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한국정원의 원형

23. 예천 초간정 원림

by 온형근

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한국정원의 원형


<예천 초간정 원림 주변 송림> 왼편,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거목 소나무들은 선비의 올곧은 절개를 상징한다. 오른편, 바람에 몸을 맡긴 유연한 융통(2023.02.06.)

다시 살만한 곳에 대하여 생각한다. 『택리지』에서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네 가지를 살만한 곳인 가거지(可居之)라 한다. 지리와 산수는 지형적 조건을, 생리는 경제적 기반을, 인심은 사회적 조건을 의미한다. 지리는 풍수와 긴밀하여 배산임수, 단단한 지반, 질 좋은 물, 햇볕 양명한 탁 트인 지세와 만난다. 이는 단순한 자연환경의 선택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조화를 이루는 우주론적 거주 철학의 실천이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은 아늑하고 집 앞으로 물을 두면 두루 생명 유지에 더할 나위 없다. 뒷산을 주산으로 좌우 산줄기가 둘러싸고 계류가 좌우로 흘러 앞의 하천과 합류한다. 하천 너머 다시 안산이 있어 전후좌우의 산이 사신사(四神砂)를 이룬다. 사신사는 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의 상징적 배치로, 공간에 우주적 질서를 부여하는 동아시아 풍수의 핵심 개념이다(최원석, 『한국의 풍수와 비보』, 민속원, 2004). 초간정 원림은 바로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이 말하는 계거(溪居)의 전형적인 입지이다. 강가에 사는 '강거(江居)'가 재물과 물류의 소통을 중시한다면, 계곡에 사는 '계거(溪居)'는 속세와의 적절한 거리를 통해 맑은 정신을 지키려는 선비들의 이상향이다. ‘평온한 아름다움과 풍류의 운치인 맑은 경치가 있다. 또한 관개(물댐)가 좋아 경작하는 이익이 있는 곳이다’(惟溪居 有平穩之美 簫酒之致 又有灌漑耕耘之利).


계류에 우뚝 심겨진 충적암의 암벽과 거목의 맑은 송림


<예천 초간정 맞은편 송림> 세월을 머금고 굽이친 노송(老松)들이 호위하듯 감싸안은 초간정. 맑은 솔바람이 학문과 수양의 공간을 채운다. (2023.02.06.)


번다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와 깊은 계곡의 뛰어난 풍광을 즐긴다. 맑은 계류의 운치와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도모한다. 그러면서 계류를 이용한 농업경영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확보한다. 이는 조선 선비가 추구한 ‘경독일여(耕讀一如)’의 실천, 즉 밭 갈고 책 읽는 일이 하나로 통합된 삶의 방식이다. 탈속(脫俗)과 현실의 균형, 이상과 실리의 조화가 계거의 본질이다. 정신을 맑게 하고 감정을 화평하게 하는 것은 한국정원문화의 요체이다.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초간정은 긴 벌판과 넓은 구릉지의 물가가 휘어서 굽어 들어가 매우 깊은 곳에 조영된 정자이다. 초간정 양쪽 기슭으로 계류가 흐른다. ‘운암지’와 ‘내지저수지’에서 흘러들어오는 계류이다. 우뚝솟은 양쪽의 거대한 암반이 도드라지게 자연 호안을 형성한다. 이 암반은 오랜 세월 물이 깎아낸 충적암(沖積岩)으로, 지질학적 시간의 축적이 만든 자연 조각이다. 인위적 석축이나 조경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호안이다. 물의 흐름을 제어하고 소리를 빚어낸다. 한국정원의 ‘자연 존중’ 미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깊숙한 골짜기의 여운을 고스란히 형용한다. 그 암반 한쪽 위에 초간정이 위치한다. 때로는 여울소리로 화답하고 그윽한 소(沼)를 이룬다. 세월의 뜰녹 입은 이끼 낀 바위의 암벽을 마주보며 앉아 있자면 별유천지에 와 있는 듯 빼어난 경관을 한참 동안 만끽한다.


