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인생의 줄거리를 논의하고 싶다

아빠는 인생이 이렇다고 생각해 - 초안

by 남산

#0

단편적인 견문으로 오류 많을 수 있음 주의


#1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정도는 못 되지만, 빚만 있던 부모 밑에서 나름 숨 쉴 정도까진 올라왔다. 이것만 해도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인생의 중반쯤 오니 확실히 앞으로 더 나아질 것 같다는 느낌도 많이 꺾이고 '이렇게 아등바등 현상 유지하다가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혹은 암 등으로 죽게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아이가 찾아왔다.


아직 어리지만,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크면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큰 윤곽이 이렇고, 그래서 어른들이 그렇게 사는 거란다"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물론 인생에 정답은 없는데, 난 내 부모에게 그런 얘기를 듣지 못한 게 아쉽기 때문이다.


#2 조심하렴. 돈은 매우 중요하단다.

네가 커서 어떻게 얼마나 돈을 벌지 모르겠으니, 대충 중위 연봉으로 얘기해 보자. 세전 4,000만원 전후 정도 된단다. 보통 30~60대까지 30년을 일한다 치면 평생 12억을 번다고 할 수 있지?


연봉 4천만 원에 대한 세율은 15%이므로 1.6억을 세금으로 뜯기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10.4억 정도 될 거다.


그걸로 이런저런 거 먹고 사는데, 사람들이 평균 월 200만 원 정도 쓴다고 하니 그럼 7.2억을 쓴다 치고 (거기도 세금이 포함되어 있단다) 남은 돈은 3.2억 정도 정도겠구나. 어쩌면 은퇴 후 생활비, 병원비라든지 등등으로 다 쓰고 죽게 될지도 모르지. 그렇게 '공수래공수거'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아무튼 3억으로 집을 샀을 수도 있고, 주식을 샀을 수도 있고, 몰라서 그냥 현금으로 들고 있을 수도 있는데 어떤 형태로든 잘 남겨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세금을 또 뜯어간단다.


대략 20% 정도의 세금을 자식이 내야 하는데, 누진 공제를 하므로 대략 4천만 원 정도 내게 된다. 그러면 대략 2억 7천만 원 정도를 자식에게 남겨주면 본전치기는 했다고 할 수 있겠구나. 물론 물가 상승으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 투자 수익 혹은 손실 등 복잡한 계산은 다 무시한 엉터리 계산이긴 해.


그렇다면 1년에 2개월 동안 나라를 위해 일하고 10개월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다 가는 게 인생이라고 보면 된단다.


#3

그럼 연봉이 1억이면 어떨까? 이 정도만 해도 상위 7% 내외의 엄청난 연봉이다만, "140만 명"이나 되는 흔한 (?) 연봉이란다.


똑같이 적용하면

- 평생 30억 벌고, 35% 세금 내면 23.4억 정도.

- 7.2억 쓰고 (더 쓸지도?) 16.2억 남고

- 증여하면 40% 세율이고 4.5억 정도 내야 하니까

- 11.7억 정도 남는다고 볼 수 있을까? 이것도 큰 돈이지만...

세금만 11.1억 내는 셈이니 1년에 4.4개월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거란다.


더 벌면 그만큼 세금을 무시무시하게 내게 된단다. 많이 벌면 그만큼 기회를 준 사회에 환원하는 게 도리이나, 증여는 '이중과세' 논란이 있는 만큼 잘 대비해야 한단다.


#4

증여세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번 돈 다 쓰고 죽는 거겠지. 물려줄 돈이 0원이면 세금도 없으니까. 그럼, 뭐에 쓰는 게 가장 좋은가? 아직 네가 어려 막연하긴 한데, 그게 교육비인 것 같다고 생각한단다.


- 자식을 공부시키지 않고 10억을 증여하는 것

vs.

- 10억을 교육비로 태워서 자식이 연봉 높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


부모 뜻대로만 된다면 후자가 증여세 0원으로 10억의 미래가치를 증여하는 셈이니 좋아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정말 알 수 없고, 자식은 부모 뜻대로 안 되며, 자산은 그 자체로 증식하는 경향이 있으니 '미래의 10억 가능성'보단 '10억 중 세금 제외하고 7억 8천만 원 증여'가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구나.


다른 사람들도 계산기를 두드리진 않아도 저마다의 인생 경험이 있으므로 알게 모르게 교육비와 증여를 저울질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 좋은 직업은 비단 돈뿐만 아니라 인생의 보람(자아실현이라고 해도 좋고)과 같은 무형의 가치도 있으므로 아빠도 교육비를 태우는 게 그리 아깝진 않다고 생각한단다. 교육비라는 건 꼭 사교육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고 다양한 인생 경험을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5

따라서 한국의 사교육 열풍이 좀 기묘하긴 해도 아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단다. (사실 외국도 그리 다르진 않다던데?) 모든 부모가 눈먼 바보라서 사교육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 현상을 겉만 보고 비난할 게 아니라 어째서 그렇게 하는지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아 물론 아빠는 너와 좀 더 놀고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고 싶단다. 그런데 너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고 아빠는 아직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한다고 바쁜 게 안타깝구나.

매거진의 이전글선배의 장례식을 다녀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