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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Nov 15. 2015

겨울 한라산을 오르며

폭설 속에서 얼은 듯 애태우는 나무

폭설 속에서 얼은 듯 애태우는 나무


겨울 한라산을 등산할 때, 

숲 속에 잎이 얼어 처져 있는 나무를 볼 수 있다. 

힘든 산행길에서 심정적으로 자주 눈길이 간다. 

그도 힘들어 보이고 나도 힘들어 보인다.      

소지는 굵으며 녹색이지만, 

어린 것은 엽병이 길고 붉은빛이기에 잘 보인다. 

잎은 긴 타원형이다.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 뒷면은 회백색이며 털이 없다.      

성판악으로 길고 지루한 산행을 하다 보면 

굴거리나무가 길옆에서 지속적으로 출현한다. 

겨울 흰눈 속에 만나는 굴거리나무의 모습은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킨다.

겨울 한라산의 폭설과 만나는 식생들


굴거리나무를 쭈욱 보면서 올라가면 이제는 제주조릿대의 왕성한 행렬을 만난다. 폭설 속에서 굴거리는 잎이 얼은 듯 애태우지만 제주조릿대는 마냥 싱싱하다.  제주조릿대가 한라산을 점령할 듯, 군락지의 위세가 크다. 그러면서 구상나무를 만난다. 구상나무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은 예술이다. 하얀 눈과 햇살에 반짝이는 눈 사이에서 굴거리나무의 고운 잎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굴거리나무는 굴거리나무과로 분류한다


굴거리나무는 좀굴거리나무와 함께 굴거리나무과Daphniphyllaceae의 굴거리나무속Daphniphyllum에 분류되어 있다. 좀굴거리나무Daphniphyllum glaucescens Blume는 전남 대둔산, 제주도의 해발 200m 이하의 바닷가에서 자란다. 잎 길이가 굴거리보다 짧으며, 잎맥과 잎맥 사이의 거리도 굴거리나무는 10~15mm 정도인데 그보다 좁은 5-8mm이다. 열매도 굴거리나무보다 더 검은 색감으로 익는다. 물론 재배식물인 무늬굴거리나무도 있다. 예전에는 대극과에 속해 있었으나 따로 분류된 것이다. 따뜻한 곳에 자라는 상록활엽소교목이지만 비교적 내한성이 있어 충남 안면도, 전북 내장산까지 올라와 자란다. 어린 가지는 굵고 붉은색을 띠며 자라면서 녹색이 된다. 잎은 가지 끝에 모여 나고 어긋나기 하며 긴 타원형으로 두껍다.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회백색으로 털이 없다. 특히 붉은 색의 잎자루가 특징으로 그 길이가 무려 3∼4cm나 되어 치렁치렁하게 매달려 있다. 

잎자루가 붉은색이어 잎의 짙은 녹색과 강렬하게 대비되어 아름답다.

열매는 검푸른 흑자색으로 흰색 분가루가 덮여 있다


암수딴나무이고 전년지의 잎 겨드랑이에서 녹색 꽃이 핀다. 새잎과 묵은 잎 사이에서 꽃잎이 없이 뭉쳐서 핀다. 관상가치보다는 종족의 보존에 충실한 역할을 한다. 열매는 지름이 1센티미터 정도로 검푸른 흑자색으로 익는데 표면에 흰색 분가루가 덮여 있어 독특한 모양을 보여준다.  

관엽식물을 대체할 수 있는 수종이다


굴거리나무란 이름은 이 나무가 굿을 하는데 이용되어 굿거리 나무가 굴거리나무로 변한 것이라 한다. 남부지역에서 정원수로 이용하는데 고무나무 같은 외래 관엽식물을 대체할 만한 수종으로 유망하다. 이때 건조한 것을 싫어하므로 관수에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굴거리나무속 나무들은 날개물결가지나방을 포함한 나비목 애벌레의 먹이로 쓰이므로 함평 나비축제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다. 굴거리나무는 음수이며 비옥한 양토 또는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고 건조와 추위에 약하다. 그러니 제주의 눈 내린 겨울의 굴거리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애타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로 실생과 삽목으로 번식하며 가을에 익은 열매를 노천매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하여 개체를 증식한다.

새잎과 묵은 잎 사이에서 꽃잎이 없이 뭉처서 핀다.

남부 지방의 정원수와 실내 조경 식재 수종으로 좋다


굴거리나무는 조경 설계를 할 때 주의하여야 한다. 중부 지방의 식재 설계에 굴거리나무를 선정하면  안 된다. 중부 지방에서 월동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붉은색 잎자루에 반짝거리는 길쭉한 잎이 보기 좋다. 내가 아는 수목원 답사 회원은 붉은 잎자루의 느낌을 마치 홍학을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느낌이고 표현이다. 잎이 풍성하고 수관이 단정하여 수형 자체가 아름답다. 나이 든 나무일수록 운치가 돋보인다. 정원수와 가로수로도 이용되고 있다. 물론 실내조경식물로도 대단히 유망하다. 굴거리나무는 맹아력이 없어 전정하면 약해지고 죽기 쉬워진다. 빽빽한 가지 정도를 솎아주는 선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전정을 마쳐야 한다. 나무의 수피 또한 벗겨지기 쉬워 이식 등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어린가지는 붉은 빛이 돌고 잎이 비교적 빽빽하여 단정한 수관을 가진다.

맹아력이 약하니 전정은 가급적 조심한다


굴거리나무의 뿌리와 종자를 『중국본초도감』에서는 교양목交讓木이라 부르는데, 새잎이 난 뒤에 지난해의 잎이 떨어지는 현상을 두고 교양 있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는 모습을 말한 것이다. 안면도 중장리에 천연기념물 제137호인 굴거리나무 군락지가 있었으나 가치가 상실되어 지정 해제되었다. 내장사 앞에 있는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곳에 있다. 이 지역에서는 만병초라 하여 신경통의 약제로 쓰이고 있다. 또 선인봉에서 샘터 사이에는 가슴 높이 둘레 20㎝, 수고 약 9M의 군락이 있고, 내장사에서 해발 300m의 전망대 사이에도 굴거리나무가 단풍나무 군집과 함께 군락을 이룬다. 내장산 굴거리나무 군락은 굴거리나무가 자생하는 북방한계지역이라는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한국 약용 식물 사전』에는 "잎과 나무껍질에서 알칼로이드가 알려졌는데 (0.05%) 주성분은 다프니필린, 유주리민 등이다. 잎에는 이리도이드배당체와 플라보노이드인 루틴, 쿠에르세틴 등이 있다."고 기술되었다. 한방에서 잎과 줄기껍질을 늑막염, 복막염, 이뇨에 약용하며, 민간에서 잎과 수피를 끓인 즙을 구충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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