사람의 마음은 ‘선(善)’이지만 ‘기(氣)’로 인하여 욕망에 휩싸인다. 그래서 자연 본연의 순수한 ‘선’을 규범으로 삼아 본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성품을 기르는 대상으로 자연을 매개로 삼아야 한다. 이황(李滉, 1501~1570)의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빼어난 논지이다. 이는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근거한 수양론이다. 인간의 사단(四端)은 이(理)에서 발하지만 칠정(七情)은 기(氣)에서 발한다는 심성론의 실천적 적용이다. 자연은 기질의 편벽됨 없이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드러내는 순수한 존재이므로, 자연 관조를 통해 인간은 왜곡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퇴계의 문인이었던 권문해 역시 이러한 스승의 가르침을 공간에 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니 원림의 경영은 ‘성정의 올바름(性情之正)’을 회복하는 실천이다. 원림을 미음완보(微吟緩步)하면서 세밀한 관찰과 소통으로 도를 깨우치는 학문과 수양의 장소인 ‘장수지소(藏修之所)’가 한국정원문화의 원형이다. '장수(藏修)'는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의 “군자의 학문은 감추어 닦고[藏焉修焉], 쉬면서 유식한다[息焉游焉]”는 구절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조용히 학문에 전념하는 선비의 이상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통해 인간의 도리를 확인하는 치열한 구도(求道)의 과정이다. 초간정 원림은 계곡과 주변 송림과 잘 어울린다. 자연을 벗삼는 자기 수양의 심성을 경관으로 표출한 생활 공간이다. 함께 어울리는 공공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그윽하고 한가한 정경을 안겨준다.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의 집필 공간인 초간정사


초간정 원림은 본채인 ‘예천권씨 초간종택’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러한 공간적 거리는 별서(別墅)의 본질적 특성으로, 일상적 거주 공간과 학문·수양 공간의 분리를 통해 세속과 성역(聖域)의 의례적 경계를 만든다. 초간종택에서 초간정으로 걸어가는 약 2㎞의 동선 자체가 세속에서 장수지소로 들어가는 정신적 전환의 과정이 된다. 초간정 원림이 위치한 계류는 매봉과 국사봉의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만난 계곡의 수량이다. ‘운암지’와 ‘내지저수지’를 거쳐서 초간정 암반 앞에 흐르는 금곡천이다. 금곡천(金谷川)이라는 명칭은 '쇠골 내'라는 순우리말의 한자 표기로, 이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과 민속적 지명 전통을 반영한다.


암벽 위에 축대를 조성하여 세운 초간정의 입지는 주변 산수의 영향보다는 스스로 계곡과 숲을 이루었다. 외부에 대하여 고요하여 세상일을 잊어버릴 만한 개별성을 지녔다. 독자적이고 주체적이며 자립적인 장소의 영역성을 확보한 정원이다. 이는 현대 현상학적 장소론에서 말하는 ‘장소성(place-ness)’의 전형적 사례로, 물리적 공간(space)이 인간의 체험과 의미 부여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장소(place)로 전환된 것이다. 마치 속세와 단절된 선계(仙界)처럼,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아득히 먼 은일(隱逸)의 공간이다. 초간정 난간에서 계류를 향해 앉으면 왼쪽에서 흘러들어 맞은편 절벽을 들이친 후 오른쪽 계류로 차분히 흘러나간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앉아 있으면 마치 섬처럼 느껴져 절해고도에 놓인 듯하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부유감(浮遊感)은 잡념을 씻어내고 오로지 흐르는 물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선사한다.


