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보다 빛나는 순간들

좋아하는 일이란 무거운 왕관

by 남시언

완벽하게 방전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누군가 진공청소기로 내 영혼을 빨아버린듯했다. 작은 움직임조차 힘에 겨웠다. 30분을 멍하니 있다가 이불을 깔고 누웠다. 잠도 오지않고 그냥 천장만 바라보면서 누워있었다. 3시간이 지나 땅거미가 지고 밤하늘에 달이 밝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 밤 달처럼 선명한 눈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누워있었다. 순간, 움직일 수 있는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걸 제쳐두고 30일 정도 책만 읽으면서 놀고 싶었지만, 모니터 옆 탁상달력에는 빼곡하게 스케쥴이 기입되어 있었다.

정신세계가 무척 사나운 상태였다. 바닥이 파란색으로 보였다. 파란색? 파란색이라고? 살면서 파란색 바닥은 바다 빼고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치 바다위를 편안하게 나아가는 고장난 뗏목처럼 어디로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야릇한 분위기를 느꼈다. 솔직히 좀 자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잠이 안와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껌이 찰싹 달라 붙어버린 청바지처럼 처치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아이디어란건 때때로 - 아니, 자주 그렇지만 - 그 상황을 벗어날 때 나타난다. 현실을 살짝이라도 벗어날 때야말로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누워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런저런 글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아 백색 배경에 깜빡이는 흑색 커서를 앞에 두고 글감을 되새김질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커서 앞에서 나는 겁쟁이처럼 아무것도 쓰지못했다. 글을 쓴다는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 누웠다. 그러면 또 글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려 의자에 앉으면 눕고싶어졌다. 누우면 글이 쓰고싶고, 글을 쓸라치면 눕고 싶었다.

약간의 우울증 초기증상을 느끼면서 몇 시간을 멍하니 보냈지만 딱히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그냥 평범한 하루. 평범한 시간. 나는 그저 지칠대로 지친 것 뿐. 이건 흔한 일이지만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한한 열정이 나온다고? 그건 모두 거짓말이다. 좋아하는게 일이 되어버릴 때, '취미'나 '특기'가 돈으로 엮인 비즈니스, 즉 '업'이 될 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가 <무한>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이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신체적 에너지는 소모되고 정신적 에너지는 고갈된다. 에너지는 유한하다. 열정이란건 스마트폰 배터리처럼 충전과 사용의 사이클을 따라야한다.

좋아하는 일이 언제고 익숙해지면 창의력은 줄어들고 새로운 도전과 실험적 연구, 열정과 패기를 겸비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발현보다는 다분히 보수적인 '현상 유지'를 하고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약에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장 좋아하는 일이 맞다.

엄청 많은 일을 하고있을 때에도 어떤 측면에서는 아무 일도 하고있지 않은 경우도 있는 법이다. 어떤 일이 중요한 것이고 어떤 일이 불필요한 일인가? 지금껏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OOOO 분석 도구를 활용한다거나 동서남북으로 분류된 사분면에 그래프를 그리는 식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런 분석 도구를 신용하지 않는다. 이건 인간의 다양성을 매우 협소한 울타리에 때려 넣은 다음 모두 똑같은 형편없는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짓과 다를바없다. 지금의 나와 1년 전의 나를 비교분석하는 before, after 보고서를 만든다면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사람은 빠르게 적응하고,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출근'이 소원인 젊은이가 '퇴근'이 소원인 직장인이 되는건 한 순간이다.

군중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의 환하게 웃고있는 프로필 사진만 보면서 "부럽다"고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도 고통은 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그렇지 않은 노력보다 크다.

'저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자 누구인가? 그는 일반인들보다 더 깊은 중력을 느끼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더 많은 노력으로 더 적은 행복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이란건 상당히 무거운 왕관이다. 허나 짧은 일생에서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무거운만큼 썼을 때의 희열도 크니까. 아쉽게도 모든 이가 왕관을 쓸 수 있는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관이라 불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도전이라면 고통을 감내할 수 밖에 없다. 문화가 그렇고 구조가 그렇다. 하지만 도전이란건 언제나 그 자체만으로도 왕관보다 빛난다. 왕관보다 빛나는 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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