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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oo Jun 08. 2022

행복한 돼지의 깨달음

계절의 맛에 숨은 정성과 수고

초당옥수수를 샀다. 옥수수 산 게 뭔 대순가 싶겠지만 30년 넘게 살면서 옥수수를 처음 사본 거라면 조금은 유난을 떨어도 되지 않을까. 레토르트 피자, 과자, 라면, 핫도그 같은 것만 살 줄 알았지 수염 숭숭 달린 옥수수는 나도, 내 장바구니도 초면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땐 굳이 내가 사지 않아도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봄에는 달래 된장국과 냉이무침, 여름엔 오이냉국과 자두, 가을엔 사과와 감, 겨울엔 굴과 딸기... 때 되면 먹을 수 있는 거구나 했지 그 '때'가 언젠지는 잘 알지 못했다. 겨울에 참외를 찾는 내게 아빠는 "니도 참, 철 모르고 산다"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지난 달, 동네 시장에서 산 참외. 이 또한 처음으로 사봤다

먹을 줄만 알았던 행복한 돼지는 독립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때마다 사다 나르는 부지런함 없인 먹을 수 없는 게 제철음식이란 사실을. 그동안 얼마나 손쉽게 열매만을 취하며 살아왔는지를. 양손 무겁게 장바구니를 들고 날랐을 부모님의 수고를. 어떤 계절이 어떤 열매를 주는지도 모른 채 세상 똑똑한 척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직접 장을 보며 깨달았다.

옥수수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그렇게 장바구니 신고식을 마치고 내 앞에 놓인 옥수수 두 자루. 먼저 물에 씻어야 하나? 껍질에 싸여 있었으니 깨끗하겠지? 씻은 다음엔 그냥 찌면 되나? 인터넷에 옥수수 찌는 법을 검색하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헛똑똑이".


초당옥수수는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해도 맛있다는 얘기에 그러기로 했다. 3분. 땡. 접시가 뜨겁다는 블로거의 말까지 새기며 조심스레 접시를 꺼냈다. 김이 펄펄 나는 옥수수 끄트머리를 잡고 알 하나를 뜯어 입에 넣자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게 여름의 맛이야. 알고 먹으니 더 맛있지?' 알알이 옥수수들이 톡톡톡톡 입 안에서 터지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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