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산방의 벽아황 음차
밤 꼬박 비가 내리더라. 창문을 두들기는 바람이 세차다. 툭, 툭 누군가 세상을 향하여 작은 몸부림처럼 두들겼다가 지워지는 소리를 부딪쳤다고 하자. 그렇게 부딪치며 며칠이 열흘이 되고 달포가 되고 반년이 되고 한 해가 되는 진행을 지워지는 중이라고 하자.
무애산방의 벽아황이 오고 나서는 며칠째 줄곧 내리 우린다. 맑고 투명하다. 오래 우려도 차의 기운이 남는다. 좋은 차는 자꾸 손이 간다. 간단한 인연이지 복잡하고 지난한 절차가 아니다. 형식도 없다. 차 생각이 떠오르면서 손이 가고 우리면서 목 넘김을 느끼는 간단명료한 한 방이다. 제법 상기된다.
국내에서 제다한 차를 좋아하지만, 함부로 안목을 늘리지 않는다. 결국 제다하는 분의 정기신이 차의 기운과 만나는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제다 자체가 수행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몇몇 제다인들은, 높은 지경을 이룬 선승처럼 그렇게 제다를 끌어올린 지점에 놓여 있음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이천이십년 이월 열엿새, 여언재에서 月白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