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톤 일상 여행
할 일은 있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퇴근 시간,
그냥 빙 돌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퇴근길 여행 정도라 해두겠습니다. 비록 차도이기는 하나 자동차 통행이 많지 않고 햇볕과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과나무가 가득한 그런 길입니다.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저녁해로 환한 서쪽 산을 바라보며 한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10리를 좀 넘어 달려가니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저수지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저수지에는 노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보트 하나가 수상스키를 끌려고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호수 가운데를 가르고 지나가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 오면 누구나 사진을 찍고 간다는 산속 마을을 연결하는 좁고 긴 다리. 그 위를 지나 저수지를 가로질러 가니 산기슭 아래 길게 이어지는 멋진 데크 산책길이 있었습니다.
데크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길에서는 복숭아 단내가 가득했습니다. 하늘을 보니 어둑어둑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고 앞에는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고개가 고개를 쳐들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넘다 날이 완전히 저물 참이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자동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구길과 시골마을들을 잇는 길로 가다 보니 날은 어두워졌고 이러다가 외딴집 불 켜진 현관에서 흰 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이나 하지 않을까 조금.. 아주 쪼끔 무서웠습니다. (사실 이런 어두운 길을 다녀본 경험이 꽤 있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없어도 무섭지만 오히려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길에 사람이 걸어오면... 어휴~ ^^)
아무리 어두워도 배고픈 것만큼 무서운(?)것도 없나 봅니다. 어느 마을 어귀에 꽤 사람들이 차 있는 식당이 있어 들어가 식사를 맛있게 하였습니다.
시장기가 반찬이라고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이렇게 어두운데 어찌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인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식당 아저씨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 빼면 두어 시간 달려본 퇴근 여행이었습니다. 오늘이 여정 속에서 남은 풍경 사진 몇 장 아래에 둡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길가에서는 뭔가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봉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는 해가 마지막 숨을 토하듯 긴 그림자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탁 트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대학교수님이 운영하는 수상레저클럽도 있었습니다. 다음에 한번 와봐야겠습니다. 오래전 타던 수상스키의 기억도 살릴 겸. 그때 보너스로 한 바퀴 더 돌려주어... 팔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는 ㅎㅎㅎ
오봉저수지 풍경입니다.
저수지를 가로진 다리를 건너가니 산기슭을 따라 이런 멋진 데크길이 길게 이어지더군요.
그리고 자연이 저수지에 그린 멋진 데칼코마니...
어느새 어둑어둑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고개를 쳐든 고개가 하나 있었고 집으로 가기에는 아직 반도 못 왔으니.. 그래도 어떻게든 집에는 들어가겠지요. 차도보다도 어두운 시골길이 조금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가끔 개들이 짖어주기도 해서 괜찮습니다. ^^
쪼끔 무서울라고 합니다만.. ㅎㅎㅎ 우리나라가 좋은 것이 어딜 가던 사람 사는 집들이 구석구석 있다는 사실입니다. 괜찮아.. 괜찮아를 속으로 되뇌며 예전에 받아두었던 오디오북 하나를 열어 듣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시골 마을길을 따라 20리 정도 달려가니 드디어 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서운 밤길도 허기를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시골 마을 어귀에 불을 밝히고 있던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나름 맛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ㅎㅎ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시원한 커피 한잔 해야겠습니다.
소중한 시간이 염려와 불안으로 매물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가 곰곰이 생각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퇴근 여행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