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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Nov 03. 2024

만대루로 읍취하는 단애취벽의 풍광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 만대루로 읍취하는 단애취벽의 풍광     


병산에서 바라보는 만대루     


안동 병산서원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뜻이 새겨진 곳이다. 어쩌다 보니 자주 찾았다. 전통 마을 답사 때 하회마을에 오면 병산서원도 들린다. 서원 답사를 주제로 다닐 때도 당연하게 우선순위에 넣는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 다녔다. 들릴 때마다 걷기, 버스, 차량 등으로 사정에 맞게 접근한다. 세월은 유수 같다 하더니 진입 동선과 병산서원 일대의 면목이 꽤나 정비되었음을 이번 방문으로 안다. 만대루는 오르지 못한다. 한쪽이 약간 기울어져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출입을 제한한다. 병산서원 만대루를 다시 읽는다. 루(樓)는 2층 이상 올린 마루집과 다락집을 말한다. 병산의 암벽에서 발하는 빛이 만대루에 이르는 읍취(挹翠)의 형국을 지녔다.           

    

병산서원 만대루 - 있는 그대로의 제멋이 예술인 고풍의 만대루 1층 기둥(2024.03.25.)

대표적인 루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궁궐에는 경회루(경복궁), 주합루(창덕궁), 관아에는 광한루(남원), 영남루(밀양), 촉석루(진주) 등, 사찰에는 만세루(봉정사), 안양루(부석사), 운학루(장곡사), 강선루(선암사) 등, 서원에는 만대루, 무변루(옥산서원), 확연루(필암서원) 등, 민가에는 운조루(구례), 연자루(하회마을) 등, 성곽으로 화양루(수원화성).      


병산서원의 만대루는 솟을삼문인 복례문을 통하여 정면 7칸의 가로로 길게 펼친다. 이층 누각을 떠받치는 기둥의 자유로운 생김새에 놀란다뒤틀려 휘기까지 하였으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외형적 생김새에 억눌려 주눅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제멋대로의 휘청거림이 예술이다. 세월의 고풍에 삭아 사리(舍利)처럼 담백하다. 오래도록 구도의 길을 묵묵히 가느라 잔뼈의 무늬결까지 묻어난다인간적 면모의 친근한 맛이라 푸근한 정이 앞장선다. 앞산인 병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복례문에서 만대루, 입교당, 존덕사로 계단을 통하여 상승한다. 오를 때마다 신선하고 드라마틱한 경관을 전개한다. 복례문과 만대루 계단 사이에는 광영지(光影池)가 있다좋은 기운이 새 나가지 않도록 물길을 연결하여 작은 연못을 경영한다. 군자의 기품을 상징하는 연을 심어 오가며 성정을 살핀다.      


방지원도(方池圓島)에 반무방당(半畝方塘)의 궤적        


병산서원 광영지(光影池)-주희의 시 ‘반무방당(半畝方塘)’의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유래 (2024.03.25.)

광영지는 네모에 가까운 타원형 연못으로 가운데 원형 섬이 있다. 호안에는 자연석 돌쌓기를 하였고 서쪽 출수구 담장쪽으로 ‘광영지’라 새긴 큰 돌 하나 심겨 있다. ‘광영’은 ‘천광운영’을 줄인 말이다.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 절벽에 ‘천광운영대’와 ‘천연대’가 있는데, ‘천광운영대’도 같은 어원을 가진다. 주희(朱熹, 1130~1200)는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돈다’[天光雲影共徘徊]라 하였는데이 구절에서 광영(光影)’을 가져왔다.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의 선비에게 주희의 이 싯구는 ‘경(敬)’을 존양의 근본 공부로 삼는 요체이다. 이 시에서 강릉 선교장 활래정의 이름도 유래한다.     


半畝方塘一鑑開반무방당일감개 ; 네모난 작은 연못 거울처럼 펼쳐져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 하늘빛 구름 그림자 함께 떠돈다.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 그에게 묻노니 어찌하면 이리 맑느냐

爲有源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나기 때문이라네.    

 

-주희, 「관서유감2수」 중 첫 수, 『주자대전』권2.     


이 시는 주희가 허순지의 물음에 답한 편지 11번째에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이 '방당시(方塘詩)'는 작고 네모난 연못에 비친 자연의 풍경을 묘사한다.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주의 이치를 비추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담는다. 연못이 맑을 수 있는 것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생명력 있는 물 덕분이다. 사람도 끊임없는 학문과 성찰을 통하여 살아 생동하는 경인 ‘활경(活敬)’의 심오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 시에서 묘사된 '네모난 연못'은 한국정원 양식인 '방지원도(方池圓島)'와 연결된다. '방지원도'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음양 사상을 반영한다. 주희의 '방당시'에 등장하는 '네모난 연못'은 주자학에서 매우 특출난 활경사상(活敬思想)의 출발점이면서 한국정원문화의 공간적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네모난 연못을 거울삼아 삼라만상의 이치를 살피고 나를 살피는 수신의 시간을 가진다.     

