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딸을 대장암으로 잃은 50대 초반의 여성 내담자 이야기입니다.
“죽을 때까지 매일 잊지 않고 생각할 것 같아요. 나는 막내딸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어요. 그 아이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고 서울에 가서 취직하려고 했는데 나는 딸을 제 곁에 두고 싶어서 내 일을 도우라고 했지요. 오빠와 언니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내딸만 내 의견을 받아들였죠.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내가 하는 가게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이 흘렀을까요. 가게에서 일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급히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대장암 말기라고 장이 파열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천사가 되었어요.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네요.”
내가 고민하고 행했던 모든 일, 내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 내가 남을 위해서 하고자 했던 일들이 과연 처음의 의도처럼 그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고민하고 숙고하고 헤아려서 행한 일들이 항상 예측된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그냥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원해서, 내가 찾고자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기는 것입니다. 5년 전 딸의 죽음은 내담자에게 고통과 죄책감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딸을 따라서 죽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면서요.
“지금도 막내딸은 천사가 되어 내 곁에 같이 있어요.”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딸이 천사가 되어 영원히 편안하게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한 정신과 의사라면 딸의 죽음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두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소망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어머니의 믿음이 진실이라고 느꼈습니다.
막내딸이 죽었을 때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아이는 왜 내 곁을 이리도 빨리 떠나야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겠지요. 신에게도 물어봤을 것이고 어쩌면 조상들에게도 물어봤겠지요. 그래도 이유는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은 절대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의 힘을 믿고 주어진 운명의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어머니는 딸이 천사가 될 운명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천사가 되어 가족과 이웃을 돌보고 있다고 말이지요.
지방에서 적지 않은 규모의 사업체를 일군 50대 초반 남성 내담자의 사연입니다. 그는 폐섬유화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으로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완치법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증상이 없어요. 병도 느리게 진행된다고 합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신경 쓰지 말고 평소처럼 생활하라고 하더군요. 지금 특별히 먹는 약도 없어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진행도 느리고 빠른 시간 내에 신약이 나올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갖고 기다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이 전혀 편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차라리 속 시원하게 어느 정도 살 수 있는지 얘기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인터넷에서 내가 가진 질병의 원인과 치료, 수기를 찾아다녔죠. 알아갈수록 더 우울해지더군요. 어떤 글을 읽으면 남은 시간이 5년이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10년이라고 하고. 점점 우울해지더니 요즘은 사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골프를 치고 사업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사업체 하나가 안정되면 다음 사업체를 사들이고, 전문 경영인을 밑에 두고도 참견하는 일이 많을 정도로 활력도 넘쳤죠. 진단받은 뒤부터는 이런 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곧 죽을 텐데…….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이면 불안에 떨어요. 사업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결재도 미뤄두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사업체를 하나씩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행히 심리치료를 시작하고 1~2개월 정도가 지나 기분과 의욕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뤘던 사진 공부를 하기 위해 강좌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진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장 설립도 다시 시작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져서 갈팡질팡합니다. “사장님,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병 때문에 다 포기하고 나면, 나중에는 병과 나만 남을 텐데 그렇게 살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면 시간이 흘러 새로운 치료법이 나와서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더라도 내 삶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텐데 그런 삶은 의미가 없을 것 같더군요. 내가 질병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게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불안과 싸우고 있지만…….”
서서히 진행되는 질병 때문에 인생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매 순간 들을 수밖에 없다면, 그래서 자기 인생의 시계는 다른 사람보다 두세 배쯤 빨리 간다면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의연하게 견딜 수 있을까요? 모든 삶은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인간의 심장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달성하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의미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잃는 순간 인생의 시계도 멎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고통은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필수 조건입니다. 누구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왜 하필 나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고통은 배가됩니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 바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시련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심장마비로 죽고, 사랑하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우울증을 앓던 동생이 자살로 죽고, 아버지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이라고 진단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시련이 내게 닥친 것이지?’ 하고 자문하는 일을 누구나 겪습니다.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우리 삶에 허락도 없이 찾아옵니다.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이런 일들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습니까.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에서 겪어야만 하는 시련을 이렇게 부릅니다.
‘삶의 고통은 깨달음을 촉구하는 신이 보낸 메시지.’
‘고통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우주가 보낸 메시지.’
‘고통과 충격은 자기만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기 위해 나타난 길잡이.’
‘고통은 지친 영혼을 새롭게 담금질하라는 의미.’
‘상처가 아물어 새로운 살이 돋아나 새롭게 되라는 의미.’
‘고통은 성장을 위한 동기.’
‘고통은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
‘고통은 진정한 자아를 만나기 위한 기회.’
종교의 가르침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시련 속에는 하느님의 숨은 의도가 있다.’
‘고통 속에는 하느님의 큰 뜻이 숨겨져 있다.’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내담자에게 빅터 프랭클 박사는 묻습니다. “만약 아내를 남겨두고 당신이 대신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남겨진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요?” 내담자는 대답합니다. “아내라면 이런 고통을 견딜 수가 없을 거예요. 아내가 어떻게 견디겠어요.” 프랭클이 말합니다. “보세요. 당신 덕분에 아내가 이렇게 큰 시련을 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런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해 준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살아남아서 아내를 위해 더 많이 슬퍼해야 합니다.”
내가 겪는 고통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고통을 통해 나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주는 모든 일은 나를 가르치기 위해 삶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깨달음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인간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고통이 품고 있는 최고의 가치는 숭고한 체험을 촉구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가 역경을 만났을 때 그 역경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그 역경은 형벌일 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 역경은 수업료일 뿐이다.”
고통을 통해 깨달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시련과 고통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그 속에서 찾은 인생의 숙제를 고통 이후에도 계속해서 풀어가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나무의 열매는 꽃이 진 뒤에 맺히는 법입니다. 사람도 상처 받은 후에야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고 화가 르누아르도 말하지 않았던가요.
마흔이라는 삶의 변곡점,
늦기 전에 나를 되찾아야 할 시간
*이 글은 <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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