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색을 입혀 주는 매끄럽고 가벼운 나무
단풍의 계절이면 더 많은 생각들에 색을 입힌다
어김없이 가을이 오면 단풍이 불탄다. 삶의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채색의 시간이자 사색의 자연이다. 지나며 무심히 보던 것들을 다시 남다르게 보게 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오래된 습관이 발동한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을 꼽아보는 게 단풍의 가을이다.
어딘가에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은 계절, 그래서 엽서葉書를 썼을 게다.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에 길지 않은 사연을 압축하여 쓴다. 그 나뭇잎은 바람에 이끌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사라진 것은 신록의 계절에 씻은 듯이 새 나뭇잎으로 태어나 압축된 사연을 모른 척 할 것이다. 그때부터 새로운 사연은 세월이라는 겹옷을 걸치며 무르익는다.
가을이면 국토가 마비되는 아름다운 단풍의 나라
단풍의 계절이면 국토가 마비되는 나라다. 가을 단풍을 보면 너나없이 탄성 지른다. 바위 많고 험한 산이라 다양한 수종이 스스로 뿌리 내려 그야말로 서로 뽐낸다. 인공조림이 아니라 산이 스스로 색을 입는 형국이다. 단풍이 매년 같지는 않다. 엽록소와 날씨와의 관계에 놓여 있다. 온도와 습도가 관여한다. 낮에는 따뜻하고 맑아야 하고 밤에는 기온이 7℃ 이하가 계속되면 밝고 진한 단풍이 든다. 이때 갑자기 추워져 밤에 얼음이 얼지 않아야 한다. 낮 동안에 잎에서 생산한 당을 운반하는 잎맥이 밤 기온이 낮아지면 닫힌다. 당을 잎밖으로 운반하지 못하니 잎에 그냥 남는다. 결과적으로 안토시아닌을 생산하는 데 쓰이는 당이 늘어난다. 당이 증가하니 안토시아닌 생산이 늘고 농도가 높아져서 짙은 단풍이 들게 한다.
서리가 일찍 오면 단풍이 잘 들기 전에 잎이 손상을 입어 색이 엷어진다. 낮과 밤의 기온차 없는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든가, 낮 동안에 비가 내려 광합성을 많이 하지 못하면 안토시아닌 생산에 필요한 당 공급이 부족해져 단풍이 잘 스미지 않는다. 따뜻하고 습한 봄과 여름의 적당한 강우량으로 건강하게 자란 잎이, 가을의 맑고 따뜻한 낮과 서늘한 밤 날씨를 만나야 단풍이 대단히 아름다워져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가을 단풍은 나뭇잎의 안토시아닌, 카로티노이드, 탄닌에 영향을 받는다. 안토시아닌 색소는 산성일 때 빨간색을, 알칼리성일 때 파란색을 내고, 카로티노이드계 색소는 수소 이온 농도와 상관없이 노란색 또는 주황색을, 탄닌은 갈색을 나타낸다. 황금색 단풍은 카로티노이드와 크산토필이 나타내는 색깔이다. 가을 단풍은 잎 세포에 들어 있는 색소분자의 상대적인 양에 따라 결정된다. 색소분자의 상대적인 양은 온도, 비, 낮의 길이 등에 달려 있다.
단풍나무 꽃지고 열매 맺힐 때 봄이 흐른다
단풍나무의 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꽃이 열매로 맺혀 매달리기 시작할 때야 "꽃이 피었다 이미 졌구나." 하며 바쁜 봄 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알게 된다.
놀랍게도 밀원식물을 연구한 에바 크란은 단풍나무가 피나무와 아까시나무와 동급의 꽃꿀을 제공한다고 했다(『ABC북 맛보기 사전』, 도서출판 창해). 봄이 되면 다시 단풍나무의 꽃을 기분 좋게 보아야 할 이유다.
