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소설집
이제는 꽤 유명세가 있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최신 단편집 <너무 늦은 시간>을 읽었다.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이 그나마 신작이며, 두 번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과 <남극>은 각각 2007년 1999년에 쓰인 단편이다. 말하지만 그녀의 인기에 힘입어,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단편을 <너무 늦은 시간>이 나온 김에 2편 더 섞어서 재빠르게 발행한 그런 책. 이 세 편의 단편은 공통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라고 하기는 조금 거창하고, 다소간 잘못된 만남을 겪는 남녀의 이야기라면 꽤나 정확한데,
급하게(?) 엮인듯한 책의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은 시간> 한 편의 엄청난 완성도에 수긍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20대 아일랜드 젊은 남성의 일상을 기술하면서 과거 플래시백과 현재 남자의 일상의 루틴으로 돌아와 그의 집 안에서의 행동을 차근차근 묘사하는 키건의 솜씨가 숨 쉬듯 자연스럽고, 그 지질하고 평범한 남자의 모습에 여러 번 '찔리면서' 읽어 내려갔다. 마치 하루키의 단편처럼, 차분하고 정돈된 문장과 적절한 디테일들이 나열된다.
우리는 모두 한때 지질함을 반복하고 그건 좀체 나이 들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상대를 탓하거나 욕하는 것은 시효가 짧다. 금세 돌아온다. 상대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다. 결혼에 실패한 약혼자라고 해야 할까, 같이 하는 삶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상상력도 없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 자가 자기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을 만난다고 해소될까? 변모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진 않지만, 이 깔끔한 가공 솜씨를 보고 있자면 내 옷은 아니지만 한 번 입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그런 정도의 매끈한 완결성을 가졌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서 키건이 묘사하는 상대 남자 캐릭터 역시 상당히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귀결된 이야기의 결말이나 그 소설적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제한적인 기간이나마 '자기만의 방'을 누릴 자유는 뭐라 해도 분명히 존재한다. 뵐의 망령이라니... 조금 너무한단 생각도 들지만 우리는 저 고지식한 독일 교수의 시선으로 처음 가본 관광지나 식당에서 폭력적인 언어를 남발하지 않았을까?
반면, <남극>의 경우 다소 거친 부분이 있는데, 앞의 두 편이 보다 섬세하게 주체적인 결혼 전 여성의 면모를 보였다면, 충동적인 유부녀의 비행을 다소 코믹하면서도 일견 낭만적으로 묘사하며 끝을 열어놓는 결말을 선택하고 있는데, 마치 스티븐 킹 소설의 결말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는 다분히 쓰인 시기의 문제가 큰 것 같다. 앞의 두 편의 정돈됨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