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 붓다의 유언 -
제인은 긴 잠에서 눈을 떴다.
푸른 기운이 사방에 돌고 서글픈 생각이 눈을 가렸다. 밖은 시끄럽고 안은 침묵이 앉았다. 삼가타의 환락 도시는 자지 않는 이들의 천국처럼 사방에 소음을 흩뿌린다. 약과 춤과 섹스와 폭력이 모든 흔한 구성원이다.
아름다움이 겉을 장식하고 속은 추하게 일그러진다.
붓다는 자신을 스스로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고 하였다.
그녀는 불행했다.
부모는 약쟁이였고 오빠는 폭력배였다. 늘 두들겨 맞고 강간당했으며 아픔이 친숙함을 대신했다. 살아 있음이 지옥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상쇄했다. 손목에 면도칼이 그어지고 철창처럼 차가운 침대에 널브러져 푸른 하늘에 천국을 꿈꾸었다. 닥쳐오는 재앙은 요행으로 절대 피할 수 없었다.
절대로.
모든 번뇌 가운데서 증오가 가장 파괴적이다. - 붓다의 말씀 -
16세에 애를 낳고 17세에 또 애를 낳고 남편은 사라졌다. 새로운 남자는 그녀에게 매일의 노동을 강요하였다. 집과 직장에서 수많은 시간이 괴로움과 고통 속에 사라졌다.
주사기가 난무하는 2층 침실에서 그녀는 매그넘 방아쇠를 쉴 새 없이 당겼다. 붓다의 세상에서 수천 년이 지난 날이었다. 남자는 형체를 알기 힘들게 갈라지고 부서졌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전쟁과 참혹한 인간상을 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살아남은 자에게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쪽 기슭. 피안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였다.
여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다. 10년 후 변호사는 그녀가 처한 끔찍한 지옥을 장대한 글로 피력하였다.
“모든 절망과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다 합쳐놓은 종합세트의 불행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주지사님. “
감면이 이루어지고 언론이 환호했다. 여론이 뜨겁고 방송이 앞다투어 지난날을 파헤쳤다. 그녀는 머지않아 토렌질 하바드의 비교적 자유로운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교육이 주어지고 생애 처음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두 딸과 자유로운 면회가 허락되고 종교 활동과 도서관 출입이 허락되었다.
그녀가 도서관 책상에 주저앉아 펼친 책은 얄팍한 반야심경이었다.
푸른 희망이 실처럼 조여오는 시간 속에, 과거의 온갖 고통이 아귀처럼 달라붙어도 암송의 구절 속에 복받치는 울음이 볼을 타고 번지니, 모든 것은 없음이요 없음은 곧 모든 것이었다.
실체는 허공이요 형태는 허상이며 의식, 감각, 생각, 행동, 색깔, 소리, 향, 맛, 감촉, 법, 경계, 늙고 죽음, 지혜와 얻음이 모두 한가지고 다름이라. 괴로움이 기쁨이며 번뇌가 극락의 다름이었다.
시간은 앎의 기쁨에 놓여있고, 그녀는 머리를 밀고 의식을 스스로 주관하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변호사의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그리하여 41세에 비로소 자신의 의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다.
그녀는 의외의 선택, 환락의 도시로 선택하고 찾아왔다.
하지만, 썩은 이들 가운데 놓이고 미쳐 날뛰는 허상과 감각에 허우적거리는 그들은 의식조차 말라버린 세상에서 이 이질적인 여인을 증오하고 구박하고 심지어 학대까지 하였다. 그저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재산조차 아첨꾼에 뜯기고 도로 위에 주저앉은 창녀처럼 서글픔으로 말라갔으니 피곤이 몰려오고 긴 잠이 쏟아지고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몽환의 번뇌가 어찌 이 연약한 여인을 곧추세우겠는가?
그러다 만난, 긴 수로에 흙색 물길을 따라, 무거운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얇은 옷깃을 세차게 때리는 그날, 부산하게 움직이는 장사꾼 배 사이에 아슬하게 놓인
한 송이 연꽃.
그 아름다움이 경탄을 불러 그녀의 속이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채워졌다. 비로소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각인된 경전은 세상의 허무가 안겨준 것조차 무아의 빛으로 발하니 그녀는 굴하지 않고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붓다의 유언을 새기고 질퍽거리는 썩은 거리에서 연꽃을 피우고, 뿌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43세에 똥으로 가득한 길모퉁이에 그녀가 세운 작은 집은 고아들의 안식처가 되고 미혼모의 고향이 되었으며 버림받은 이들의 위로가 되었다.
선하고 부유한 어떤 이가 그녀의 소식에 감동하여 선뜻 후원이 이루어지니 버림받은 이들의 집들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소식은 바람을 타고 선한 기자의 눈을 채웠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여인은 두 딸과 함께 나라 구석구석을 돌며 연꽃처럼 아름다운 집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45세에 버스에 올라탄 그녀는, 탐욕에 눈먼 자의 약을 먹고 쓰러졌다. 쓰러진 여인은 바다에 버려졌다. 그들은 그녀의 가방에 든 적은 금액의 여행자수표를 탐하고 달아났다.
붓다의 유언 이후, 2,500년이 지나도 인간은 변한 게 고작 이거였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