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의 꿈 #1

채팅

by 남킹

"I have no desire to the relationship I mean.“

"프로필에 올리신 글을 보고 이 말씀 미리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영어와 한글로 각각 이런 메시지가 왔다. 보낸 이는 juliadream. 나는 내 프로필에 ‘dating’이라고만 썼다. 그녀의 프로필은 영어, 한글, 독어가 섞여 있었다.


‘living and working in Germany.

I am trying to be positive thousand times but failed 999 times.

Hope it is the last time for this loop.

all kinds of talks are welcome.


지긋지긋한 삶.

입담 없는 수다쟁이.

벗어나지 못한 뻔한 인생에서 아등바등하는 못난이.


Ich bin auf Suche nach äußerlichem Ehrgeiz und innerlichem Glück, die ich seit langem verloren habe.

(I am looking for external ambition and happiness that I have lost for a long time.)


30/여성/중국/160.68km’


그녀는 회색 하늘과 고성, 호수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올렸다. 작은 얼굴. 둥근 안경. 아담한 체구. 옅은 달걀색 바바리는 무척 커 보였다. 그리고 불그스레한 작은 입술에서 희미한 미소가 느껴졌다. 무거운 자기소개와 짙은 배경의 사진이지만, 얼굴은 희망의 풍선을 탄 듯 가벼워 보였다. 나머지는 모두 제라늄꽃 사진이었다. 배경 음악으로 <Kwoon>의 <I lived on the Moon>이 흐른다. 나는 살짝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초면에 실례지만, 남녀관계를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은 인간뿐일 겁니다. 아마.”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사실 여러 가지 답장을 생각하였으나 피곤으로 관두었다. 독일에 온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폴란드에서 비행기가 갑자기 결항하는 바람에, 베를린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거의 하루를 까먹으며 도착하였다. 항공기로 한 시간이면 족한 거리를 말이다. 나는 공항에서 사장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사장님,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오늘부터 2주, 호텔에서 자가 격리 후, 사무실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국경봉쇄만 아니었다면 벌써 다니고 있을 회사였다.

**********


잠에서 깨면, 현대인답게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본다. 카카오톡 39개, 라인 22개, 왓츠앱 9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채팅에 중독되었다. 익숙한 솜씨로 메시지를 훑어보고 지나간다. 대부분이 짤막한 단문이거나 이모티콘이다. 우리는 모두 묵시적으로 알고 있다. 내게 온라인 여자 친구가 많이 있듯이, 그녀들 또한 수많은 남자 친구가 온라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풍족함은 부족에서 기인하는 절박함을 앗아간다. 그러니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는 사이라면, 서로의 귀한 시간을 아끼는, 사려 깊은 대답 한마디로 관계 확인만 하고 지나간다. 그것도 아까우면 그냥 이모티콘 하나 콕 찍어 버리면 그만이다.


“도대체 몇 명과 채팅하는 거예요?” 가끔 이렇게 물어보는 멍청한 여자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힘듭니다. 대충 삼백 명 넘어요.” 데이팅 앱을 시작하면서 나의 메신저에는 모두 317명의 친구가 실제로 등록되었다. 모두 여자다.


“저 오늘부터 다른 관계 모두 끊고 당신하고만 채팅할 거예요.” 아주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있다. 화상 채팅으로 서로가 진짜인 것을 확인한 직후에 주로 벌어진다. 그러면 나는 무조건 차단해 버린다. 이런 여인의 특징은 경험으로 터득하였다. 그녀는 집요하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물을 것이다.


“당신도 결국은 변태군요?” 이혼한 싱글맘에게 육체적 욕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종종 이런 답을 듣게 된다. 주로 아시아계 혹은 이슬람교도 여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는 “구글에서 검색하면 당신보다 훨씬 이쁘고 날씬한 여인들의 음란한 사진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당신에게서 어떤 성적인 매력도 느끼지 못하니 그다지 걱정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라고 쏘아붙이고는 나가버린다. 사실 이성 간의 채팅에서 로맨틱한 대화를 빼 버리면 정말이지 할 말이 남지 않는다. 강아지 사진과 밥 먹는 장면으로 한 달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유럽과 남미 쪽 여인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들은 칭찬받는 것을 즐기고 성적인 대화에 큰 거부감이 없으며 섹시하다는 표현을 받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솔직하다. 내면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들은 이미 삶을 깨달을 듯 보였다.


‘인생 뭐 별거 있어?’

‘바람처럼 삽시간에 사라질 운명.’