병산서원 입교당에서 장판각 방향의 배롱나무 화계(2024.03.25.)

         

따라서 '방당시'는 단순히 자연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동양 사상과 주자학의 핵심 개념인 '()'에 대한 주희의 내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주희가 어렸을 때 독서하던 ‘남계서원’과 ‘고정서원’에 각각 ‘반무방당(半畝方塘)’이 있다. 그 중 고정서원 못가에는 ‘천광운영(天光雲影)’ 정자가 있었다(「주희와 관련된 고적」, 『주희평전』(하), 2016, 1181~1182쪽.). 병산서원 속에 정원 요소로 이 광영지와 입교당 뒤의 화계(花階)가 압권이다.     


만대루는 어느 곳을 보고 있을까     


만대루와 입교당 사이의 공간은 동재와 서재가 있는 마당 공간이다. 예와 성과 경의 몸가짐을 서로 살펴볼 수 있는 행동거지의 예법 실천 공간이다. 입교당과 존덕사와 장판각 사이의 공간은 화계를 두어 입교당에서 바라볼 때 계절의 변화까지 파악한다. 탈색의 공간에서 조금 환한 정원의 기쁨을 남몰래 소담하게 만끽한다. 이 또한 사치스러움이라 애써 외면하면서도 눈길은 머문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어찌 모른다 할까. 사유의 흐름에 따라 함께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이 계절이다계절은 곧 사색의 원천이다  

            

만대루는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강학공간 사이에 위치한다. 진입공간과 강학공간을 만대루가 구획하고 잇대기도 한다. 만대루 1층은 계단을 통한 쌍방향 전이 공간이다. 2층 누마루는 강학 공간의 마당이 확장된 다용도 세미나실이다. 문 열고 들어서면 만대루가 반갑고 환하게 두팔 크게 벌려 반긴다나설 때면 만대루가 어흠’ 하며 큰 헛기침으로 점잖고 지긋하게 막아선다. 만대루는 계단을 올라와서 되돌아 2개의 계단을 통하여 오른다. 누마루에 오르면 주변 경관과 서원의 풍채를 조망할 수 있다. 혹은 회합을 하거나 시회(詩會)를 열어 문학과 인문의 지평을 나누고 품성을 함양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입지적 위계


만대루에 앉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허용된 경관 감상의 매력에 푹 빠지던 호시절이다. 천장의 빗금과 우물마루가 만드는 정교한 직선의 교차로에 금싸락 같은 빛이 쏟아진다. 빛의 오묘한 산란은 의장대의 몇 수 내다본 동작처럼 질서 있고 현란하며 짜릿하다. 홀린 듯 멈추어 빛살의 움직임에 이끌린다. 맺힌 줄도 몰랐던 내 안의 어떤 응어리가 빛 속으로 스르륵 걸어 들어간다빛의 다정한 위로에 녹아든다. 심지어 만대루에서 주변 경관을 사방 바라보는 풍광은 어찌 다 말로 표현할까. 저절로 환호성을 낸다. 만대루란 이름은 두보(杜甫, 712~770)의 시에서 취하였다고 한다. ‘푸른 병풍 같은 산은 저녁놀에 마주하기 좋다’[翠屛宜晩對: 「백제성루」]는 둘째 연인 함련(頷聯)의 문장이다. 시의 셋째 구에 해당한다. 

     

江度寒山閣강도한산각 ; 강이 지나는 한산의 누각에 당도하니

城高絶塞樓성고절새루 ; 높은 성곽 요새의 보루가 절경이다.

翠屛宜晩對취병의만대 ; 푸른 병풍 같은 산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

白谷會深遊백곡회심유 ; 백제성 골은 깊이 노닐기에 알맞다.

急急能鳴雁급급능명안 ; 기러기는 재빠르게 울며 날고 

輕輕不下鷗경경불하구 ; 갈매기는 가뿐하게 떠 있다.

夷陵春色起이릉춘색기 ; 이릉의 봄빛 바야흐로 무르익어 가는데

漸擬放扁舟점의방편주 ; 점점 조각배 띄우고 싶은 마음 인다.   

