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916
4월 카페크리틱 방송에서 소개한 리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영화 감독 중에 폴 토마스 앤더슨은 개인사에 관해 별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감독으로 느껴집니다.
그의 사생활이 곧 영화의 전부마냥 취급받는 홍상수와 같은 감독들과 비교해본다면 그점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는 <리코리쉬피자>는 조금 예외입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란 감독의 이력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에 관한 소개를 함께 진행하 면서 이 영화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970년생 우리나이로 51세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LA 근교의 산페르난도 밸리 출신입니다. 이곳은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 발보아 호수 , 할리우드를 근처에 두고 있는 이른바 부촌입니다. 그런데 오명? 혹은 이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여기가 ‘포르노 밸리’ 란 이름으로 불린단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 대에 포르노 산업이 산 페르난도 밸리에서 급격하게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시절에 받은 인상을 영화 속에 구현한 작품들이 오늘 소개 하는 <리코리쉬 피자> 그리고 그의 초기작인 <부기나이트> 라 할 수 있겠죠. 폴 토마스 앤더슨 이란 감독은 이러한 시대, 공간적 배경 속에 자라난 영화감독이라 가정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엔 항상 두 가지 인상이 남습니다. 첫 째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컷편집을 보면서 하나의 운율을 발견하는 듯한 어떤 쾌감과 직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매그놀리아>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적재 적소에 사용하는 음악들은 앞서 말한 영화가 리듬을 형성한 채로 계속 진행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 한 가지는 영화가 굉장히 야하다. 그러니까 섹슈얼한 긴장을 계속 주입한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이건 단순히 화면 속 배우와 배우 사이의 발생하는 화학적 작용이나 긴장이라기 보단, 무언가를 훔쳐 보고 있다(그건 아마도 관객일수도 있고 카메라의 배치에서부터 오는 영향 때문일수도 있겠습니 다) 라는 데서 옵니다.
또한 포르노적인 유머를 굉장히 태연하게 집어넣는 감독이기도 하죠. <인 히어런트 바이스>와 같은 장면에서 초콜릿으로 코팅된 바나나를 계속 핥는 조쉬 브롤린의 몽타주를 계속해서 보여준다던지, <리코리쉬 피자>에서 개리가 연 핀볼 게임장에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불평하는 사내가 한 명 있는데, 나중에 개리가 다 시 게임장으로 돌아 왔을 때 이 사내는 그 핀볼이 있던 위치에서 인형으로 보이는 대상과 섹스를 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지나갑니다.
굉장히 이런 자극적인 장면들이 태연하게 장면 곳곳에 배치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화면 혹은 편집이 저는 한국 시네필 문화, 혹은 영화 애호가들에게 굉장히 정치적으로 옳바르지 장면들을 쿨하게 보여주는 그런 감독으로 오독되어서 수용되고 있다고도 느껴집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 속 포르노그래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성적인 자극이나 끌림을 일으키기 위한 요소라기 보단, 말 그대로 그러한 요소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혹은 그의 유년 시절을 감안한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경 같은 것)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리코리시 피자> 라는 작업이 PTA가 본인이 생각하는 역사-쓰기 방식을 진행하고 영화 속에 그 작업을 나름 윤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감독의 다른 이력이라던지 혹은 그동안 찍어온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리코 리쉬 피자>와 엮어서 지금 폴 토마스 앤더슨이란 감독에게 씌워진 어떤 필터들을 한 번 되짚어보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리코리쉬 피자>를 보면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지점은 이 영화가 계속해서 영화 스스로가 만들어 내고 있는 내러티브들을 계속 갱신한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개리와 알라나가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은 자신들이 사는 장소가 곧 영화 촬영지라는 인식을 항상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감각은 할리우드란 지리적 위치에 살지 못하는 우리에겐 굉장히 낯설게 다가옵니다. 그들의 첫만남이 굉장히 이상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진행하는 장면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청춘 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25살과 15살이라는 아동 청소년 범죄의 우려가 다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굉장히 아슬아슬한 관계의 시작점이지 않나요. (물론 ㅇ이러한 나이 차이는 겉으로 보기엔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게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 같기도 합니다) 또한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개리의 화보 촬영장에 멈추는 순간,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어떤 이 학교라고 하는 장소가 사실은 세트였구나 라는 사실, 즉 서사에 관한 기대와 연속되는 내러티브가 붕괴하는 순간이라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자면, 물침대 사업장 개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순간, 개리의 외도라고 할까요 혹은 알라나가 아닌 다른 아이와 섹스로 추정되는 순간을 알라나가 목격했을 때로 돌아가 봅시다. 속옷 차림으로 집으로 돌아간 후 좌절한 알라나를 뒤로 한 채로 씬이 끝납니다. 곧이어 숀 펜의 앞에 자신의 과거사를 고백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마치 정말로 몇 년이 흐른 것 처럼 말입니다. 일반적인 영화의 스토리 구조를 떠올린다면 그 전까지의 시간들을 우리는 일종의 플래쉬 백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하죠.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것이 일종의 오디션이란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려줍니다. 하나의 트릭입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흥미로운 순간으로 보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째는 알라나 하임이 오디션을 본 뮤지션이란 직업이 전면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앞서 말한 내러티브의 붕괴가 단순히 추측이 아니라 이 산만한 영화를 구축하고 있는 개별 시퀀스의 힘이란 사실이 명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알라나 배역을 맡은 알라나 하임은 HAIM이라는 밴드의 뮤지션이기도 하고 실제로 PTA는 그들의 뮤직비디 오를 촬영했습니다. 또 극중 알라나의 가족들은 실제 알라나 케인의 가족들이기도 하죠.
그럼 이 영화는 비전문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그런 실험영화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후부터 등장하는 숀 펜, 브래들리 쿠퍼와 같은 배우들이 등장을 하고 그들이 1970년대 뉴 할리우드 시대를 구축한 배우와 제작자(브래들리 쿠퍼가 감 독하기도 했던 스타 탄생의 제작자를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로 등장하는가 하면, 비전문 배우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베니 샤프디가 출연을 한다는 거죠. 특히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비전문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이런 방식을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로 체화한 샤프디 형제가 등장하는 지점은 충분히 자조적인 농담처럼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비평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앞서 이야기한 내러티브의 해체라 할까요. 그것 뿐 아니라 이러한 배우 기용에 있어서 노골적으로 비평적인 시선을 염두해 둔 제스처를 취한다는 점입니다. 개리 역을 맡은 쿠퍼 호프만이 작고한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란 사실 또한 이 영화가 영화적 유산, 혹은 역사화에 관한 욕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어 보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에 대한 평가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있다면, 영화란 무엇인가에서 바쟁이 네오리얼리즘을 이야기한 대목일 것입니다. 연극성과 리얼리즘이 섬세하게 섞여 이들의 미학적 현탁상태가 네오리얼리즘 다운 새로운 형태가 아닌가 란 말을 남겼는데, 저는 리코리쉬 피자가 이런 현탁상태를 PTA 자신의 사적 서사와 함께 1970년대란 시간적 배경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려는 선택이 아니었나 추측해보게 됩니다. 이러한 전략은 타란티노가 취하는 역사-쓰기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어 보입니다. 오직 영화만이 자신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 란 이샤그푸르와 고다르의 대화가 괜히 떠오르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