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만이 사는 집 안에서
# 혼자 사는 사람은 아플 자격도 없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막상 진행할 때엔 추진에 어려움이 있고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는 법이다. 나는 외할머니를 닮았는지, 작은 일에도 넘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는 성향임이 분명해서 초연하게 반응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가 않다. 최근 며칠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업무가 많아 골머리를 좀 앓았다. 그러던 중 목이 좀 칼칼하더니 급기야 감기몸살에 걸려버렸다. 밤새도록 술 먹다가 걸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을 다니다가 걸린 것도 아니다. 몸은 거의 쓰지도 않았는데, 정신적인 추위도 면역력을 약화하기엔 충분하다. 나는 ‘혼자’인 ‘환자’가 됐다. 개도 안 걸린다는 초여름 감기몸살에 시달리면서 며칠 동안 반 죽다가 겨우 살아났다. 두루마리 휴지를 얼마나 썼는지 모른다. 코가 다 헐었다. 1년동안 병원 가는 일이 한 손으로 꼽히고 약국도 마찬가지라서 의료보험료가 매우 아깝지만, 막상 병이 찾아오면 의료보험료고 뭐고 간에 일단 살아야 한다는 유인원의 본능으로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
혼자살 때 아프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아프면 안 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아플 자격도 없는 것이다. 밥이나 죽은 고사하고 일단 주변에 물 한잔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서러운 동시에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상비약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므로 약도 없고 병원에 갈 힘도 없는 상황이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약도 자기가 직접 사야 하고 병원도 혼자 가야 한다. 데려다주는 사람? 없다. 그 누구도 직접 말하기 전까진 내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걸 모른다. 겨우 힘을 내서 이야기한다고 한들 되돌아오는 건 건조한 걱정뿐,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모두 제 살기 바쁘다. 혼자살 때,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아플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죽음에 대해서다. 이대로 내가 죽어도 사람들은 한동안 모를 것이라는 생각은 마음마저 병들게 한다.
부모님 휘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독립해서 혼자살 때의 환상에 젖어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집도 자기 눈에 맞게 인테리어할 수 있으며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 수도 있고 새벽까지 술 먹다가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자유롭고 자기가 이 집의 주인이라는 주인 정신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길어봐야 6개월이면 끝난다. 인간은 애초에 혼자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6개월 뒤에는 고독만이 집 안을 채운다.
감기를 종종 앓는 편이라서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꼭 몸살이 난다. 몸살이 날 때마다 환자가 돼서 골골거리다가 며칠 지나면 또 살아난다. 아직은 그나마 젊기 때문에 회복이 빠른 편일 수 있지만, 이 짓을 10년 뒤에도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쯤 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결혼인데, 결혼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다시 쓸 생각이다.
혼자살 땐 다른 건 둘째치고 먹는 게 부실하므로 조금만 방심해도 병에 쉽게 걸린다. 영양소든 뭐든 일단 배만 채우고 보는 식사습관이 자리 잡고 과일이나 채소 같은 걸 접하기 어렵다. 큰마음 먹고 마트에서 사도 관리가 안되니 냉장고에서 썩히는 게 반이다. 생선은 아예 손도 못 댄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비타민이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섭취할 수 있는데 비타민은 섭취가 어려우므로 별도의 비타민 보충제 같은걸 반드시 챙겨야 한다. 이것은 최소활동이지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고 병에 안 걸린다거나 자연인처럼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블로그 운영하면서 전국에 있는 맛집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지만, 그 어떤 맛집보다도 집 밥이 더 낫다. 그러니 집 밥은 챙겨줄 때 잘 먹어두자. 몇 달 만에 집에 가서 부모님이 해주는 밥을 먹어보라! 찌개랑 김치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단이다.
힘들게 일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그 적막, 기쁜 일이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당장 이야기할 사람 없는 그 답답함, 매일 혼자서 밥을 먹으며 느끼는 특유의 쓴맛, 나태해지는 생활, 그리운 사람들, 지저분한 환경, 정리가 되지 않아 필요할 때 찾을 수 없는 물건들(우리네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찾을까?), 형광등 교체에서부터 전기세 납부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살림살이의 고단함 등. 이런 것들이 혼자 사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들이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행복한 순간은 자기네 집 입구에 다른 사람 신발이 가득할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