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듯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

글이 밥 값을 할 수 있을까?

by 남시언

요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있다. 알람도 필요 없는 자동 기상이다. 가끔은 5시 30분경에 깰 때도 있는데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겨우 일어나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린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찬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내 하루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서 아이폰에서 todolist를 실행하여 오늘 할 일들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 6시면 무척 어두웠는데 요즘엔 꽤 밝다. 보통 7시 정도 되면 모든 준비가 완료된다. 믹스커피를 한 잔 타 놓고 아이맥을 부팅한 다음 이메일부터 확인한다. 전날 밤까지 확인했기에 별다른 이메일은 없는 편이다. 그리고 워밍업을 위해 SNS를 둘러보고 블로그에도 접속해본다. 밤사이 RSS에는 많은 글이 새로 업데이트되어 있기에 관심 있는 기사들과 글도 읽어본다. 물론 커피를 홀짝이면서다.


8시 정도 되면 확인이 필요한 일들은 거의 끝난다. 보통 직장인들은 9시까지 출근하고 회의다 뭐다 해서 10시는 되어야 본격적인 업무가 가능하므로 8시부터 10시까지는 온전히 내 시간이다. 담당자들과의 업무 커뮤니케이션은 내용은 얕지만, 양이 많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 일 조금, 저 일 조금…. todolist와 GDT 방식이 아니면 이렇게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는 건 내 두뇌로 불가능하다. 난 기억력이 좋지 않기에 내 머리를 믿지 않는다. 학창시절부터 암기라면 치를 떨었다. 당장 처리할 업무가 아니라면 아주 사소한 내용도 무조건 기록해야 한다. 가령, ‘홍길동에게 이메일 답장 보내기’ 같은 것들도 무수히 적혀있다.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업무 하나당 날짜 지정, 시간 지정 알람, 분류, 태그 등을 활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깜빡하고 기록하지 않는 경우만 아니라면 업무를 잊을 일은 없다. 그리고 기록되어 있으면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이 빈 공간엔 창의가 꽃 핀다.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동안은 거의 글을 쓴다. 칼럼, 에세이, 기고해야 할 원고들, 기사 등 써야 할 것들이 꽤 있다. 때로는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기도 하고 SNS에 올릴 용도로 일기 같은 글을 쓰기도 한다. 어쨌든 쓴다. 매일 밥 먹는 것처럼 무언가를 한다면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습관처럼 밥 먹듯이 쓴다. 이 짓을 몇 주 정도 하고 나면 이 시간에 글을 안 쓰면 손가락이 근질근질한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나는 이런 식으로 지금껏 책 3권을 썼는데 유감스럽게도 2015년에는 강의와 업무가 늘어나는 바람에 글을 많이 못 썼다.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나도 직장인일 때 6시엔 절대 못 일어났으니까. 그땐 8시 아니면 다행이었다. 나는 요즘 즐거운 마음으로 새벽같이 일어나서 열심히 일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일을 내가 하기에 가능하다. 밥을 먹는 일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밥은 자기를 위해 먹으면서 왜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나는 주말도 없고 출퇴근도 따로 없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계속 일한다. 하지만 내겐 일상이 곧 일이다. 여행이 일이고 밥 먹는 게 일이며 삶이 곧 일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체험한 것들 모두가 콘텐츠가 되고 이것들은 모조리 내 것이다. 이렇게 8년 동안 블로그에만 2,800개 이상의 글을 발행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삶을 일로 만드는 데 6년이 걸렸다. 공짜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인기 있는 프리랜서도 아니라서 지갑은 얇고 가진 것 없어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평일에 낮잠을 잘 수 있고(최고로 달콤하다.), 평일에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식사 시간도 내 마음대로다. 계획서나 보고서도 필요 없다. 심지어 내겐 프린터도 없다(이 얼마나 자연 친화적 환경인가). 내가 하는 일이란 건 주로 콘텐츠를 기획하여 만들고 세부적으로는 글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디지털유목민처럼 시공간에 제약 없이 어디서나 일 할 수 있다. 자료 대부분은 개인용 서버인 NAS에 저장되어 있어 인터넷 연결만 된다면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다. 집, 스타벅스, 국내외 등 어디서나 나는 밥을 먹을 테고 마찬가지로 일도 할 수 있다.


나는 밥으로 영양소를 보충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신체처럼 내 미래를 내가 직접 만들어간다. 일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움직이고 실행한다.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는 대신 모든 걸 스스로 책임지는 능동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청개구리 심보에 죽으라고 말 안 듣는 꼴통 놈이라서 그런지, 남들이 하라는 대로는 절대 안 하면서 살아왔기에 내 미래를 남에게 맡기지 않을 수 있었다.


글? 솔직히 밥 먹듯이 쓰기만 한다면 누구나 나만큼은 쓸 수 있다. 나는 논리정연하지 않고 기승전결에 맞지도 않은 사파(邪派) 글쟁이다. 누군가로부터 배운 적도 없어서 규칙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밥 두 끼를 먹었고 글을 한 편 썼다. 당장 돈은 안 되겠지만 밥값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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