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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생각보다 작고 시원하고 어두웠다. 하지만 마음속에 그려보고 희망하고 거의 만들어내기까지 한 모습은 아니었다.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기숙사 오픈 데이>. 나는 여자 기숙사 9층의 방 하나하나를 다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발견한 그녀의 사진. 다섯 자매가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 하얀 블라우스에 긴 생머리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녀가 사는 곳을 비로소 찾은 것이다. 922호.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낯선 룸메이트가 싱긋 웃으며, 예기치 않은 방문 탓에, 호기심을 잔뜩 묻은 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서둘러 창가로 가서 11층 나의 방 창문을 가늠해 보았다. 아쉽게도 내가 보는 쪽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방을 열심히 지켜본 것이다. 아무튼, 좋았다. 나는 마치 사건 현장에 나온 수사관처럼 찬찬히 그녀의 방을 훑어 내려갔다. 나무 침대와 하얀 보가 덮인 책상. 그 사이로 붉은 조명이 어딘가에서 나와 벽을 타고 내려왔다. 낡은 TV가 보이고 좁은 탁자가 구석을 차지했다. 탁자 위에는 도서관 마크가 찍힌 책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존 업다이크> 소설이었다.
나는 룸메이트의 맞은편, 그녀의 자리로 추측이 되는 침대에 조용히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잠시 적막함과 어색함이 좁은 공간을 지배했다. 어느새 눈은 어둠에 익숙해졌다. 침묵이 나풀거리는 커튼 사이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곧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오더니 한 무더기의 남녀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룸메이트와도 친한 듯, 그녀 주변에 둘러서서 큰소리로 부재중인 주인장 이름을 불렀다.
“송안나 어디 간 거야?”
나는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어릴 적, 생일에만 맛볼 수 있었던 짜장면을 비우고 중국집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공간을 빈틈없이 살펴보고 음미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계단을 이용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 선명하고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나의 발걸음은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존 업다이크> 책은 모두 대여 중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북문 앞 대형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겨우 책 한 권을 구했다. <달려라, 토끼>.
4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서재에는 그의 토끼 4부작이 모두 꽂혀있다. 한글책뿐만 아니라 영어 원본, 독일어 번역 책도 샀다. 나는 비가 오는 오후가 되면, 종종 언어별로 모두 꺼내 놓고 한 줄씩 비교해 가며 읽곤 한다. 속도는 무척 느리지만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 여러 번 읽은 터라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저 처음 읽었을 때의 묘한 끌림만 회상하고 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이름과 전공, 기숙사 호실을 소개하고, <존 업다이크>를 좋아하는데, 우연히 <오픈 데이> 때 당신의 방에서 그의 소설을 발견하여 기뻤다는 것과 혹시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게 되면, 내게 알려주면 고맙겠다고 적었다. 나는 편지 겉봉에 연애편지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영미 소설 애호가>라고 적었다. 그리고 편지를 여자 기숙사 관리실 한편에 있는 편지함에 그냥 넣어 두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마치 외부에서 온 편지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애써 우표를 붙이고, 교내 우체국 대신 근처 마을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일주일 뒤, 나는 쪽지가 든 편지를 받았다. ‘죄송해요. <존 업다이크> 팬이 가까이에 있는 줄은 전혀 몰랐네요. 우선 한 권 반납했어요. 나머지도 곧 반납할게요. 좋은 시간 되시길.’ 그녀의 필체는 의외로 투박하고 내용은 건조하였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나는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썼다. 자신은 책을 아주 천천히 읽는 사람이기에 조급하게 반납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과 혹시 원문이 있으면 빌려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주일 뒤 나는 낡은 영어책 한 권을 받았다. 펼쳐보니, 그녀의 책이 확실해 보였다. 곳곳에 투박한 글씨체의 한글 주석이 달려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그녀의 책과 한글 번역본을 펼쳐 놓고 한 줄씩 읽어 나갔다. 물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록 가물에 콩 나듯이 답장을 받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적어도 그해 겨울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