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죽을뻔 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 배고파서 죽을것 같다'의 죽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진짜 '사망'이라는 죽음에 관해서다.
8월 중순의 어느날, 비가 무지막지하게 오는 날, 강연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물 웅덩이를 밟으면서 차가 미끄러졌고 가드레일 충격 후 여러차례 회전하고서야 겨우 멈췄다. 진짜 죽을뻔했고, 사고가 났을 때의 아주 짧은 몇 초의 시간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지나쳐 갔다.
차는 그 자리에서 폐차. 천만다행으로 몸은 많이 다치지 않아 병원 다니며 조금 치료를 받고 약 먹고 해서 지금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좋아졌다. 사고난 차량의 사진도 있지만, 앞부분의 절반이 박살나버린 차의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아서 사진은 굳이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고가 났던 날 밤, 방에 누워서 나는 생각에 잠겼고, 두 가지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나는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방향을 정해야했다.
후보 1번. 어차피 이런 사고는 또 날 수도 있다. 쉽게 얘기해서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젊은 나이에 죽을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고생이 억울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후회없도록 인생을 즐기는게 낫다.
후보 2번. 인생은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에 낭비해서는 곤란하다. 미래를 좀 더 알차게 준비해야한다. 이번처럼 불의의 사고로 죽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지금을 천운으로, 그리고 두 번째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은 인생을 좀 더 보람차게 보내야한다. 그러려면 미래를 준비해야한다. 돈을 모으고 더 훌륭한 일을 해야한다. 지금은 조금 고생하더라도 나중을 위해 준비해야한다.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나는 며칠을 고민에 빠졌다. 자꾸만 후보 2번으로 생각이 쏠렸고 결국 내 결정은 후보 2번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책을 사는 일이었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를 게을리 했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경제경영서적들과 투자 관련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았고 택배로 받아 요즘에 천천히 읽고 있다.
인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난 뒤, 나는 인생을 즐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빡빡하게 살아가는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특히 경제적으로 많은 준비가 있어야한다는게 내 결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사고도 돈을 벌려고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돈이 필요없을만큼 경제적으로 자유로웠다면 나는 사고가 나지 않았을테고 안전했을 것이며 평소같은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고였다. 특히 정신적으로 좀 더 성숙한 생각을 가지게 됐다.
나는 오래전 여행 기자단을 할 때 전국을 여행하며 많은 곳들을 방문했었다. 어떤 곳에서는 죽음 체험이라는걸 했었다. 관짝에 들어간 다음 5분 뒤에 나오기, 명상으로 죽음 생각하기, 죽음에 대한 책이나 영상물 시청하기 등 죽음 체험 관련은 나름 흥미로웠고 원고 쓰기에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근데 직접 죽을뻔한 경험을 하고나니까 그런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는걸 알게 됐다. 진짜 죽음은 사망이라는 이름의 문 앞에 엄지발가락이 걸쳐야만 느낄 수 있다. 차원이 다르다. 여행지에서 하는 죽음 체험은 사실 죽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머리로만 느끼는 죽음? 웃음이 난다.
이 글을 쓰기 전, 브런치에 '죽음'이라고 검색해보았다. 브런치에는 감성이 넘치는 글들이 많으니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글이 혹시 있을까 싶어서였다. 여러번 검색해보았지만, 결국엔 못찾았다. 대부분 그냥 '죽음'이라는 것을 상상해보는 글들이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이야기했는데(마틴 루터가 했다는 말이라는 글도 본적이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일 불의의 사고로 죽는한이 있더라도, 오늘 입장에서는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반드시 내일 무조건 죽는다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죽을지도 모른다'라면 미래를 준비하는게 맞다.
인스타그램에서 YOLO하는 젊은 친구들이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걸핏하면 해외여행을 가고 수백만원짜리 유럽 일주 사진을 올린다. 자신의 경제상황에 맞지 않는 값비싼 음식과 술을 즐기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낸다. 항상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커피를 후식으로 먹고 아주 사소한 문제로 다툼을 하고 상처를 받는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쓸데없는 이야기에 화를 내는 한편으로 카카오톡으로 누군가와 말싸움을 하고 굳이 안해도 되는 말을 함으로써 인간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엥?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토록 안쓰러워보이는 부류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나였다.
진짜로 중요한게 아니라면 부질없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같이 인스타그램에 뭔가를 올리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던 관심종자였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지 않은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지금 이 풍경을 못봤겠지?'
하고 싶었지만, 그리고 하고싶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특히 다른 사람으로 인해 못했던 일들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그토록 안쓰러운 인생을 보낸다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예를들어 내 친구 중 한 명은 식당에서 혼자서는 밥을 먹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매일 점심을 굶거나 굶다시피한다. 당연히 건강에도 좋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좋지 않다.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고, 말을 걸고 싶은 매력적인 이성이 있다면 말을 걸어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또 똑같은 고민을 해야한다.
앞날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니 진짜로 나에게 중요한 것을 하자. 그게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자. 이번에 천운으로 살아서 느낀 감정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