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달력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 그렇지. 11월 1일. 나는 무심코 10월 달력을 넘겼다. 그리고 본 뒷면의 사진. 프랑스 파리의 어느 뒷골목 광경.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붉은 저녁노을. 노상 카페에는 담소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
나는 멋진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꽤 끌리는 사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다다음 날, 사진 속 카페의 연인이 부러웠다. 그리고 다다다음 날, 나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못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의 연차만 해도 25일. 거기에 앞뒤로 주말, 월휴 끼우면 한 달. 소위 <파리지앵으로 한 달 살기>가 딱 나왔다. 게다가 두툼한 나의 통장.
나의 해외여행에 회사 사람들은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모 CF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였다. 심지어 개발 이사님은 인천 국제 공항까지 나를 배웅하며 눈물까지 보였다.
태어나 처음 가 본 유럽.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지만, 종일 웃음이 나왔다. 나는 현대인답게 각종 여행 블로그와 유튜버를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해 첫 한 주일은 신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볼 거 다 보고 먹을 거 다 먹어보고 나니 슬슬 지겨움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래서 하루는 눈 딱 감고 동네 슈퍼에서 간식 정도만 사 와 종일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때쯤 누군가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맞은편 집 여자였다. 나를 파티에 초청했다. 값싼 부르고뉴 와인 한 병 사 들고 가 보니 남자 세 명에 달랑 여자 한 명, 나까지 모두 다섯 명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의 송별식. 참석자는 모두 같은 집의 사람들. 즉 4개의 방에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이 각각 살고 있었다. 조촐한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는 와인에 취해 그녀의 방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그녀는 헝가리로 떠났고 나는 그 방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멋진 기억들 – 향락, 퇴폐, 탐욕, 쾌락.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귀국했다. 하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삼 개월 만에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부랴부랴 짐을 쌌다. 그로부터 7년 8개월 동안 나는 유럽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결국 나는 쾌락에 절인 도파민 중독자가 되었다.
하지만 불룩했던 나의 통장이 어느새 종잇장보다 가벼워졌을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중소 IT 업체에 취업했다. 하지만 나는 일이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제품 개발에 보름 걸릴 일은 한 달, 한 달 정도의 일은 석 달쯤 걸린다고 말했다. 당연히 얼마 안 가 뽀록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지긋지긋한 <직장 옮기기>가 시작되었다. 일 년에 여러 차례 짐을 싸고 짐을 풀었다.
어느새 내 나이 서른 후반. 세상을 호령하는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나는 퇴물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나는 나를 구원해 줄 녀석이 필요했다. 나의 퐁퐁남. 그동안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던 설거지론(論)이 바로 내가 꿈꾸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나의 이력을 화려하게 재포장했다. 그리고 결혼정보회사에 내밀었다.
“우선 인스타에 올라온 모든 해외여행, 명품, 오마카세, 고급 식당, 호텔 사진부터 삭제하세요.”
나의 커플 매니저인 나직방이 요구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는 벤츠 타고 다니는 남자 보면 다들 인정했죠. 하지만 요즈음은 안 그래요. 다들 카푸어(Car Poor)라고 의심부터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죠? 이런 허영과 사치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고요. 누구나 인정하는 재벌 집 자식이 아닌 이상 삼십 대 여성이 이런 고급 호텔에 명품 사진으로 인스타 도배를 하면 정신 똑바로 박힌 남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알겠죠? 제 말뜻을? 대신 책 사진 많이 올려주세요. 도서관 사진도 좋고요. 애완동물은 호불호가 갈리니 일단 피해주시고요.”
나는 그녀의 충고대로 수수한 차림의 정장과 평범한 핸드백을 겨드랑이에 끼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나의 퐁퐁남 후보가 근무하는 대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면서 잔고를 두려운 마음으로 살짝 들여다봤다. 18만 원. 이걸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내 몸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후회막급. 쾌락의, 쾌락을 위한, 쾌락에 의한 삶의 뒤 끝은 비천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나는 순수하고 순박한 이에 빌붙어 비루한 삶을 연명하려고 한다.
“인생 뭐 별거 있어? 한순간인데. 그냥 속이면서 사는 거지 뭐.”
사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 후, 잠깐이지만 정신을 차린 적이 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응시하며, 스타트업 컴퍼니 사장인 그는 내게 앱 개발 제안서를 내밀었다.
“할 수 있겠어요? 3개월 이내에.”
“네. 가능합니다.”
나는 미친 듯이 개발에 몰두했다. 정말이지 모처럼 만에 <몰입의 즐거움>을 누렸다.
사장은 매우 만족하였다. 내가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앱이었다. 그는 내게 입사와 함께 회사 지분의 3%를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목돈을 요구했다. 성형 수술비. 잠깐의 욕심이 나를 구렁텅이로 다시 몰아넣었다.
내가 만든 앱은 그 해 <최고의 독창적 스마트앱 어워드>를 수상했다. 론칭 6개월 만에 다운로드 1억 돌파, 액티브 유저 3,000만을 돌파했다. 재미있는 건 하루에 업로드되는 횟수가 평균 1억 건이었다. 나는 유명 IT 신문 및 잡지 표지를 장식한 사장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전에 도착한 나는 강변 옆에 우뚝 솟은 <신세상 타워 오마노 라운지>로 갔다. 나직방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옆에는, 호기심을 잔뜩 담은 표정의 남자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주선자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남자는 내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그는 사진보다 실물이 나았다. 호졸근하고 궁상스러운 연구원을 예상했건만 그는 오히려 건장한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첫 만남에서 캐비어나 송로버섯 같은, 턱도 없이 값비싼 요리 절대 주문하지 마세요.”
나는 커플 매니저의 충고대로 적당한 가격대의 파스타를 골랐다. 남자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그는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애써 대전까지 내려온 것에 감사를 표하며 다음부터는 꼭 서울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전 빵과 샐러드가 나오자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준비해둔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사실 답하기 무척 쉬운 것들이었다. 대부분 가족, 성장기, 직장, 연애 경험, 인생관, 결혼관 등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물음이었다.
와인을 한 잔씩 나누고 메인 요리를 먹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사이 내가 꿈꾸는 결혼 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나갔다. 돈이 제공하는 항목들. 쇼핑, 레스토랑, 피트니스, 여행 등등. 착한 남편이 제공하는 느긋하고 풍족한 물질. 행복한 나의 미래.
“그런데 말입니다.”
“네?” 나는 꿈에서 막 깬 공주처럼 고혹적인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제가 수학과 출신에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초면이지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자는 스테이크의 마지막 고깃덩어리를 꿀떡 삼키고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는 왠지 불길한 느낌을 받았지만, 짐짓 모른 척 나긋하게 물었다.
“저는 평등주의자입니다.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그의 말에 적이 안심되었다. 아니, 오히려 반가움이 앞섰다. 우리 사회 남녀평등만큼 여자에게 기분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