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킥복싱
회사에 다니던 시절, 동료들은 피로를 이겨내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홍삼에서부터 몸에 좋다는 각종 즙, 영양제를 넘어 어느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지은 한약까지. 나 역시 홍삼, 즙, 영양제 다 먹어봤다(한약은 다이어트 한약만 먹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 뚝 끊어버렸다. 뭘 먹어도 몸이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였다.
대신, 피곤할 때면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다. 몸이 푹 가라앉은 것 같을 땐 화장실 끝 칸으로 숨어 들어가 손끝, 발끝까지 스트레칭을 하거나, 일을 하다 말고 괜히 옥상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거나, 점심을 먹고는 40분쯤 걸었다. 회사가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여서 가끔은 저녁을 먹고 아웃렛을 아이쇼핑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피로를 이겨내기 위해선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피로를 이겨내며 살아왔기에,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피곤하다 싶으면 몸을 좀 움직이거나 걸으면 되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평소처럼 걸어도 몸이 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풀지 못한 피로는 쌓이고 쌓여 만성피로가 됐고,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피로를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됐다. 그러다 올해, 그토록 끔찍하게 싫어하던 근력운동의 세계로 성큼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지금 예전보다 확실히 덜 피곤하다.
“운동하더니 정말 쌩쌩해졌네.”
하루 종일 붙어 다닌 친구가 저녁이 돼서 헤어질 즈음에 한 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 터라 나도 슬슬 피곤해지려던 참이었지만,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듯했다. 예전의 나와 비교된다는 거겠지. 물론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피곤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런 피곤은 납득 가능한 피곤이어서 ‘아우, 피곤해, 왜 이렇게 피곤하지’ 하며 속상해할 필요가 없었다. 밤늦게까지 놀고 왔다거나, 하루 종일 글을 썼다거나, 글쓰기 수업 내내 혼자 떠들고 왔다면 피곤한 건 당연하니까. 납득 가능한 피곤은 하루 이틀 지나면 회복됐고, 그러면 다시 피로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피로하지 않은 몸이라는 건, 내 몸이 피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며칠이고 몇 주고 이어지는 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요 며칠 동안엔 피로에 관해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피로와 근력운동의 상관관계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중이니까. 근력운동이 왜 피로해소에 좋을까. 왜 걸을 때는 피로가 가시지 않더니, 근육을 키우니 피로가 가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샌드백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붕붕 코치님이 와서 타박하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어어, 골반을 더 트셔야죠!”
오, 잘 오셨네요, 하는 마음으로 나는 코치님의 타박은 대충 무시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신 김에 뭐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그럼요.”
“코치님, 왜 근력운동을 하면 피로가 해소될까요?”
코치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왔다가 묵직한 질문을 받은 것에 약간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프로! 금세 얼굴을 바꾸더니 어느새 전문가다운 포스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너무 오래 잠긴 것 같아, 나는 그를 생각에서 구출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오는 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산소운동도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요. 그게 또 그렇게 효과가 있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여기 다니기 전에 자주 걸었거든요? 그런데 걸어도 계속 피곤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와서 근력운동을 했더니만! 글쎄 몸이!”
코치님이 내 말을 끓었다.
유산소운동만으론 “ 피로가 해소되지 않아요. 근력운동을 해줘야 해요. 그 이유는……”
그 이유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나와 ‘그 이유’를 말하려는 코치님의 눈이 마주쳤고 코치님은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뒤에 놓여 있던 박스에 털썩 앉더니 물었다.
“그런데 이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아, 그건…… 나는 책에 코치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나는 지금 킥복싱 에세이를 쓰고 있고, 오늘도 체육관에 오기 전에 글을 쓰고 왔으며, 그 글은 피로에 관한 글이었고,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코치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문장이라는 것도 이어서 털어놨다.
내 말을 다 들은 붕붕 코치님은 이 책에 본인이 등장한다는 데 한번 놀란 듯했고, 등장뿐 아니라 본인의 말이 비중 있게 실린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란 듯했으며,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도대체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틈만 나면 재촉했는데 그 책이 정말 나오고, 심지어 그 책이 킥복싱 에세이라는 사실에 제일 크게 놀란 듯했다. 코치님은 다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번엔 바로 할 말을 생각해냈다. 그 질문은 단단 코치님에게 해보세요. 이 체육관의 관장님이자 선출이면서 몸도 단단한 코치님이라면 더 생생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네, 알겠어요.
그렇다면 이번엔 단단 코치님에게.
“코치님, 왜 근력운동을 하면 피로가 해소될까요?”
진지하고도 길게 이어진 코치님의 설명엔 ‘근육 손실, 인대, 부하,인간, 동물, 활력 없는 삶, 꾸준한 운동, 운동 안 하면 나도 피곤함’ 등의 단어나 구절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몸이 왜 피로해지는지를 생각해보면 돼요. 몸을 잘못 쓰거나 쓰지 않으면 피로해지거든요. 한 자세로만 계속 서 있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근육 약화요. 너무 써도 너무 안 써도 근육은 약해지는 겁니다. 그러니 근력운동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근육이 약해져 피로해졌으니, 근육을 강화해 피로에서 벗어나는 거죠.”
코치님의 설명을 들으며 책에서 읽은 내용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에서는 “살아가며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부상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의사 샘들이 제안하는 완벽한 자세를 철석같이 지키며 살지 않는 이상,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취하는 자세가 결국 근육 손상을 부른다는 말이다. 근육이 손상되면 하고 싶은 동작을 생각대로 하지 못한다. 앉거나 서는 일도 가뿐히 하지 못하고, 달리기도 예전만큼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연필 하나 부드럽게 줍지 못한다. 몸의 기능이 떨어진 것이다. 몸의 기능이 떨어지면, 피로를 느낀다.
그래서 피로할 땐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 “몸 상태가 나빠지는 일은 반드시 근육의 손상 때문에 일어나므로 제일 먼저 접근해야 하는 것은 근육”이기 때문이다. 것은 반드시 근육의 손상때문에 일어나므로 제일 먼저 접근해야 하는것은 근육”이기 때문이다. 근력운동이 몸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몸의 기능이 회복되면 우리는 점차 피로에서 벗어난다. 예전의 내가 그렇게 걸어 다녀도 피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이거였다. 유산소운동은 근력을 강화해주는 데 한계가 있고, 또 과도한 유산소운동은 도리어 근육을 손실시키기 때문이다.
근력운동이라고 해서 데드리프트나 벤치프레스 같은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제대로 된 자세로 스쿼트만 꾸준히 해도 좋다. 집에서 할 수 있는 푸시업, 플랭크도 있다. 덤벨 운동, 밴드 운동도 있다. 열심히 사는 동안 어느새 약해져버리는 몸. 이 몸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근력운동은 필수다.
흔들리고 상처받아 주저앉고 싶어질 때마다
근육의 힘으로 거뜬히 일어나기 위하여
킥복싱으로 찾은 단단한 몸과 마음
*이 글은 <난생처음 킥복싱>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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