  

-두보, 「白帝城樓백제성루」     


강을 건너 한산의 누각에 도착한다. 와서 보니 성곽 높은 곳 저 끝에 성루가 보인다. 도달한 장소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강건너 쓸쓸한 누각과 높은 성벽 위에 우뚝 선 성루의 경관이다. 공간의 분위기와 시각적 이미지를 대비적으로 묘사한다. 저녁 무렵에 성루에서 바라보는 주변 산세가 그윽하다. 어둑함이 밀려오며 푸르고 고요한 산색이다. 이곳에 왔으니 이곳의 여유로 노닌다. 재빠르게 울며 지나는 기러기의 군무와 물 위를 떠도는 갈매기로 한가한 계절의 변화를 읽는다. 높은 성루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는 생동감이 공간으로 확장한다. 따스한 봄이 오면 높은 망루에서 보았던 기막힌 풍경 속으로 직접 들어가겠다. 조각배 띄워 저 아름다운 풍경에서 노닐고 싶다. 마음에 담은 봄이 금방이라도 곁에 다가온 듯한 임장감으로 가득하다.


만대루라는 이름은 두보 시의 ‘취병의만대’에서 취한 것이라는데, 이곳 병산서원 만대루의 풍광과 분위기는 주희의 「만대정晩對亭」시에 더 가깝다.

 

落日鬱蒼煙낙일울창연 ; 해 질 녘 푸른 연기 자욱하고

空山轉寒碧공산전한벽 ; 빈 산은 차가운 푸른빛 감돈다.

石屛侍天立석병시천립 ; 바위 병풍은 하늘 떠받들 듯 우뚝 서서

端峭一千尺단초일천척 ; 깎아지른 절벽이 천 길이다.

無言獨與對무언독여대 ; 말없이 홀로 마주 대하니

足以承朝夕족이승조석 ; 아침부터 저녁까지 승경으로 족하다.

何用向時流하용향시류 ; 시류를 따른다고 어찌하랴

抵掌恣談劇저장자담극 ; 손 맞잡고 마음껏 이야기한다.     


-주희, 「만대정(晩對亭)」, 『주자평전』(상): (수징난, 김태완역), 역사비평사, 2016, 1092.     


수련(首聯)은 산색이 짙어진 저물 무렵의 경관이다. 입교당에서 만대루 지붕을 통하여 바라보는 ‘병산(屛山)’의 풍광과 흡사하다. 해질녘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병산의 부른빛 감도는 풍경을 경관 특징으로 삼는다. 함련의 ‘석병’은 만대루에서 보는 병산과 입교당에서 만대루 지붕 위로 보는 병산의 풍경과 분위기를 가졌다. 만대루 7폭 병풍에 들어 있는 병산의 풍경은 하늘을 떠받드는 천 길 절벽으로 단애취벽(丹崖翠壁)의 경관이다.

만대루 7칸이 펼치는 일곱 폭 병풍의 단애취벽 (일부)


경련(頸聯)에서야말로 ‘만대루’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인다. 자연과 말없이 독대하니 종일 쳐다만 보아도 더없이 좋다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미련(尾聯)에서는 이런 좋은 풍광을 자랑하며 떠든다고 흉보지 마라고 한다. 시류에 편승하는 세속적인 행위라고 한들 뭔 상관인가. 마음껏 푸른 산의 정취를 마주한다저녁 무렵이어야만 할 필요도 없다. 아침이나 저녁 가리지 말고 종일 혼자 말없이 마주 하는 푸른 기운이면 좋다. 입교당 마루에 앉아 아무때고 푸른 산을 만대루 지붕 너머로 바라본다만대루의 시공간을 깊은 사색의 그윽함으로 이끈다.    

 

입교당에서 바라보는 단애취벽     


만대루는 동서 20m에 이르는 현존 한국 서원의 누각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특징을 지닌다. 누각 1층과 2층 모두 벽체와 창호가 없다. 어디서 보더라도 만대루 기둥 사이로 다양한 경관을 조망한다. 입교당에서 보았을 때 만대루 지붕 위로 병산이 보이고, 2층 누 기둥 사이로는 낙동강이 보인다. 만대루는 병산의 둔중한 기운을 가로막아 규모를 완화한다그나마 누각의 기둥 사이로 병산의 경관을 나눈다안방에 있는 병풍처럼 애장품이 된다. 살아 있는 그림(活畫)으로 변모한다. 입교당에 올라 정좌한다. 앞마당 건너 만대루가 낙동강을 감추고 바로 병산과 만나게 한다. 단애취벽(丹崖翠壁)이라는 시각적 우세경관의 무게감을 만대루가 일곱 칸의 얼개로 나눈다비로소 경관은 편안한 안도의 풍광으로 다가선다. 내가 움직이면서 일곱 폭 병풍을 이리저리 살피는 순간 극적이고 다양한 풍경이 독자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성룡 연보 제2권에는 ‘단애취벽’에 얽힌 탄핵의 글이 나온다. 1598년 2월이니 56세 때의 일이다.   

