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by 남킹
모든 시작은 끝에서 출발한다. <호모 사피엔스 대멸종 제1장 1절> <릴리안 나리>


거친 땅이었다. 지글거리는 태양열은 대지의 구석구석을 찾아와 모든 것을 녹일 작정이었다. 닥터 조는, 모든 준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동료가 고통받는 작금의 현실을 거의 예측하지 못한 안일함에 어느 정도 화가 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행성 간 섹터 전진기지 KES에서 보내오는 항법 수신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이며, 지금의 속도로 약 2시간 뒤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극상의 일교차를 나타내는 이곳 사막의 밤은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로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 그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가 다국간 환경오염 탐사대에서 이탈한 것은 열흘 전이었다. 사막 횡단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겨우 이틀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두 사람의 현지인을 긴 설득 끝에 채용하였다. 하지만 특수 수송 장비의 혜택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전통 방식을 택했다. 낙타를 타기로 했다.


목적지는 금기의 땅이었다. 누구도 발을 들이기를 꺼리는 두려움의 영역이었다. 낮고 높은 산이 번갈아 나타났고 구릉과 계곡, 절벽이 느닷없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자는 극소수였고 그들은 공포를 후세에 새겨 넣었다.


박사가 이곳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DNA 분석을 통한 가계 혈통 프로그램에서 놀랍게도 그의 조상이 나르히트 중앙 사막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막은 그 너비가 50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오지의 땅이지만 수많은 유목민과 원주민의 터전이었다. 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엇인가를 밝혀내기에는 너무 넓고 애매한 곳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고리는 우연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를 일깨운 것은 한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사막의 가장 외진 곳. 타르고 지방의 한 원주민이 일컫는 지명이 그를 삽시간에 사로잡았다.


‘메스 엔 투, 메스 엔 투’ 그들은 높고 둥근 산들이 솟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닥터 조의 본명은 하르히스 메스 엔 투 조였다. 수백 년 동안 적장자에게만 붙이는 중간이름이 메스 엔 투였다.


어린 시절 그는 자신의 이름이 길고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함에 대한 불평을 아버지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별일 아니란 듯이 싱긋이 웃으며 자신도 줄곧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시원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냥 전통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우리 가문에 누가 적장자인지는 알게 되잖아. 그리고 수백 년이 흘렀지만 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놀랍지 않니? 아마겟돈을 버텨냈다는 것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니? 중간이름이니 그다지 쓸 일도 없을 게고…”


**********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수신화면이 스마트 폰에 반짝거렸다. 도착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박사 일행은 걸음을 멈춘 채 잠시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평범했다. 돌과 흙, 계곡과 바람뿐이었다.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였다. 그리고 어떤 생명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육체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황망함이 그에게 찾아왔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바보같이….’


우연과 호기심, 조급함이 합작한 상실감이 삽시간에 그를 주저앉혀 버렸다. 그는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안내인들은 눈치 빠르게 간이 텐트를 설치하고 불을 피웠다. 그리고 곧 해가 떨어졌다.

이윽고 또 다른 통증. 추위가 그의 몸을 찌르기 시작했다. 닥터 조는 몸과 마음이 모두 방전된 듯 널브러진 채 모든 고통에 노출되었다. 눈조차 뜨기 힘들 정도로 피곤하였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감각은 날카로운 신경을 곧추세운 체, 거의 정지한 듯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그는 자신이 어떤 규칙적인 파동에 몰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틀림없이 안내인들의 코 고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심장 소리도 아니었다.


가늘고 길게 캉 캉 캉 캉….


그건 규칙적인 반향음이었다.


그는 조용히 휴대용 공중음파 센서 장비를 꺼냈다. 그리고 둥근 달빛 속에,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소리의 진원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돌부리에 넘어지고 차이기를 반복하며 그는 황량한 오지를 힘들고 외롭게 걸어갔다.

이윽고 낮은 구릉과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그는 거의 기다시피 하며 안간힘을 다하여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여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인조물을 발견했다. 사람 크기의 둥근 철문. 숨이 턱 하고 멈추었다. 마치 화성에서 외계인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반쯤 누운 채 깨알 같이 박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가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가느다란 햇살이 그에게 강한 온기를 가져다주었다. 순간 그는 지독한 졸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세상이 지나치게 빨리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태양이 벌겋게 달아오른 뒤였다. 안내인은 그의 입에 조심스럽게 물을 넣어 주었다. 그는 서둘러 자신이 마주한 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격자 모양의 평범한 문양이 일정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손잡이는 없었다. 열쇠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다 같이 밀어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소 경박하다고 느끼면서 몇 가지 유명한 주문도 외쳐봤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그사이 기온이 급박하게 올라갔다. 덩달아 철문도 빠르게 데워졌다.


일행은 주위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문을 열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문짝 하나만 어느 날 뚝 떨어져 돌에 박힌 듯한 느낌이었다.


박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다시 마주했다. 하늘 중앙을 차지한 태양은, 뜨거운 열기로 그를 태울 듯이 달려들었다.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이 문은, 이제 손도 댈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을 나타내는 붉은 기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건 절망의 벽이야.’ 그는 애초의 설렘이 급속도로 식어가는 자신을 애써 자위하며, 여기서 이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자신에게 다그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안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가리킨 곳은 문의 중앙이었다. 문 전체가 붉게 변색하였으나 여전히 검은 곳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원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바닥을 그곳에 대어 보았다. 이상하게 그곳만 서늘하였다. 그는 한여름의 바닷속에 있는 듯한 쾌적함이 순간 들었다. 그리고 마치 집에 온 듯한 안락함마저 느꼈다.


하지만 따끔거리는 통증이 그의 손을 급히 빼게 했다. 무엇인가에 찔린 듯 한 방울의 피가 손가락에 맺혔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


엄청난 굉음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세상을 뒤집는 듯한 소리였다. 땅의 진동과 함께 둥근 철문이 서서히 옆으로 굴러가며 열렸다.


그러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을 꽁꽁 얼린 만큼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소리. 기계음이 들렸다.


그건 거대한 냉장고였다. 전체 벽면을 따라 대형 컴퓨터가 연이어 나타났다. 일행이 순차적으로 문을 열 때마다 방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넓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문. 그곳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지하 광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가득 메운 것은….

그것은 모두 핵폭탄이었다.


그는 풀썩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을 한숨 쉬듯 되뇌었다.


“메스 엔 투. 메스 엔 투.”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 전쟁 후에도 그의 조상이 살아남은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끝과 시작의 타르고 방언이었다.


종말은 그의 뿌리에서 시작하였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2023-12-08T141653.385.jpg
Black And White  Modern Alone Story Book Cover - 2023-12-05T190355.920.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