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공포와 황홀한 위안, 스티븐 킹 최신 단편집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하, 스티븐 킹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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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하권을 집어 들었다. 상권은 도서관에서 누가 먼저 빌려간 모양이다. 상관없다. 단편집들은 어차피 독립된 이야기들이니, 시간 때우기로 이보다 적절할 순 없다.


어쩌다 보니 내가 스티븐 킹의 책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단 사실을 깨닫는다(소설 작법의 명저로 손꼽히는 <글쓰기에 대하여>를 제외하곤 장편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많이 봤지만, 진정, 지금 78세인 대작가가 그동안 쓴 엄청나게 많은 책들 중 한 권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뭐랄까 장르문학에 대한 저평가로 일관한 내 선입견 때문인데,

"영화로 봤으면 충분하직, 굳이 책까지?", 이런 선입견들...


흔히 장르문학에 대해서는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순식간에 흥미를 자아내는 서두와 충격적인 결말 부분만을 상정하기에, 이야기 속 주인공과 특정한 상황에만 집중해서, 속도감은 있을 망정, 뭔가 속 빈 강정 같은 캐릭터들과 어설프고 지루한 중간 과정이 가득해서, 먹는 내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리뷰만 현란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느낌이 없지 않고,


그가 워낙 오래된(?) 작가라 오래전 소개된 8-90년대 번역본들의 뭔 소린지 모르겠을 한심한 번역 상태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 '문학적인' 재미에 치중한다고 허세를 떨던 과거의 독서 습관이 여전히 스티븐 킹의 신간에 손을 데길 저어했던 주요 이유였다 고백해 본다.


헌데 이번 최신 단편집을 읽고서는 평가는 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실린 7편의 단편들은 예측이 빗나간 스릴과 공포의 재미 외에 스티븐 킹이 캐릭터 세공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또 한편 정말 '미국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도, 그리고 이야기 전개의 텐션을 얼마나 능숙하게 조율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일급 단편이기 때문이다.


페이지 넘기는 데 쫀득한 느낌을 받는 독서였다고나 할까, 시나리오나 시리즈를 제작하는 작가들이라면 이 단편들을 교과서 삼아 연구해도 좋을 만한, 전문가들이 인정할 만한,


각각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이게 어떻게 끝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타는 놀이동산의 어트랙션 같은데, 그 점진적인 전개와 사건의 지평을 바꿔놓는 장면들의 반박자 빠른 등장은 의외성을 자아내기도 하고, 독자로 하여금 이 캐릭터의 내면을 제대로 된 시선에서 보게 해서, 결국은 그 캐릭터와 함께하는 스릴 넘치는 작은 모험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 마침내 작은 비명을 내지르기에 충분한 유희거리 역할을 해내고야 만다.


정말 미국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위기, 공포나 스릴의 뒷면에는 충분히 인간적인 상실과, 슬픔, 외로움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물론 유머도 있지만, 지금의 시대적인 관점에서 킹의 소설의 주된 테마는 과거와 같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낙관주의보다는, 왠지 모를 현실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이 주된 정서로 느껴졌다.


다만 이 책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하권에만 오타와 오기가 거의 5-6군데 발견되었는데, 주로 사람이름을 잘 못 표기한 부분이 꽤 눈에 띄었다. 대가의 책에 맞는 리스펙트를 요하는 부분이다.


나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경계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존 르카레가 묘사하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 탐구가 장르적인 재미 이상의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의 풍성한 캐릭터 어디선가에서 본 듯하지만 더욱 생생한 캐릭터의 모습과 어떤 분위기 혹은 장면은 빼어난 단편조차 이르지 못한 어떤 경지에 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장르 불문하고 경지에 이른 대가의 글쓰기는 통한 달까.


이 하권의 마지막 두 편의 단편이 특히 짙은 여운을 주었다.


가장 길었던 <방울뱀>은 무척 공들여 쓰인 티가 났고, 어쩔 수 없이 지루하긴 했지만, 구성은 완벽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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