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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Feb 05. 2020

글을 쓰다. 라반을 만나다


점심 이후 우울하여 끄적이다. 14K 플렉시블 닙을 채용한 만년필에 꽂혔다. 필압을 이용하여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필압을 주면 펜촉이 벌어져 글씨 굵기 조절이 된다. 아래로 그을 때, 혹은 가로로 그을 때, 또는 원으로 돌릴 때 필압을 시험하여 글씨에 맞는 스타일을 낼 수 있겠다. 펜촉 어깨 아래를 안쪽으로 파내서 필압을 주면 탄성에 의해 조절되는 형식이다. 36만 원짜리를 할인 사이트 통해 5만 원 정도 내렸고, 다시 놀고 있는 캐시로 4만 원 정도 결재하여 실제로는 27만 원에서 3천 원 더 하는 가격으로, 12개월로 끊었다. 만년필 많지만 우울할 때 영혼을 위로해주는 것은 만년필 끄적이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 어려서부터 혼자 놀거나, 우울하거나 외로우면 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였던 것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나 보다. 뭔가를 쓰면서 대화를 하였는지 모른다.

라반 닷컴에 가면 이런 문구가 있다. 그러니 내 어린 시절의 영혼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막연한 글씨거나 글씨가 자리 잡아 글이 되거나, 글을 써서 영혼을 채우는 동안 팍팍한 삶은 다시 윤기로 되돌려진다. 글을 쓰면서 허물어지는 영혼을 일깨우는 셈이다.


-이천이십년 이월초나흗날, 여언재에서 월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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