입교당에서 만대루를 통하여 위압적인 병산의 규모는 인간적 척도로 변모한다.-동재 앞에는 홍매가, 서재 앞에는 청매가 매혹적인 향으로 진동한다. (2024.03.25.)

           

(2월)

10일(을축) 조정에 돌아왔다. 이 여행길에 운암(雲巖)을 경과했다. 바위는 단양군 남쪽에 있었는데 경치가 매우 훌륭했다. 거기에 폐기된 지 오래된, 조신(曺伸)이 거처하던 조그마한 정자가 있었는데, 선생은 임금이 하사한 호피(虎皮)로 그 정자를 구득(購得)하여 그곳에서 물러와 쉴 뜻이 있었으나, 관직에 얽매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와서 종사관 윤경립(尹敬立)과 더불어 노닐면서 돌 위에다 시를 써 놓았다. 그후 선생을 공박하는 자가 이르러 말하기를,

“전원이 나라 안에 두루 있다” 

라고 하였는데, 선생은 그 말을 듣고 남에게 준 글에서, 

“단애취벽(丹崖翠壁)도 모두 탄핵하는 글 속에 들어갔다.”

고 말하였다. 12일(정묘) 사퇴서를 바쳤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유성룡, 「서애선생 연보」 제2권, 『서애집』     


단애취벽을 전원이고 원림이며 정원으로 은유하였다. ‘온 나라에 걸쳐 널리 정원을 가지고 있다’[至以爲田園遍一國]고 공격한다. 유성룡은 어이없어하면서 탄핵 문장의 글에 ‘단애취벽’이 들어 있다는 사실[有丹崖翠壁 並入彈文之語]에 쓴웃음을 짓는다. 일찍이 단애취벽은 산수 평론에서 풍광의 극적인 아름다운 푸른 암벽 경관을 형용하는 언사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절벽을 이루는 단애취벽의 커다란 암괴는 자연의 기를 수신하여 내공을 함양하는 수련이고 양생의 대상이다.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단양 ‘운암’을 시제로 유성룡의 ‘단애취벽 탄핵 문장’ 사실이 너무 허무맹랑하여 ‘산조차도 비웃을 것이라는 싯구를 남긴다. ‘백간산응소(白簡山應笑)’가 그것인데백간은 관원을 탄핵하는 상소이다.                         


내친김에 한국고전종합DB의 고전번역서에서 ‘단애취벽’의 용례를 살핀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목은집』에서 붉고 푸른 절벽에 이끼꽃이 아롱졌네라는 단애취벽선화반(丹崖翠壁蘚花斑)’을 시경으로 경관을 읊는다. 칠언시에서 ‘단애취벽’을 사용하여 3자씩 경관의 특징을 더한다. 병풍을 펼친 듯하다는 관점이 가장 많다비단구름동천여울솟음과 높음 등으로 단애취벽의 경관을 표현한다.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은 제주 삼성혈에서 ‘단애취벽’을 힘들여 더위잡고 올라가는[丹厓翠壁勞攀] 정원에서의 행위를 표현하기도 한다. 

    

만대루 지붕은 경관의 가림막으로 기능하고 나머지는 시각적으로 트였다만대루는 입교당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병산 속에 스며들어 자신을 투영한다만대루를 쳐다보눈 순간 눈길은 병산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 건축물이 어느새 동화되어 제 좌표를 놓친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병산의 단애취벽으로 시경을 남긴다.   

  

만대루 비취 산빛

온형근               




입교당 마루에 걸터앉아 병산을 쳐다보면

만대루 기와에 선명한 푸른빛 감돈다.  

   

비에 씻긴 기와 너머 병산으로 수목 우거져

녹색 변화구로 던지는 숲 근육은 꿈틀한다.    

 

병산 중턱의 바위 절벽은 자꾸 숲으로 가려져

기와는 아름다운 절벽의 비취 산빛을 닮아간다.  

   

입교당에서 만대루 기둥 사이 일곱 개의 창은

기와와 누마루를 통과한 낙동강 물빛 그늘로 진하다.  

   

물총새와 청호반새 머금은 강물은 에메랄드빛 되어

햇살 가득 머금은 백사장 모래의 뜨거움을 삼킨다.    

 

-2024.03.25.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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