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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니 Dec 18. 2023

십대 소년 투병기(2)

10년간 함께한 혈액암을 영원히 떠나보내며

1. 폐렴에서 시작된 발병


 항상 병마와 함께하는 청소년기를 보내며,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하는 의문에 어렸을 적 나의 몸 상태를 짐작해볼만한 사건들을 자꾸만 떠올려보곤 했다.


물론 내가 태생적으로 강건함을 타고났다거나, 노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될 때까진 건강을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그래서 내가 그 무엇보다도 부러워했던) 그런 체질은 원래부터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었다. 더듬어보면 아주 어릴 적엔 아토피가 있었고, 감기는 1년에 두세 번은 통과의례로 겪곤 했다. 하지만 내가 내 또래에 비해 체력이 많이 부족하다거나 눈에 띄게 허약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체육대회 때는 반 대표 계주 선수로 발탁되고, 체력장 때마다 반 내에서 순위권에 드는 기록을 내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체력장에서도 반에서 오래 달리기 1등을 했던 기억이 있으니,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의 체력에도, 적혈구 속 혈색소(헤모글로빈) 수치에도 별 문제는 없었던 것이리라.


 그러한 기억들에만 비추어보아도, 나의 혈액암이 선천적인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고, 나중에 의학적으로도 "상세원인 불명의 후천성 질병" 같은 단어들로 규정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첫 발단은 중학교 1학년 때 앓았던 폐렴이었을 것이라고, 나와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추측하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해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 정기 시험, 즉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중학생에게 ‘학업’이란 단어는 다소 과한 느낌도 들지만, 편의상 학교에서 사회화 및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공식적으로 교육하는 모든 것을 ‘학업’이라 칭한다면, 나는 이 ‘학업’을 일말의 고민 없이 깔끔하게 외면해버릴 수 있는 간 큰 부류는 아니었다. 또 초등학교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학교의 생활을 막 시작하면서, '초등학교에서의 생활과는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모종의 압박감도 받았던 것 같다.


 아무튼 시험 며칠 전부터 중간고사 대비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학원에서 저녁까지 공부를 했다. 그리 덥지 않은 계절의 그리 덥지도 않은 날이었는데, 학원에서는 좀 지나칠 정도로 냉방을 강하게 했다. 에어컨 앞에서 직통으로 바람을 맞으며 공부한 나는 대번에, 불과 반나절 만에 감기에 걸렸다. 흔한 감기이려니 생각하고 동네 작은 병원을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낫지를 않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폐렴이었다.


어머니께선, 그때 갔던 동네 병원에서 폐렴을 초장에 잡아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우리 가족이 자주 가던 단골 병원이 사람이 많거나 하필 쉬는 날이거나 했던 이유로, 처음 가보는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갔다면 폐렴을 초기에 막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단골이 아닌 새로운 병원에 발을 들임과 함께 나의 병마도 시작이 되었으니, 어머니께서 두고두고 후회하신 것은 당연지사. 나 역시 이후 오랜 기간 투병을 하며 ‘그때 학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에어컨이 너무 강하니 꺼달라고 말했더라면, 원래 가던 병원 혹은 다른 큰 병원으로 갔었더라면’ 하는 등의, 내 병마에 영향을 주었던 크고작은 선택의 순간들에 대한 후회적인 가정을 수도 없이 했더랬다. 하지만 역사책에는 가정이 없듯이, 우리의 모든 과거에도 가정이란 없는 법이다.


 어쨌든 폐렴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후, D병원으로 옮겨가 일주일간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를 받았다. D병원은 규모면에서 종합병원 보다 한 단계 아래의 준종합병원에 속했는데, 머리털 난 이후로 이 정도 크기의 병원에는 가본 적도, 입원을 해본 적도 없었기에 나는 뭣도 모르고 신이 났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것이 들뜨기도 했고, 자아가 형성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입원이란 것을 해서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고 있으니 소설이나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또 폐렴이란 것이 (지금의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극한의 고통을 경험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병은 아니기 때문에, 기침과 발열로 며칠 고생한 뒤 나중에는 완전히 쌩쌩해졌다. 물론 열과 기침의 고통이 일반 감기에 비하면 훨씬 심했던 것은 사실이며, 밤새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목안에 상처가 나 피를 뱉어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 자체는 건조하게 남아 있을 뿐, 그 당시 '고통의 감정’ 자체는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피를 뱉었던 기억처럼 여지껏 남아 있는 몇몇 장면들도 딱히 큰 ‘임팩트’는 없는, 한층 담담한 느낌들로 변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거니와, 당시의 입원은 이후에 겪은 입원치료들의 고통에 비하면 그야말로 경미한 아픔이었기에 내 일련의 투병 스펙트럼 속에서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쫓겨난 것일지도.


 지금 내 기억 속 D병원에서의 일주일은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창문을 뚫고 들어와 병상을 감싸는 햇살, 내가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간호사 누나들의 미소, 어머니께서 병상 옆 보호자 간이침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침마다 드시던 커피 냄새... 그 모든 것이 따뜻했다. 어떤 간호사는 어머니가 동화작가라는 것을 알고나서는 본인도 작가지망생이라며 사인을 받아가기도 했다. 훈훈한 광경이었다. D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병실 침대에서 소설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있는 걸 보면, 내가 병상에서 소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는 말짱했다는 증거다. 스무 살이 넘어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서술을 발견했을 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경험을 다시 찾은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과 청춘 시절에 병석에 누워있는 시간은 정말 마법의 시간이라고 할 것이다! 바깥 세계, 즉 마당이나 정원 또는 길거리의 자유 시간의 세계는 아주 희미한 소리가 되어 병실로 들어올 뿐이다. 병실 안에는 환자가 읽고 있는 이야기와 형상들의 세계가 무성하게 우거진다. 고열은 주변 세계에 대한 감지력을 떨어뜨리고 상상력을 날카롭게 하여 병실을 하나의 새로운,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 이때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증의 시간은 아니다. 즉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의 시간이다. 동경, 회상, 불안, 욕망 등이 미궁을 만들어놓아 환자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길을 잃고 또 다시 찾았다고 또 다시 잃곤 한다. 이때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이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 할 것 없이.’


 폐렴으로 일주일 동안 입원했던 경험은 바로 이러한, 현실이라기보다는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는, 그런 경험이었다. 그리고 딱 그때까지만 가능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이후의 입원들은 판타지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절실하고도 잔인한 현실로서 내게 닥쳐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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