‘그냥 즐기는 거지 뭐. 애써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잖아. 그들도 먼지처럼 가버릴 텐데….’

‘그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지.’

**********


“그저 지탱할 만큼만 무겁기를 바랄 뿐이에요.”

“삶을 감당할 힘이 점점 옅어지고 있거든요. 초면에 송구스럽지만.” 나는 juliadream이 보낸 메시지에 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머릿속 회로에 때가 낀 듯 적절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뭐지? 자살이라도 하려는 걸까?’


“최근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나는 결국 평범한 메시지를 띄우고 한동안 화면을 쳐다봤다. 최근에는 드문 행동이었다. 다양한 하트 이모티콘을 쑥쑥 날리고는, 답장받는 대로 사랑 타령이나 야한 이야기로 응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뇨, 그런 거는 아니고요. 항상 안 좋을 뿐이에요. 아무튼, 고마워요. 걱정을 해 주셔서.” 얼마 동안 기다린 걸까? 다시 머리가 굳어졌다. 답장을 미룬 채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다.


“죄송해요. 쉬는 시간이 다 끝났어요. 내일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시계를 봤다. 얼추 오후 2시가 되었다.


다음날, 오후 1시 반쯤 그녀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바람속의먼지님. 별일 없으시죠?”

“한글 엄청나게 잘하시던데, 언제 배웠어요? 학교에서?”

“한국인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5년 동안. 그리고 조선족이에요.”

“그럼, 영어와 독일어는?”

“영어 선생이었어요. 중국에 있을 때. 그리고 독일 남자 친구와 3년 정도 살았어요. 여기에서.”

“그런데, 혹시 자살하려는 거는 아니신 거죠?”

“하하하, 자살할 수도 없어요. 아기가 있어요. 네 살 된.”

“아빠는?”

“휘리릭….”

“네?”

“그냥 사라졌어요. 어느 날.” 그녀는 사진을 보내왔다. 아기를 품은 모습. 티 없이 맑은 미소.

“혹시 아기의 아빠가 될 사람을 찾는 건가요?”

“아뇨, no desire to the relationship.”

“아, 맞다. 제가 깜빡했네요.”

“아뇨, 제가 죄송해요. 그냥 하루에 한 번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요. 아주 외롭거든요.”

“그럼, 차라리 가까이에 있는 친구를 사귀는 편이….”

“죄송해요. 시간이 다 되었네요. 그럼 다음에. 감사합니다.”


다음날에도 비슷한 시간에 그녀가 나타났다. 까닭 모를 반가움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우리는 사진을 교환하고, 몇 가지 개인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폴란드에서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우리 회사에 우크라이나 운전사를 새로 뽑았어요. 그는 틈만 나면 ‘시스키 뷔스키’를 읊조리며 다녔어요. 어느 날 제가 물었죠. 무슨 뜻이냐고? 그는 마침 지나가는 동료 여자를 불러 세우더니, 그녀의 가슴과 음부를 가르치며 키득키득하더군요. 그러면서 한글로 어떻게 되는가를 물어봤어요. 저는 ‘가슴, 보지’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러자 그는 그때부터 가슴, 보지를 중얼거리며 다녔어요. 심지어 우리 사장님 앞에서도 멈추질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잘렸어요. 왜냐하면, 사장님이 한국인 할머니였거든요.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

자가 격리하는 동안 우리는 매일 30분씩 채팅을 하였다. 마치 강박증 환자처럼, 그녀는 비슷한 시간에 나타나 어김없이 시간을 채우고 사라졌다. 그동안 날이 갑자기 무더워지고 여인들의 옷이 삽시간에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녀가 보내는 사진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나는 최근 사진을 요구하였지만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시간이 없어서요. 죄송해요.”

“그래도 언젠가는 보내 주실 거죠?”

“네 조만간에.”

“아주 섹시한 걸로.”

”그건, 좀 더.“

그동안 우린 아주 많이 가까워졌다.


“당신에게 키스해도 될까요?”

“하지만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그냥 말로만 하는 거죠. 괜찮죠?”

“네”

“kiss you.”

“yes”

“all over.”

“What?”

“너의 모든 곳에 키스를…” 그리고는 다양한 하트 이모티콘을 날리곤 하였다.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를 ‘my lady'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서없이 채팅을 이어갔다. 딱 하루에 30분이라는 것이 점점 조급하게 다가왔다. 재치가 번듯이는 답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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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나의 사랑 (9).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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