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쓰고 나를 보지 마시오

by 나무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지금에도

우리는 감기나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자주 쓰는 편이다.


누군가 마스크를 쓴 채

맨얼굴인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상대방 얼굴 생김을 알 수 없는데

상대방은 내 생김새를 환히 알아차린다.


물론 상대방은

나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거나

자기가 아는 사람과 닮아서

바라다보았을 수 있다.

하지만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시선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게 있다.

보는 자는 보이는 자를 지배한다.


사극을 보면 임금은 아랫사람을

자유로이 내려다보지만

아랫사람은 임금을 함부로

쳐다보지 못한다.

쳐다보면 안 된다.

불경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보는 자(임금)는 지배자이고

보이는 자(신하와 백성)는 피지배자다.


마스크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상대방을 보는 사람도

지배자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자신은 마스크를 쓴 채

상대방의 얼굴을 직시하 건

불손하고 불경한 처신이다.




오늘날 군인들의 인사법인 거수경례는

중세 기사들이 투구의 면갑을 올려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밝히고,

무기가 없음을 알리는 관습에서 유래했다.


환경과 보건의 문제로

마스크를 쓰게 되는 현재,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마스크를 벗고 인사할 일은 없다.

자기 편의와 필요에 따라

쓰고 다닐 자유가 있으니까.


그래도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타인을

응시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는 않다.


상감마마나 중전마마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기의 얼굴은 숨기고

상대방 얼굴을 주시하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인 듯싶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소지가 있다.


마치 범죄자가 자기 정체를 숨기고

희생양을 물색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도 있다.


물론 시선은 상대방 쪽으로 가지만

시선의 초점은 다른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몇 초 이상 집중하여

상대방을 주목하는 행동은 결례다.


나는 마스크를 쓸 경우

되도록 상대방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한다.

거리를 걸을 때는 간판을 쳐다보거나

지하철에선 광고를 읽거나

핸드폰을 본다.


마스크를 쓰고

맨얼굴인 상대방을 응시하는 건

공평하지 못하고 비겁한 행동이며,

일종의 ‘관음증’ 일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임금과

용안을 볼 수 없는 백성 사이처럼

권력관계 설정의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얼굴도 콘텐츠가 되어 버린 시대

타인의 얼굴을 보거나

내 얼굴을 보이는 일도

조심스러워진 세상이

각박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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