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상념
오후가 되자, 나는 천천히 일어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텅 빈 선반에 자리한 김치통과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반찬 통 두어 개도 꺼내, 바니시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밥상에 놓았다. 둘째 딸이 선물한, 냉동된 그라니테 샤베트도 한 통 꺼냈다.
보온밥통에서 밥도 펐다. 밥 냄새에 이끌렸는지, 갑작스럽고도 엉큼하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다. 몇 년 동안을, 이 골목 저 구석에서 가끔 본 녀석인데, 어느새 친구처럼 되어, 경계도 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먹다 남은 우유를 접시에 따라 녀석의 앞에 둔다. 서둘러 달려와 접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우유에 혀를 날름거린다. 손바닥만 한 부엌 창문에서 따스한 봄빛이 살랑거린다. 나는 한동안 앉아 내 삶의 공간을 바라본다.
22평의 다세대주택은, 어쩌면 나의 마지막 삶의 공간이 될 것이고,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아내를 떠나 보냈다. 자식들도 각자의 둥지를 찾아 오래전에 떠났다. 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에게서 떠나듯, 이제 내 아내, 내 자식들을 떠나 보냄으로써, 적어도 생물학적인 생의 목적은 다 한 셈이 되었다.
목적이 지나간 자리. 그리고 홀로 된 자리. 그러자 나의 공간은 지나치게 넓어 보이고 내가 소유한 것들은 한없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아니 어쩌면 세상에 보이는 나를 위해, 좀 더 넓은 집과 좀 더 비싼 차와 좀 더 고급스러운 물건들에 집착을 보일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허망하게도 내 시간의 큰 뭉치들은 온전히 <소유의 갈증>으로 채워졌다. 욕망이라는 끝없는 허기로 만들어진 아가리에, 나는 성실하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바쳐가며, 결국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쑤셔 넣은 것이다. 아무리 넣어도 부풀지 않는 그곳에 말이다.
그게 단지 후회스럽다.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일을. 덜 경쟁할걸. 그냥 그저 하늘과 구름 한 번 더 보고, 잽싸게 마로니에 나무 뒤로 사라지는 청설모 부부가, 내 방 네모난 창에 다시 나타나 길 기다리는 설렘이나 진작 배워둘걸.
나는 왜 이런 사실을 내 삶의 종착역에서 비로소 느끼게 된 걸까? 도대체 무엇이 애초에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인간은 원래 그 삶을 얼추 다 살아봐야 비로소 작은 깨달음 하나 얻고 가는 존재로 빚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