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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May 24. 2021

표영삼선생 동학강의 -4

2004년 10월 27일




선악의 가치관을 넘어

논학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울님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 라면 어째서 선과 악이 있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수운 선생은 즉답을 피합니다. 다만 “세상에는 귀천이 다르고 고락의 이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군자의 덕은 기가 바르기 때문에 천지의 덕과 합일하지만, 소인의 덕은 그렇지 못 해 천지의 덕과 어굿난다.” 이 대답에 나오는 군자의 덕, 소인의 덕이라는 말에 나오는 덕은 행실, 품행이라는 의미로 풀 수 있습니다. 즉, 군자는 바람직스러운 행실을 하는 인간으로 기가 바르고, 소인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실을 하는 인간으로 기가 바로지 못하는 것입니다. 군자는 기가 바르기 때문에 천지만물, 온 생명을 생성하고 기르는 데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수운 선생의 가치관은 선과 악을 가르는 데 있다기보다 기를 바르게하는 수행론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실제 수운선생은 숙기(淑氣, 맑은 기운), 탁기( 濁氣, 탁한 기운), 정기(正精), 기부정(氣不正) 등의 용어는 쓰나 악기(惡氣)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기에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그 방향을 바람직한 방향, 즉 천지생명의 뜻과 일치시키느냐,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거나 천지의 뜻에 어굿나게 하느냐가 중요한 갈림길이 됩니다. 그래서 탁기를 제거하고 맑은 기운을 길러 마음을 순수한 상태로 가져가야 한다는 수행의 방법을 가치관과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울님을 위하는 다짐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는 '주문'도 같은 맥락입니다. 주문이라 하니까 복을 비는 미신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13자 주문은 철저히 자신에 대한 다짐의 글인니다. 시천주(侍天主)는 내 몸에 모셔져 있는 한울님을 부모처럼 섬긴다는 뜻입니다. 조화정(造化定)은 함기덕(슴氣德) 정기심(定其心)의 상태로 스스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즉, 내 몸에 모셔져 있는 한울님을 부모님처럼 섬기면 스스로 그러하게 하늘님의 덕과 합일하고 하늘님의 뜻과 같이 내 마음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영세불망(永世不忘)은 평생에 걸쳐 한울님을 부모처럼 섬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요, 만사지(萬事知)는 모든 일에 지기도(知其道 )하며 수기지(受其知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평생토룩 한울님을 부모와 같이 섬기면 모든 사리를 확실하게 분별하여 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알며 나아가 삶에 대한 지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13자 주문은 스스로 정진하겠다는, 수행과 공부에 대한 다짐을 뜻합니다.


조직과 실천

동학의 조직은 접(接)으로 구성됩니다. 흔히들 접이라 하면 지역조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접은 인맥 관계의 조식입니다. 도를 전한 사람과 받은 사람들 50호 내외가 접을 이룹니다. 접의 연원은 수운 선생이 전국을 떠돌 때 접한 보부상의 접주, 접장 제도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치밀한 인맥 중심의 조직이었던 것도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862년 흥해에서 수운 선생이 16명의 접주를 임명하는 이야기가 기록에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접조직이 철저하게 자치제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수운이나 해월의 명령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동학이 내재적 신관이나 이중세계가 가진 권위구조를 거부한 평등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접주는 임명제가 아니라 승인제였습니다. 즉, 접의 어른으로 대접받는 사람을 수운이나 해월이 승인한 것입니다.  접은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운영된 자치조직이었습니다. 동학혁명과 같은 유사시에도 명령에 의해 동원된 것이 아니라 주체적, 자발적으로 기포(起包)합니다.  교조신원운동, 동학혁명, 3.1운동 때도 개인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접과 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접이나 포가 사회적 행위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포(包)는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 이후에 동학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몇 개의 접을 하나로 묶은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포도 역시 자치조직이었고 그 우두머리를 우두머리접주, 후에는 대접주라고 불렀습니다. 명칭은 김개남포, 손화중포처럼 개인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충의포, 경충지포처럼 공식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접은 승가와 같은 성직자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또한 교회와 같은 지역성이 강한 공동체도 아니었습니다.  접을  규정하면 동학의 이념을 사회화시키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념의 사회화-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수운 선생 사후 지방관료들은 동학교도들을 엄청나게 착취합니다. 수운 선생이 이단으로 처형당했기 때문에 그것을 빌미로 동학교도들을 수탈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학을 합법화시켜 달라고 나선 것이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었습니다.  교조신원운동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동학의 사회여념인 보국안민을 위해 일본과 서양의 침략으로 국권을 위협받고 있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세웁니다. 


우선 공주와 삼례에서 집회를 열고 광화문에서 복합상소를 올립니다. 하지만 교조신원운동은 정부에서 거부해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동학교도들은 보은취회를 열어 국권 침탈에 대항해 국권회복하자는 척왜양운동을 본격화합니다. 3만이 모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보은취회는 정부에서 폭도들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 했습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가려서 데려오고, 생각있는 사람을 데려오며, 집에서 노자를 만들어줘라, 그리고 관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말라'는 통문을 돌렸습니다. 또한 집회장소에서의 상거래가 너무나 정확했고, 또한 집회 자리에는 대소변의 찌꺼기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밥값을 못 낸 교도 대신 접주가 삯을 치르고 풀어준 것이 기록에 남을 정도로 규율이 잡혀 있었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내외 현실에서 사람들은 규율이 정확하고 사람을을 위하는 동학에 더욱 경도됩니다. 사람들 사이에 동학밖에 대안이 없다다는 조류가 생기고, 이것이 동학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조직과 이념이 동학혁명을 주도했습니다. 학계 일부에서 무위이화(無爲以化)의 종교이기 때문에  동학은 혁명과 무관하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일 뿐입니다. 접과 포라는 동학의 조직이 동학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인맥조직인 이 접과 포를 통해 동학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섬기 듯 하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보국안민의 이상을 사회화시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동학혁명으로, 3.1운동으로 신문화운동으로, 일제하 농민운동, 노동운동, 신간회운동, 민족독립운동, 해방후 민족주의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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