워있다. 독특한 발걸음과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독일어가 전해진다.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그녀가 어색하게 몸을 뒤틀며 옆자리에 앉는다. 몸짓이 표현하는 끈적거림.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는 듯하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나는 비로소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투명한 푸른색 눈이 반짝인다. 빗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추억을 위해 나이를 먹어야 한다. 그녀의 눈이 마치 무지개처럼 느껴진다.
여름날 오후의 강렬한 빛이 세브르 찻잔에 담겨 있다. 안나는 우수에 빠졌다. 나는 삶의 잉여분을 탕진한 듯 나자빠져 있었다. 가늘게 흔들리는 연회색 커튼. 책장을 비추던 햇살이 흩날렸다. 안개처럼 가려진 곳에 그녀는 성난 듯 서성거렸다. 평온했던 시절을 다 써버렸다. 지나친 걱정, 무기력, 암울함이 다시 자랐다. 침대 위에 던져진 나들이옷.
“그냥 내내 그리웠어요. 지저분하고 번잡한 거리지만….” 여자가 뉴욕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녀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그곳으로 말이다. 빌딩으로 덮인 원경이 그려진다. 나는 그즈음 그녀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실재하는 갈등이 낳은 정적.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행복했던 시절은 지나치게 짧고 거북살스럽게 의미가 깊다.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딱 한 번. 한번은 보고 싶었다. 안나와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여름의 끝 무렵. 우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에서 차를 빌려 이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사흘째. 서쪽으로 가는 베르겐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다시 차를 빌렸다.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서.
오전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홀로 운전대를 잡았다. 안나는 호텔에 남았다. 룽게가르즈반 호수가 창을 뒤덮은 방이었다. 나는 검은 구름을 마주하며 질퍽한 국도를 달렸다. 속도를 한껏 높이고 스테레오 볼륨을 올렸다. <Black Sabbath>의 찢어지는 헤비메탈 사운드가 귓전을 때렸다. 창을 조금 열자 훅하고 비바람이 가차 없이 이마를 강타하였다. 빗물은 얼굴을 적시고 목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시렸다.
비구름이 거의 사라진 정오쯤에, 나는 푀르데로 접어드는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언덕길에 마침내 정차했다. 나는 여우비로 젖은 풀밭을 신발이 젖지 않게 사뿐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며 따라왔다. 이윽고 폭이 좁은 강의 굽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관목숲이 우거진 경사길 아래로 너울거리는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나는 마치 달걀처럼 독특하게 생긴 은색 빌딩을 기억하며, 이곳이 어머니가 보내온 사진에서 보았던 그 장소임을 되새김질했다.
나는 빽빽한 나무 사이로 난, 좁은 돌길을 한참을 지나 밝은 광장으로 나왔다. 중앙 광장에는 평범한 분수대가 있었다. 물소리가 났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이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에 실리는 낙엽, 테라스의 식기, 포크와 나이프, 사람들의 대화, 발걸음, 눈에 띄지 않는 자그마한 새들, 멀리서 울리는 경적. 애들의 웃음. 이들은 모두 속삭이듯, 소음들 사이로 섞이지만, 조금만 애를 쓰면,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아이의 웃음소리는 가장 명료하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 모든 소리를 종합 해 보면, 이곳은 유럽에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외진 시골이라는 것을 누구나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GPS가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는 그런 외진 곳 말이다.
나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후의 햇살이 사방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바람은 조용하고 나무는 풍성하고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었다. 덜컥이는 손수레가 지나갔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 남은, 낡은 미닫이문 소리와 흡사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맑은 어린이가 뛰어다니던 광장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손수레와 어린이, 카페 손님이 사라지자, 홀로 남겨진 나는, 마치 시간이 쭉 늘어진 듯, 모든 게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느림이 만드는 느긋한 기운이 커피를 준비하는 종업원의 익숙한 손동작이 가로지르는 곳에서 멈추었고, 바람은 점점 느리게 흐르다가, 잠시 죽은 듯 고이고는 다시 미정 된 곳으로 흐름을 이어갔다.
마침내,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서성거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심각한 그리움으로 인해 이상하게 기억에서 지워진 얼굴. 그녀의 나이 든 미소에서 나는 이모를 보았다.
“솔직히 당신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자의 손이 나의 허벅지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럼 다음에라도.” 여자는 수수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물러난다. 그녀의 뒷모습에 슬픔이 묻어난다. 금방 후회가 찾아왔다. 에둘러 말했어야 했다. 착한 거짓말 말이다. “조금 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거든.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라고 하든가 아니면 진실을 말하든가. “사실 나는 여행가이드야. 고객을 모시고 온 거였어. 준비한 돈도 없고 말이야. 미안해.”
그저 들뜬 기분에 이성이 마비된 듯하다. 감정이 순간적으로 곤두박질친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에게 모질게 한 일들이 가슴에 남았다. 그들은 변덕스럽게도, 우울할 때면 아프게 다가온다.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마치 이웃인 것처럼. 그리고 형식적인 포옹과 함께 헤어졌다. 무채색의 짧은 답변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매정하게 돌아섰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숨고 싶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과 벗은 채 있지만, 자신을 향한 경멸이 불현듯 느껴졌다. 나는 연약하게 매달려 있는 수건을 허리에 다시 한번 조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궁전의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숨기라도 할 듯.
어느 순간, 작고 마른, 그리고 왠지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내 곁에 머물렀다. 젊은 패거리들은 자신들이 정한 파트너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홀이 잘 보이는 어두운 곳에 머물렀다. 보고 싶음과 눈에 띄지 않음이 공존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다시 돌아서며 천장을 보거나 다시 쳐다보곤 하였다. 짙은 까만 눈동자. 그저 무언가에 관심이 있거나 끌고 싶은 빛의 실루엣. 미소 뒤에 보이는 외로움이 퍼지듯 펼쳐져 지나온 듯한, 애틋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윽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카타리나예요.” 여인은 자기 몸에 묻은 애액을 휴지로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특이했다. 키도 작고 가슴도 작았다. 까만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지녔으며 마르고 연약해 보였다. 그러니 인기가 없었다. 나와 조그마한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녀는 적어도 10명 정도의 남자에게 거절당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아시아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 궁전에 있는 유일한 아시안 여인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국적이 무척 궁금했다. 아니, 정확히 출생이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리 개방된 나라 일지라도, 매춘에 대한 의미는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인 것인 것만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무척이나 어렵사리 손님을 맡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내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하였으며 정사를 할 때도 무척이나 친절하였다.
나는 지갑에서 50유로 1장을 쥐었다가 다시 한 장을 더 쥐여 주었다. 그녀 얼굴 전체에 행복감이 걸렸다. 그 행복이 따스하다. 모처럼 만에. 왠지 그냥 헤어지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돌아섰다. 나는 무거운 발을 옮긴다.
수증기로 덮인, 사우나의 모퉁이를 돌 때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내게 명함을 쥐여 주고 간다.
“언제 한번 꼭 들러주세요. 꼭 요.” 명함에 적힌 곳은 마사지하는 곳이었다.
나는 여름이 오기 전, 그곳을 들렀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갔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긴 여행의 끝자락에는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이제 내가 사는 도시의, 몇 안 되는, 아는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그녀에게 딸이 하나 있다는 것뿐이었다. 마사지 중에 걸려 온 전화로 알게 된 게 고작이었다. 우리는 그저 눈을 마주치고 웃고 만지고 섹스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