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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무 Dec 27. 2022

2022년 4월, 가야할 길.

영화 <1917>을 보고


지도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선택되었다. 할 줄 아는 건 그저 뛰는 것 밖에 모른다. 가는 여정은 험난하다. 이 길이 언제 끝날지 동이 트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다. 게다가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아무것도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바로 몇시간 전까지 적군이 주둔했던 지역을 가로질러 뛰며 도처에 생명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전쟁터에서 죽는 건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게 아닌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래도 달려야 한다. 동료의 형이 있는 부대로, 내일 아침 예정된 공격을 막으려면 독일군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군 1600명의 병사가 몰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다. 그렇게 달리다 들판의 외딴 빈집에 다다랐다. 키우던 젖소에서 갓 짠 우유가 아직 식기도 전인데 사람들은 모두 피신했거나 사라진 폐허가 된 집이었다. 긴장을 놓을 새도 없이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공중전을 벌이던 헬기가 순식간에 이쪽으로 추락했고 간신히 다치는 것은 면했지만 헬기는 불이 붙었고 비명을 지르는 조종사를 빼냈으나 그는 적군이었다. 편안하게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 그를 구할 것인가의 기로에 봉착했을 때, 동료는 위험에 빠진 적군을 살리자며 물을 퍼오라고 했다. 물을 뜨러 간 사이 구해준 조종사의 칼에 의해 동료가 피살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살아야 하고 나는 죽어가는 동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출혈을 한 동료를 보내며 그의 어머니에게 용감하게 죽어갔다는 편지를 꼭 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시 일어나 달려간다. 지도도 볼 줄 모르는데…  

죽어가는 순간에도 길을 안다고 약속해달라는 동료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되뇌였지만 사실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물어볼 뿐이다. 우연히 만나 얻어탄 다른 부대 병사들에게 물어보고 힘겹게 도착한 프랑스 마을에서 이곳이 그 마을인지 확인한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중간 거점인 프랑스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은 독일군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지역을 지키는 남겨진 독일군병사에게 쫓겨 들어간 곳은 마을 주민 한명이 숨어서 살고있는 지하였다. 그곳에는 한 여자와 갓난 아이가 있었고 여자는 전쟁 고아인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병사는 아이를 보자마자 가방에 있는 온갖 먹을 것들을 다 내어준다. 아기가 너무 어려 먹을 수 없다고 하자 아까 폐허가 된 집에서 담아온 갓 짠 우유가 든 병을 내민다. 자기는 하나도 먹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에게서 얻은 단서를 붙잡고, 숲이 있고, 강이 있으니 그 강을 따라가라고.. 곧 동이 터오므로 위험하다고 말리는 여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병사는 다급하게 달려간다. 이제부터는 빗발치는 총에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달리기로 있는 힘껏 내달린다. 잠시 머물러도 잠시 쉬어도 잠시 숨을 돌려도 괜찮을 것 같은 안전한 지하공간에서 그는 짐을 부리지않는다. 그는 숨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편안히 눕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각자에게도 그러한 길이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길이지만 내가 가야하고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내가 제대로 가고있는지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왜 이렇게 힘들고 버겁기만 한건지 길 위에 함께 가는 이는 보이지 않고 나 혼자 고독한 이 길을 언제까지 계속 가야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식량은 떨어지고 체력도 바닥이 나서 금방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때로는 쉬어 가라고 괜찮다고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작은 쉘터같은 곳을 만나기도 한다. 그곳에 다다르면 따뜻한 온기와 단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쉴 수 있고 또 지친 여정 쉬어도 된다고 그렇게 열심히 가지 않아도 된다고 부추기는 이의 따스한 조언에 마음이 기울곤 한다. 조언을 해주는 이는 의도가 없지만 그는 나의 뜻과 목적과 여정을 모른다. 그럴 때 망설인다. 어쩌면 저 사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가려는 곳은 허상일지 모른다고. 따뜻한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하지만 가야 한다. 때로는 혼자서라도 가야 한다. 잊혀지고 외면 받고 아무런 업적도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멈추지 않는 것 밖에 없는 내가 묵묵하게 가야하는 길이 있다. 지도도 볼 줄 모르지만 길 위에서 만난 나그네에게 받은 정보에 의지해서라도 가 봐야 한다. 가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아무도 모른다. 확신과 확인은 없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확신과 확인이 없이 내디딘 발걸음들이 쌓여서 나는 이미 저만치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데 이제 와서 멈추거나 뒤를 돌아다볼 수 없다. 그래서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간다.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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