정원에 심는 단풍나무의 관상미
모든 나무는 직선과 각도를 거부한다. 아름다움이란 부드러운 곡선에 일정 부분 기대고 있다면 자연은 직선과 각을 지니는 것을 상처로 여길 수 있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드는 잎을 강조하였지만, 어쩌면 단풍나무가 자아내는 아름다운 곡선의 힘에 무게를 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단풍나무를 각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실험하는 것을 보았다. 그만큼 단풍나무는 생명이 질기고 전정에 잘 견딘다고 보면 된다. 좀 심한 실험이고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과 필요성에 의해 시도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 경주 힐튼호텔에서 반한 단풍나무가 있다. 너무 멋져서 마구 사진을 찍었다. 단풍나무를 터널 식재하여 유도식재로서의 기능을 도입한 것이었다. 아주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단풍나무 낱개 식재에서 집단 군식 식재로의 시작일 것이다. 유행처럼 단풍나무 군식이 아파트 조경 등에 도입되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궁궐에 많이 심어, 풍신이 곧 조정을 뜻하고
단풍나무는 ‘조정朝廷’과 연관된다. 대궐을 ‘신宸’이라 적기도 하였고, ‘단풍나무 풍楓’자를 붙여 ‘풍신楓宸’이라 쓰고 조정을 뜻했다. 단풍나무를 대궐의 정원수로 많이 심었기 때문이다. 문헌에 단풍나무가 관상용 정원수로 사용된 사실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온다. 또 조선 중기의 대표 정원인 ‘소쇄원’이나 더 늦게 만들어진 ‘다산초당’에 대한 기록에도 단풍나무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단풍나무는 한자어인 ‘단풍丹楓’ 또는 ‘풍楓’에서 온 말로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그러나 단풍나무는 토종나무이다. 중국에서는 단풍나무를 한자로 ‘축수畜樹’라고 표기하는데, ‘축畜’은 중국말로 ‘색’이라고 읽는데 중국말로 ‘색색’이라고 하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가리킨다. ‘풍楓’이라는 나무가 중국에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단풍나무와는 거리가 먼 향료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나무이다.(『민화』, 중앙대학교 문화산업연구소)
단풍나무가 살아가는 야무진 모습
단풍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면 참 야무지다. 주변의 어떤 나무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함께 심겨져 서로 경쟁하면 소나무 가지는 단풍나무에 밀려 수형이 찌그러지고 만다. 부드러우면서 강한 외유내강의 나무가 단풍나무다. 숲이 가장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극상림’이라고 한다. 이 상태에 숲을 차지하는 낙엽활엽수에는 서어나무, 개서어나무, 까치박달나무, 단풍나무 등이 있다. 소나무도 참나무류도 단풍나무 앞에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형국이다. 다른 나무와의 생존경쟁에 밀려 사라지지 않을 나무이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한국민속대관』에는 단풍나무에 관한 2가지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하나는 상의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사찰의 바리때에 관한 내용이다. 상의 종류는 상차림의 형식만큼 그 종류가 나눠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용도만큼이나 종류가 있으나 만드는 재료는 단풍나무나 대추나무라는 것이다. 또 단풍나무가 매끄럽고 가벼워 쓰기에 편하다는 내용이다.
상차림에는 여러 형식이 있으므로 상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네모상ㆍ책상반冊床盤ㆍ해주반海州盤과 같은 장방형 상은 조석 반상용飯床用으로 쓰인다. 크기에 따라서 외상용ㆍ겸상용ㆍ셋겸상용 등이 있다. 단풍나무, 대추나무 등으로 만든 것이 매끄럽고 가벼워 쓰기에 좋다. 상의 면은 반드시 통판을 잘라서 쓴 것이어야 좋다. 팔각반八角盤ㆍ원반圓盤 등이 있다. 팔각상八角床은 상의 면이 8각으로 잘려 있고 여덟 쪽의 얕은 변두리가 붙어 있으며 조석반상朝夕飯床에도 쓰이지만 그보다는 다과상ㆍ반과상飯果床 등에 많이 쓰인다. 원반圓盤은 단칠丹漆ㆍ흑칠黑漆을 한 것 등이 있는데 원반은 주로 궁중의 진연進宴ㆍ진찬상進饌床으로 쓰였다. 구족반狗足盤(개다리소반)ㆍ단각반單脚盤ㆍ귀상 등 다리의 모양과 상면의 모양이 다른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상은 대체로 간단한 차림의 술상으로 쓰였다.
윤두서의 「목기 깎기」는 목기 깎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목기는 전라북도 장수, 무주, 운봉 지방의 특산물로서 물푸레나무, 피나무, 단풍나무, 노감나무 등으로 제기를 비롯하여 촛대, 찬합, 쟁반 등이 제작되었다.
스님의 바리때는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5∼7층가량이 포개어져 1벌로 된다. 역시 대추나무나 단풍나무를 사용한다. 1벌의 바리때가 하나의 통나무에서 나와야 한다. 내가 단풍나무를 전정 해보면 손목에 닿는 느낌이 물기가 있어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고 여겼는데, 1벌의 바리때를 위하여 크고 작은 것을 함께 파서 매끄럽게 손질하기에 단풍나무가 적합한 것이다. 스님은 이 1벌의 바리때로 밥, 국, 김치, 나물 등을 담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