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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준 Jan 07. 2020

입양은 아이를 거래하는 걸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사면 안 되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재화와 활동은 사고팔기에 적당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질문 내용을 살짝 바꾸어보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우정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대답한다. 우정을 생각해보자. 친구가 지금보다 많았으면 좋겠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친구 몇 명을 사겠는가? 아닐 것이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용된 친구는 진짜 친구와 같을 수 없다. 집을 비운 동안 우편물을 보관해주거나, 위급할 때 자녀를 돌봐주고, 심리치료사라면 자신의 푸념을 들어주고 동정 어린 충고를 해주는 등 일반적으로 친구가 하는 일을 해달라고 사람을 고용할 수는 있다. 최근까지도 페이스북에서 잘생긴 ‘친구’를 월 99센트에 고용하여 자신의 온라인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가짜 친구를 소개해주는 이 웹사이트는 대부분 모델의 사진을 허락 없이 사용해서 폐쇄되었다. 돈으로 이러한 서비스를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친구를 살 수는 없다. 어쨌거나 돈으로 사는 우정은 사라지거나 변질된다.




상을 돈으로 산다면


노벨상을 생각해보자. 노벨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정상적으로는 받을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노벨상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노벨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리그의 MVP상도 마찬가지다. 예전 수상자가 팔겠다면, 트로피를 사서 자기 집 거실에 진열해놓을 수는 있겠지만 상 자체를 살 수는 없다.


이것은 노벨상 위원회와 아메리칸리그가 상을 팔려고 내놓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사 매년 노벨상 하나를 경매로 판매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돈을 주고 산 상은 진짜 노벨상과 같지 않다. 시장 교환은 노벨상을 가치있게 만드는 선(善, the good)을 변질시킬 것이다. 노벨상은 명예로운 재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사는 행위는 상에서 얻으려는 선을 훼손한다. 노벨상이 거래되었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수상자는 더 이상 명예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야구경기에서 수여하는 MVP상도 마찬가지다. MVP상도 명예로운 재화이므로 시즌 동안 홈런을 치거나 탁월한 수훈을 세워 팀의 우승에 기여한 공로로 받지 않고 돈으로 산다면 재화의 가치는 변질된다. 물론 상을 상징하는 트로피와 상 자체에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일부 수상자가 자신이 받은 오스카 조각상을 팔거나 수상자의 자녀가 조각상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오스카 조각상은 소더비나 다른 경매회사가 실시하는 경매에서 거래되고 있다.


1999년 마이클 잭슨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받은 최우수 작품상 트로피를 154만 달러에 구입했다. 아카데미는 이러한 오스카 조각상 거래에 반대해서 지금은 수상자들에게 조각상을 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명예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상업적인 수집품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수집가들이 조각상을 살 수 있든 없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돈 주고 사는 것은 실제로 상을 받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장기 기증이나 아이 입양은 거래가 아닐까


상당히 명료한 이러한 사례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사면 안 되는 대상이 있을까?’ 예를 들어 사람의 신장처럼 살 수는 있지만, 거래하면 도덕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재화를 생각해보자. 장기 이식에 필요하므로 장기거래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도덕적으로 불미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신장을 사는 행위가 잘못이라면, 노벨상의 경우처럼 문제는 돈이 재화를 변질시킨다는 데 있지 않다. 돈을 지불하든 하지 않든 이식한 신체에 거부반응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신장은 기능할 것이다. 따라서 신장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탐구가 필요하다. 장기 매매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을 살펴보고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혹은 아이 거래를 생각해보자. ‘법 경제학’ 운동을 주도하는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몇 년 전, 입양할 아이를 시장을 활용하여 분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좀 더 바람직한 입양 조건을 갖춘 아이의 가격이 다른 아이보다 비싸리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이를 경매에 부치거나 시장 가격을 책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가운데 입양기관이 수수료를 받고 입양을 주선하는 현행 입양 제도보다는, 입양을 자유시장에 맡기는 편이 아이를 훨씬 바람직하게 분배할 수 있으리라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너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시장이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아이들을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세히 검토해보면 이와 같은 논쟁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신장 거래 시장과 마찬가지로 아이 거래 시장은 구매자가 획득하려는 재화를 변질시키지는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이를 사는 행위는 친구나 노벨상을 사는 행위와는 다르다. 아이 입양 시장이 있다면 시세에 따라 가격을 지불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재화, 즉 아이를 획득할 것이다. 이러한 시장이 도덕적으로 거부할 만한지의 여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언뜻 보기에는 친구와 노벨상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재화와 신장과 아이처럼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논란이 생기는 재화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처음 언뜻 생각할 때보다 명확하지 않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금전적 거래가 구입한 재화를 명백히 퇴색시키는 경우와 거래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화를 변질시키고 그 가치를 부패시키거나 저하시키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경우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우리 정치인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_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 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발췌했습니다.

*도서 보러 가기

http://bit.ly/2FoYF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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