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일은 안 한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친정아버지 생신이 곧 다가온다. 매년 해왔듯이 생신 날짜 직전 주말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다녀온다. 팔순 했으니 살만큼 살았고 생일상도 받을 만큼 받았다며 올 해는 아버지 당신 형제와 오붓이 핏줄로 살아온 회포를 나눌 참이라고 하신다.
우리 아버지, 참 팍팍한 시대를 사셨다. 가난이 일상이고 전쟁의 참혹도 겪었다. 빈한한 시절을 자긍심으로 버텨낸 세월이다. 아버지 고향은 첩첩산골이라 지금도 완행버스조차 들어가지 않는 동네다.
아버지는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짓는 천수답 서너 마지기에 비탈밭 밭뙈기 한판이 다인 초라한 집의 장남이셨다. 거기다가 병색 짙어 농사일에 손 놓은 아버지와 들일 모르는 어머니와 줄줄이 동생 넷. 그 책임감과 짊어진 무게가 힘들어 까무룩 현기증이 나는 장남의 자리였다.
성실히 살아온 덕에 인동 댁 맏아들은 골짝 사람들의 눈높이로 보면 출세를 했다. 그 세월 뒤엔 유순하지 않은 험로가 첩첩이었을 텐데 그 세월은 잘 벼려져서 단아한 달항아리가 만들어졌다. 아버지 생은 색채가 아름다운 무늬도 없고 모양이 현란해 순식간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함도 없다. 그래도 뭉텅 잘라낼 수가 없다. 인고의 세월을 품고 사신 평생이라 아버지 앞에 앉으면 단정한지 나를 살피게 된다.
두 분 숙부님 연세도 팔십 안짝이다. 한때 젊은 객기로 기운 좀 썼다는 막내 숙부도 며느리 둘을 본 할아버지다. 맏형에 대한 콤플렉스와 현실 불만을 우리 집에 오면 술기운을 빌어 우락부락 불편하게 했던 분인데 주름 패인 세월에 묻혀서 부드러워졌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 체질을 받아 병치레 세월이 길었던 첫째 숙부는 연세 들면서 오히려 건강해지셨다.
아버지 고향 동네에서는 조상 묘를 잘 쓴 집안으로 불린다. 자손이 흥한 집이라 그렇게 불린다 한다. 지난한 세월 속에 노력하고 애쓴 흔적이 쌓인 모습이겠지만 알뜰하게 다져온 한평생을 알기에 아버지 형제분들은 서로서로 고맙다 고맙다, 공을 나눈다.
아버지는 아버지 형제 5남매에게 그냥 큰형, 큰오빠만이 아니었다. 일찍 세상 뜬 아버지를 대신하고 인생 선배로 스승의 역할도 하고 때론 친구가 되기도 했다. 맏며느리로 막중한 책임을 다하느라 친정어머니의 가슴에 부침도 있었고 우리도 모든 것을 사촌들과 공유해야 하고 먼저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부당하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기억나게 도드라지는 반목은 없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 두 분과 외모가 닮아 보이지 않았다. 세월 흘러 늙어가니 세 분의 모습이 어찌나 닮았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핏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유전자의 힘을 새삼 실감한다. 근육이 처지니까 골격이 두드러지고 그러니까 체형과 걸음걸이가 같아지고 심지어 목소리도 닮아갔다. 핏줄은 한때의 불쾌지수를 감수하더라도 끈끈하게 껴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애증인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풀기만 해서 우리 어머니가 부족한 살림을 꾸리느라고 힘들어하고 우리 형제가 사촌들 때문에 손해 보고 하는 것에 부당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불현듯 사라진 계기가 있었다.
아버지 칠순에 일가만 모여 조촐한 칠순 잔치를 했었다. 아버지 칠순연 자리에서 형제 세 분이 서로를 껴안고 우셨다. 잘 살아줘서 고맙고 먼저 가지 않아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아버지 좀 젊은 모습과 조금 더 젊은 모습이 다 보였다.
나눠주는 것이 힘만 드는 것도 아니고 받는 것이 마냥 덕 보는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받쳐주는 언덕이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내 형제자매도 아버지 형제애를 보고 자랐으니 저리 살자 다짐했다.
기억은 묘하다. 긴 세월 속엔 가슴 후벼 파는 냉골도 분명 있었을 텐데 지난 기억을 선택하면 대부분 보들보들하다. 아버지 생의 2/3 쯤 살아온 내 기억의 결이 이럴 진데 더 오래 묵힌 아버지의 기억은 잘 숙성되어 좋은 효소가 되었을 것이다.
내 할아버지의 삼 형제 아들인 우리 아버지의 형제는 칠십여 년에서 많게는 팔십 년을 넘게 사셨다. 세 분이서 나눌 이야기의 깊이와 가슴 적실 공감이 무엇인지 젊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그분들 셋이서만 떠나는 생전 처음 형제 여행에 응원을 보낸다.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억의 타래가 풀려나오고 형과 동생이라 숙명처럼 쌓인 응어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한 핏줄에서 태어나 긴 세월의 세상을 걸어오면서 그분들이 본 풍경과 공감과 느낌이 어둑해진 노안에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백발의 머리에 깊은 주름이 여유로운 할아버지 세 분이 낯선 여행지에서 두런두런 세월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시거든 참 보기 좋은 형제분들이라고 덕담 한마디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