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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Aug 13. 2020

글쓰기와 필사의 관계

뭔가를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건 아주 불편한 경험이다. 예를들어 여러분이 책을 쓰고 싶다고 할 때, 주변인들 중 그 누구도 책을 써본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때, 나는 책에서 멘토를 찾는게 가장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부를 지속하다보면 어떤 시점에서 갑자기 주변인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걸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예를들어 여러분의 매우 큰 관심사가 A라고 할 때, 주변인들이 A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갑자기 주변인들 모두가 바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성공하고 싶었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인생을 바꾸고 싶었고 이 더러운 운명의 굴레를 벗고 싶었다. 


과거의 나는 시간은 많고 돈은 없던 가난한 학생이었다. 집에 있는게 너무나도 불편했던 까닭에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전공 공부보다는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 빌려서 읽는 경우도 있었고 아르바이트한 피같은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의 책들 중 몇 가지는 지금도 가지고 있고, 며칠전에도 한 번 훑어보았다.  벌써 10년이 넘은 시간들이다. 


그때의 나는 꿈도 목표도 없었고 그런게 있는줄도 몰랐다. 그저 막연하게 미래를 상상해본적이 있었으나 인생을 허무하게 살고 있었고 자기의 마인드보다는 남들이 하는대로 그저 따라가기 바빴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를 몰랐고 그럴만한 실력도 없었다. 쓸데없는 욕심으로만 가득찬 두 눈은 젊음으로 빛났으나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위치 인식 기능이 고장나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로봇 청소기 같은 시간이 계속 되었다.


당시 필사 했었던 노트들과 다이어리


나는 이때의 시간들, 그러니까 필사라고하는 얼핏 보기에 무가치해보이는 이 일들이 나의 글쓰기 실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내가 필사를 시작했던 이유는 어떤 책에서 필사를 해보면 도움이 된다는 문장 하나였다. 나는 책에서 시키는 일들 중 거의 대부분을 실천에 옮겼다. 믿거나 말거나라면, 나는 믿는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책에서 메모를 습관화하라고 하면 메모를 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하면 일찍 일어났다. 산책을 하라고하면 산책했고 1년에 100권을 읽으라고하면, 100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했다. 잘 모를 땐 시키는대로 하는게 가장 편한 법이다.


당시엔 대부분의 책들을 필사했었는데, 책 전체를 필사하기란 시간적/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까닭에 책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필사를 했다. 매일같이 손가락과 손목이 아팠다. 샤프와 볼펜을 잡았던 손가락엔 굳은살이 강하게 들어섰고 지금도 그 곳이 딱딱하다.


원서를 읽기에는 외국어 실력이 터무니없었기 때문에 주로 번역서를 읽었다. 그리고 내 글쓰기 스타일은 마치 번역투로 정립되어버렸고, 내 첫번째 책 <1인분 청춘>을 읽다보면, 원서를 번역한 듯한 까끌한 느낌과 다듬어지지 않는 향기가 물씬 난다. 모 독자로부터 '이 책은 번역서투가 너무 많이 난다'는 악플을 받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필사는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걸리고 펜과 종이가 필요하며 시간 활용이 비효율적인데다가 민간 우주선이 발사되는 2020년에 아날로그 형태로 써야한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필사란, 독하게 마음먹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는다. 독한 마음은 불편하고 어렵고 까다롭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사는 분명 도움이 된다. 


나는 지금은 필사를 하지 않는다. 예전만큼 간절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예전보다 삶이 편해졌기 때문일수도 있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안한지는 오래되었다. 


예전에 필사했던 노트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는 아주 가끔 그 노트를 읽어본다. 오래된 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듯이 예전에 썼던 글을 읽어보면 그때의 감정이 갑자기 되살아나서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서점에는 수 많은 책이 있고 국내에도 엄청나게 많은 출간 작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가들을 다 더해도 빙산의 일각이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아니다. 사람들은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글쓰기는 훈련이 필요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익힌 글쓰기는 인생에 정말로 큰 도움을 준다. 오늘날에는 문자로 소통하는 일이 과거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메일 하나, 카톡 하나, 문자 하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한 문장이 당신의 인생을 바꾸고 당신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좋든 싫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해서 큰 불편을 겪는다. 인간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아주 가볍고 흔들림이 심하다. 토시 하나만으로도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감정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상처받는다. <인간실격>의 표현을 빌리자면, "솜에도 상처를 입는다"


전염병, 거리두기, 화상회의 등 새로운 문화 시대에는 글을 더 잘 써야한다. 카카오톡 메시지 한 개, 이메일의 도입부 한 문장에서도 그 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필사를 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필사 자체를 추천하고 다니진 않는다. 필사는 어렵고 힘들고 귀찮으며 오래걸린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걸 어려워한다. 세계 최고의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되라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세련된 문장과 비유로 전달하는것은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여러분이 글이라는걸 평범한 수준으로만 쓸 수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아주 달라질 수 있다. 이건 내가 직접 경험한 경험담이므로 객관적이라고 보기엔 어렵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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