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글을 썼고, 됐다.
별다른 가치가 없는 인생일 수 있지만, 나는 내 목표에 인생을 걸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이 자기를 참조하는 재귀호출같다. 인생을 위해 인생을 투자한 셈이다. 지금껏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수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고 앞으로도 할 계획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의 나는 항상 즐거운 일만 가득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평소 힘듦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 취해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왜 인생보다 돈에게 충성하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른 대부분을 공감하면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
작가를 위한 인생 투자라는 제목을 내걸었지만 사실 내 인생이 대단한게 아님을 계속해서 느낀다. 먼지. 공기. 무(無). 내 인생이 끝난 뒤의 나는 어쩌면 하룻밤 연인처럼 금방 잊혀질지도 모른다. 근래의 나는 인생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순'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붙이고 시간이라는 길을 걷는다.
대학생 때 읽은 수 많은 성공학 서적의 이야기는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하나하나 필사할만큼 감동적이었는데, 그의 마인드와 세계관이 내게도 주입된 듯 하다.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였지만 핵심은 지식 근로, 개인 브랜드화 등이었다. 책 몇 줄의 이야기에 인생을 건다는게 어떻게 보면 참 웃기고 가볍게 느껴지지만, 인생 투자의 개념에서 생각해보면 괜찮은 전략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책의 이야기에 100% 동의하여 그대로 따라하는건 아니고 적정한 수준에서 흡수하는 것에 가깝다 하겠다.
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두고, 손해를 봐야 이득이 생기고, 투자를 해야 수익이 발생한다는 암묵적인 일련의 진리는 '나'라는 사람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단순히 현금 수익을 위한 실물 투자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변화를 위한 투자였는데, 몇 년이라는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서 점점 효과를 나타내는 듯 하다. 가령, 책을 구매해서 읽는 행위는 당장 별다른 수익이 발생하지 않지만 거기에서 얻는 지식, 아이디어, 정보, 세계관을 통해 보다 큰 미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수익성이 높은 투자다. 창의력은 여기에서 발현된다.
대중들은 부동산이나 현물에 투자한다. 반면 인생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하고 숲 말고 나무만을 보고 살아간다. 여행하지 않고 독서하지 않는다. 즐겨듣는 매니아틱한 음악 장르 하나 없고, 좋아하는 작가 한 명 없으면서 SNS로 이슈되는 인스턴트 정보에 목숨을 걸 듯 열을 올린다. 하루, 아니 몇 시간만 지나도 기억조차 나지않는 연예가십거리 뉴스를 하루종일 소비하다가 잠자리에 든다. 본인의 인생이니 누가 뭐라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이런 인생이 재미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는다.
요즘들어 부쩍 나를 '남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남작가'라는 타이틀이 매우 좋다. 어감도 괜찮은 것 같고 입에 달라붙는 혀의 움직임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해서 작가가 되었나요?"라고 묻는 이에게 내가 대답할 말은 "어떻게 하다보니..."밖에 없다. 내가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최초의 시발점은 어떤 책에서 읽은 단 한 줄, '당신도 책을 써서 작가가 될 수 있다'였다. 이런 과거사를 믿을 사람 찾기란 쉽지 않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책 출판 이전에 글을 쓰는게 작가이니 사실은 작가란 것도 거창한게 아니다. 하지만 듣는 이는 보통 이 말의 가능성을 점치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 작가가 된 건 내가 했던 일들 중 가장 성공한 투자가 되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가 그렇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공은 세속적인게 아니라, 말하자면 명예, 자존심, 스스로가 세운 목표 달성에서 오는 짜릿함 등을 의미한다. 이런 느낌은 돈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닌다.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95점 맞아야지'라고 생각한 다음 95점을 얻는 것과, 그냥 열심히 해서 95점을 얻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내 눈엔 전자가 훨씬 멋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작가가 되려고 글을 썼고,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