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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un 20. 2019

글이 나를, 찾아오다

나는 왜 쓰는가. 에 대한 심플한 대답


 오랫동안 나는 그저 '책상머리 공상가' 내지는 '꿈속을 부유하는 아이'에 더 가까웠다.

 어릴 때부터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진 밤의 고요를 사랑했고 모두가 잠든 밤 혼자 책상 전등을 켜고 앉아 꼼지락꼼지락 나만의 세계를 짓고 부수곤 하던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대가족이 북적대는 낮시간에는 가질 수 없던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나를 규정하는 모든 이름이 사라진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기에.

 그러고 보니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올빼미족 유전자가 다분했다. 밤만 되면 내 눈은 반짝였고 어떤 낮시간보다 명료한 그 시간들은 마치 나만을 위해 준비된 비밀의 시공 같기만 하였다. 그렇게 난 얼마든지 밤도 새울 수 있었다. 물론 매우 자주 지각을 면치 못하였지만.
 
 그래 봤자 어릴 때 써본 글이라고는 학교에서 매일 숙제처럼 내주던 일기장을 채우는 것이 다였다. 가끔 교내 백일장 대회가 있긴 했지만 딱히 글쓰는 게 재밌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글을 쓰는 아이였다거나 하물며 책을 많이 읽는 아이도 아니었다.

 주로 나만의 시간은 '공상과 상상'이 주를 이루었다. 일곱 살 때부터 혼자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혼자 시장 바닥을 걸으며 떠오르던 단상들 사람들의 모습 거리의 풍경 그런 것들이 주로 내 공상의 대상이었다. 대학시절까지도 나는 글을 쓰기 위한 어떤 맹렬한 의지가 있었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외로웠고 또 외로웠다. 그 때 내 안에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차올랐고 나는 그것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내게 나와 우주만이 아는 가장 은밀한 단어였고 세상에서는 '시'라 이름 붙여진 형태의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 깊은 곳의 의식을 꺼내 형태를 갖춘 언어로 만들어내었고 가끔 그것들을 당시 소통의 창구였던 곳들에 넌지시 걸어놓기도 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피드백이 왔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궁금해하고 만나보고 싶어 하였다. 그렇게 인연이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막상 나는 그냥 밥벌이 직장인이었으나 오직 내 마음은 그것들에만 머물렀었으므로.
 
 어느 날 술자리에서 내게 "너는 계속 시를 써라"라고 말해주었던 분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였던 그분이 그 말을 해주었을 때 '그냥 나를 쓰면 되는구나'라는 확인을 받은듯해 고마움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내가 계속 시를 썼거나 글을 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돌아보니 지금껏 나와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모든 벗들은 하나같이 '나의 글'을 매개로 해서 만나게 되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나의 글이 아니라면 너무나 '가난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난 직업 글쟁이가 되고 싶다거나 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학습된 무기력으로 연명하던 침울한 청춘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는 행위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조차 깡그리 잊어버린 채 오래도록 기나긴 방황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장 '나 다워지는 순간'을 만나다


 또다시 '글'이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강렬하고 간절하였다.


 이십 대의 외로움이나 혼돈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어둠이 나를 잠식하였을 때였다. 혹독한 겨울. 삶의 의지마저 상실해있던 그 순간들 유일하게 단 하나의 어떤 의지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쓰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무언가가 내 안에 가득 차오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겨울이 끝날 즈음 작은 깨달음이 하나 일었다.
 
 모든 경험과 사유는 세상과 나눌 때에만 값지다.
 
 나는 왜 지금껏 그것을 하지 않고 있었을까. 너무 많은 시간들이 흘러간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의 경험과 사유는 내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것들은 세상과 함께 나눠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글을 쓸 때에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을. 
 
 봄이 시작되며 물밀듯 밀려오는 영감들에 나를 맡기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하자 나는 비로소 진짜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확인한 기쁨,
 
 나는 글을 쓸 때에 비로소 가장 나 다우며 가장 '나 자신이 된다'는 것.

어쩌면 시간은 그렇게 글로 쓰이기 위해 나를 기다려주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유럽살이에 관한 어찌 보면 재미없는 이야기를 담은 글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낭만적인 유럽'을 이야기할 때 혼자만 생뚱맞게 이 것을 쓰고 싶었던 데는 분명, 내가 온몸으로 경험한 지독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내 안에 선명하게 남겨놓은 유의미한 것들을 세상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글이. 나의 숨이 누군가의 숨에 한 뼘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글이 나를 찾아왔으니. 이제 나는 그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일만 남았다고. 

그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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