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쳤다. 기대 반 우려 반. 설렘 반 긴장 반.
맞선이 있는 날.
<이루리> 결혼정보회사의 13번째 공식 소개팅. VIP 고객인 내게, 걸맞은 남자의 신상이 펼쳐져 있다.
41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국 유학. 키 177cm. 몸무게 77kg. 수도권 아파트 소유. 교육자 집안. 취미는 독서와 등산. 호감형 얼굴. 연봉 일억 이상.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단골 미용실인 <버르장머리>에서 곱게 단장을 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우아한 모습. 비록 서른아홉이지만 이십 대 중반이라고 해도 다들 수긍할 정도의 동안이다. 물론 들창코는 살짝 손을 댔다. 눈도 하는 김에 같이 했다. 그러다 욕심이 생겨 가슴, 허벅지도 쪼끔, 스치듯 손을 봤다.
나의 전담 커플 매니저인 나직방 님의 줄기찬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압구정역 7번 출구 <오똑한코 성형외과>에 거금을 투자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 다들 잘 뽑았다고 난리다. 문제는, 나의 서글픈 은행 잔고. 겨우 일백만 원 정도 남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건 그야말로 <인생 밑바닥>의 다른 이름. 저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 모든 비극은 그놈의 탁상용 카렌다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장 친척이 운영한다는, <바나나 저축은행>이 곳곳에 요란하게 새겨진 작은 달력. 달력 뒷면에는 예외 없이 유럽의 어느 멋진 풍경이 나온다. 뭔가 고풍스러우면서도 고상하고 멜랑콜링하면서도 친근한 거리와 카페, 교회. 하지만 나는 무심히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적어도 그 어느 날 까지는 말이다.
나는 한때 열렬한 비혼주의자였다. 하지만 다른 비혼주의자 여자들과는 좀 달랐다.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혹은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고 싶지 않아서> <자녀를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 같은 흔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한마디로 <자유연애>. 나는 여러 놈들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나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인생 뭐 별거 있어? 한순간인데. 그냥 즐기면서 사는 거지 뭐.”
그리고 나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다. 컴퓨터 공학과였던 나는, 과에 몇 안 되는 여자 중 최고의 엘프녀였다. 놈들이 매일 침을 질질 흘리며 나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나는 이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똑똑하기까지 하였다.
학내 최고의 자바(Java) 전문가. 졸업 전에 이미 내로라하는 소프트웨어 경진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그러니 국내 굴지의 IT 업체 스카우터들도 귀찮게 나를 따라다녔다.
입사 후에도 나의 명성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뻥튀기처럼 늘어났다.
<독사>. 나의 별명. 한번 컴퓨터 책상에 앉으면 기본 15시간은 꼼짝없이 프로그래밍만 하였다. 버그 없는 완벽한 소프트웨어. 사용자 요구(Needs)에 딱 들어맞는 최상의 인터페이스. 최고의 속도. 탁월한 보안. 효율적인 데이터베이스.
나는 이 모든 것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씩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골라 물침대에서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게다가 삐까번쩍한 매장에 들러 고가의 명품도 한 번씩 질렀다. 그리고 사장이나 간부들 꾀어서 오마카세 식당이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도 들러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듯 사진을 올리곤 하였다.
나는 곧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개발팀이 만든 회계 프로그램 <척척이>는, 그 해 <베스트 어워드 소프트웨어> 최우수상, <글로벌 SW> 대통령상, <신 SW 상품> 대상을 휩쓸며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나는 개발 총괄팀장으로 최연소 부장이 되었다.
내 주위의 모든 남자가 나를 받들었다. 나는 회사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여왕벌이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놈의 탁상 달력에 꽂히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