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울울창창하였을 선명한 녹색 나무
카누 우드를 만들던 백합나무
백합나무 또는 튤립나무라고 한다. 백합나무의 학명은 Liriodendron tulipifera L.이다. 앞이 속명이고 뒤는 종소명인데, Liroodendron이 백합꽃이 달라는 나무라는 뜻이고, tulipifera가 커다란 튤립 꽃이 달린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속명에서 유래한 명칭인 백합나무를 사용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도 백합나무라는 국명을 사용하게끔 추천하고 있다. 백합나무는 북미가 원산지로 전국에서 가로수나 공원수로 식재되고 있다. 매우 큰 나무로 속성수다. 목재는 가볍고 연한 노란빛의 광택이 있다. 인디언들이 다루기 쉽고 물에 잘 뜨는 목재의 성질을 일찌감치 파악하여 배를 만들어 사용했다. 카누 우드 Canoe Wood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람이 빠른데다 재질까지 좋은 셈이다.
백합나무의 겨울 풍경과 꽃의 연한 색상
백합나무는 겨울 풍경이 한 몫한다. 겨울까지 습한 것은 모두 빼 내고 바짝 말라 있다. 꽃이 필 때는 백합을 닮아 있는 연 노란 꽃이 봉긋하게 매달려 있다. 모든 게 그러하지만 이 나무의 꽃은 관심 없이 도저히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고 은근하다. 더군다나 이미 나와 있는 나뭇잎에 가려 뽐내려 해도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다. 백합나무의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연한 색상에서 번지는 고운 심성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백합나무의 생존 본능은 비행에 있다
그 곱고 정갈한 꽃이 수분에 성공하여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기어코 열매를 터뜨리고, 숱하게 많은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멀리 비행을 하기 시작한다. 가을 바람과 겨울 바람 앞에 이리저리 쓸려 가면서 씨앗들은 길바닥에 몰리기도 한다. 좋은 밭에 떨어지면 싹이 튼다. 일부러 파종하여 가꾸는 방법도 가능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무 꼭대기 높은 곳에서는 여전히 열매가 터져 있고, 바람은 그 터진 열매를 바스러질 때까지 말리고 있다. 더 떨어질 씨앗이 남아 있지 않건만 습한 것을 용서할 수 없어 아직도 말리고 있다.
도심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탁월한 나무
나무 줄기 역시 많이 터져 있다. 겨울 추위에 너무 노출되었다. 그러니 겨울눈은 장하고 대견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만들어내는 튤립나무의 잔가지와 아직 열매 껍질로 남아 뭉툭해진 풍경이 제법 넋 놓고 오래도록 쳐다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좋은 나무의 미끈한 키 위로 하늘이 근사하다. 최근 도심 도로의 이산화탄소 흡수을 높은 수종을 조사한 것에 의하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백합나무(99.1)가 가장 높았다. 화화나무(67.8), 양버즘나무(54.1), 칠엽수(54.0), 상수리나무(51.0), 은행나무(39.7), 느티나무(38.8), 메타세쿼이아(35.5)와 비교했을 때, 그 절대치가 가장 높았다. 생장속도가 빠르고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많은 나무인 것이다(김태진. 도로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가로 수종 선정 및 식재 기준 연구. 한국산림휴양학회지, 17(1), 131-144.).
백합나무, 햇살 한 줌을 줍다
목백합나무 큰 키로 오래된 붉은 벽돌 단층 슬래브 건물, 인적 접은 옥상 사각조 슬라브를 내려본다. 졸음 가득 눈 떠지지 않는 아이에게 지난밤은 울울창창鬱鬱蒼蒼 하였겠다. 앞선 줄에서 일곱 그루로 선명한 밝은 녹색 몸집으로 작은 바람에도 마음 약하게 흔들리는 위용은 볼 만하다.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의 어학실, 미술실, 음악실로 별관은 백합나무로 단출하여 아담해졌다.
앞 줄에 이어 뒤로 세 줄이 함께 붙들려 있으니 숲이라 하겠다
건강한 미인을 닮은 숲
햇살 조금이라도 찬란할 때
어김없이 백합나무 숲에서 서로 손 내밀며
나뭇잎 현란한 빛으로 눈부시게 되새긴다
햇살 숨을 때
언제 그랬냐고 잊게 해주는 순간 미학을
살랑대며 착시처럼 엉겨 붙는다
붉은 벽돌 사각조 슬라브 단층 높이에서
더 먼 시선을 세상 밖으로 발돋움 한 채
숲에서 재잘되는 새에게 시선을 넘긴다
백합나무 숲을 지켜보는 일은 든든하다
늘 백합나무 함께 일 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사람도 삼삼오오 튼튼해지는 조합을 이룰 때 현기증 나게 근사 해지는 그런 경험처럼 말이다. 백합나무 햇살에 눈부실 때 함께 걸어도 빛이 난다. 백합나무 그늘에 모여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때 백합나무 잎 떨리는 소리는 천상의 음악처럼 아득하다. 낮은 탁자 둘러 앉아 잘 익어 누룩 내 짙은 낙엽의 풍경, 아름다워 그윽하도록 행복해지는 이치겠다. 백합나무 큰 키, 멀리 지켜보는 맛만으로 매일 감격인데, 저 숲 안을 매만지는 지렁이, 개미, 장수풍덩이, 사슴벌레들은 또 얼마나 매일 지치지 않게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