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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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그해 겨울, 아버지가 부도를 맞았다.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빚쟁이가 들이닥쳤고, 우리 가족은 도망치듯 지하 단칸방으로 몸만 옮겼다. 나는 가족과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실천했다. 휴학하고 공군에 자원입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날,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대전 훈련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떠나기 전, 그녀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며, 간단하게 군에 간다고만 적은 쪽지를 넣어 두었다. 그녀에게 쓸 말은 끝도 없이 많았지만, 가슴엔 절망만 넘쳐 흘렀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편지는 결국 한 글자도 써 내려 가지 못하고 가슴에만 오롯이 남겼다.


나는 신부님에게도 감사의 편지를 남겼다. 신부님 말씀 덕에 일요일이 무척 행복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백성사도 보았다. 나는 절망스러운 가난과 짝사랑의 고통을 토로하고, 곧 닥쳐올 군 생활의 암담함을 털어놓았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이 불현듯 느껴진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모든 게 꼬여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나 자신조차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찰나와도 같은 날들 말이다. 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그 고통조차 그리움으로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해 봄, 남쪽 해안 도시 수송기 부대에 배치를 받은 나는, 초코파이에 매료되어 다시 성당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사람의 젊은 신부님을 만났다. 기대와는 달리 다분히 세속적인 그는, 술과 담배를 즐겼고 장교들과 골프도 치러 다녔다. 강론도 그다지 고민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교리서에 나와 있는 말씀을 살짝 풀어 놓은 정도였다. 하긴 미사 때, 절반 이상은 졸고 있는 사병들에게 무슨 말씀인들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군종신부에게도 좋은 점은 있었다. 사병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낸다는 것이다. 예전 신부님이 지적인 카리스마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면, 이 분은, 성직자라면 의당 갖추어야 할,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의젓함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저 친구하고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처럼, 단순하고 순박하였으며 스스로 낮추어, 거리낌 없이 사병들을 친동생처럼 대했다.


미사가 끝나면, 나와 동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군종신부의 집무실에 모여, 와인을 홀짝거리거나, 빵이나 과자를 게걸스럽게 씹으며, 마치 동창회라도 하는 듯 떠들썩하게 말꽃을 피우곤 하였다. 그러면 신부님은 옆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며 신이 난 듯 키득 키득거렸다. 아담한 집무실은 어느새 사병들과 담배 연기로 공간을 꽉 채우곤 하였다. 삐죽이 열어둔 창문 틈 사이로 흰 연기가 쉴새 없이 달아났다. 낯선 이가 본다면 화재신고라도 할 판이었다.


집무실 내부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단순한 책상과 의자, 철로 된 캐비닛, 좁은 소파와 난로, 그리고 십자가와 벽에 걸린 사진 두 장이 전부였다. 사진은 신부님의 사제서품식 장면을 담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제가 반듯하게 줄을 지어, 마치 엎드려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의 단체 사진과 교황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비교적 가까이에서 촬영한 신부의 얼굴이 담긴 장면이었다. 운 좋게도 그는 교황이 방한한 해에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부님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틈만 나면 그는 그날의 벅찬 감격을 설파하곤 하셨다.


더위가 막 시작된, 그날도 그랬다. 무슨 얘기 끝에, 신부님은 황홀한 표정으로 교황을 직접 알현한 모습을 마치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뒷받침할 강력한 뭔가를 캐비닛에서 찾아 우리에게 펼쳐 보였다. 두툼한 사진첩이었다. 웅장한 사제서품식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부님은 침을 튀기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설명하였고 빼곡히 둘러앉은 우리는 모두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사진 속에서 낯이 익은 누군가를 발견했다.

“신부님 혹시 이 분 아시나요?” 나의 질문에 그는 설명을 멈추고 사진을 가까이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알지. 강 베드로 신부네. 근데 너는 어떻게 알아?”

“아 네, 학생 때 다니던 성당에서….”

“그럼 너 K 대학 출신인가?” 묘하게도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신부가 사제 서품을 같은 날 받은 친한 동기였다. 군종신부는 대번에 강 신부에게 전화를 걸더니, 마치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처럼, 깔깔거리며 나의 소개를 덧붙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친구라니 믿기지 않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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