<예천 초간정 원림 공간 구조 위성지도> 내원과 외원 권역. ① 초간정 원림 ② 예천권씨 초간종택 ③ 외원길 ④ 금곡천 ⑤ 용문산 자락 ⑥ 용문사 ⑦ 매봉 자락 ⑧ 국사봉 자락


권문해가 세운 초간정사(草澗精舍)는 본가와 떨어진 별서 원림이다. 그러나 성격은 강학과 집필의 공간에 더 비중을 두었다. ‘정사(精舍)’라는 명칭 자체가 단순한 정자(亭子)와 구별되는 학문 시설임을 명시한다. 정사는 본래 불교의 수행 공간을 지칭하던 용어가 유교 문화권에서 강학과 수양의 장소로 전용된 것으로, 단순한 유람이나 풍류가 아닌 진지한 학문 활동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1614)』보다 더 최초인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1589)』의 집필을 마무리하였다. 『대동운부군옥』은 단군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 문물, 인물, 지리 등을 운자(韻字) 순서로 배열한 방대한 저술이다. 총 1,589개 항목에 걸쳐 한국사의 전 영역을 집대성한 조선 지식의 보고이다. 이는 이수광의 『지봉유설』보다 25년, 중국의 『삼재도회(三才圖會)』(1609)보다도 20년 앞선 동아시아 백과사전 편찬사의 이정표이다.


방대한 분량의 번역본이 420여년 만에 20권으로 완역되었다(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 번역). 중국 역사는 잘 알면서 정작 우리 역사에 문외한인 조선의 선비를 위하여 단군부터 조선 중기까지 역사와 문물을 집대성하였다. 권문해는 이 책의 서문에서 “중국의 운부(韻府)는 많으나 우리나라의 것은 없으니, 이에 우리나라 고유의 운부를 만들어 후학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는 16세기 조선 지식인의 문화적 자주성과 실학적 문제의식을 선구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대주의를 넘어 우리 문화에 대한 주체적인 자각과 자존감을 확립하려 했던 지식인의 치열한 고뇌가 서린 역작이다.


그만큼 참고한 서적이 많아 서고를 갖추어 보유하고 있었다. 서고로 추정되는 백승각(百承閣)은 복원되지 않았다. 백승각이라는 명칭은 ‘백 가지를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서적을 귀하게 여기고 지식을 존중하는 선비의 태도를 상징한다. 현재 터만 남아있으나, 『초간일기』의 기록을 통해 이곳이 방대한 문헌을 보관하고 열람하던 서고였음이 확인된다. 담을 경계로 현재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강학 장소인 광영대(光影臺)는 글 읽는 소리로 낭랑했겠다. ‘광영대’라는 명칭은 ‘빛과 그림자의 대(臺)’로,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를 관조하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이는 주자가 말한 “반관류수(半觀流水), 반관유영(半觀遊影)”, 즉 반은 흐르는 물을 보고 반은 흔들리는 그림자를 본다는 자연 관조의 수양법과 통한다.


초간정 서북쪽 정면 3칸, 측면 2칸에서 4칸은 난간을 설치한 대청이고 2칸은 온돌방이다. 정자의 동쪽 처마 아래에는 ‘석조헌(夕釣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저녁에 낚시를 즐기는 집’이라는 뜻으로, 학문뿐만 아니라 자연 속의 풍류를 즐기던 여유를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사계절 사용이 가능한 실용적 설계로, 단순히 여름철 피서나 일시적 방문이 아니라 장기간 거주하며 학문에 전념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대청은 개방된 관조와 사색의 공간이며, 온돌방은 겨울철 집필과 독서의 공간으로 기능의 분화가 명확하다. 초간정 대청에서 ‘이웃한 풍광을 빌려’오는 인차(隣借), ‘우러러보는 경치’인 앙차(仰借), ‘구부려보는 경치를 조망’하는 부차(俯借)의 경관은 내원(內苑) 권역이다.


차경은 중국 명대의 조원서 『원야(園冶)』(計成, 1634)에서 체계화된 개념이지만, 한국정원에서는 보다 광역적이고 시간성을 포함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빌려오는 경관 보다는 경계 없이 장애 없이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무경무애(無境無碍)의 경관 향유를 특징으로 한다. 인차·앙차·부차는 공간을 바라보는 경관 향유 방법이며, 응시이차는 시간을 바라보는 경관 향유 방법이다. 한국정원의 경관 향유는 공간과 시간을 아우르는 4차원적 경관 구성 방식이다.


초간정 원림의 외원(外苑) 권역은 초간종택에서 초간정 사이의 동선에 놓인다. 죽림마을, 남티고개, 사시나무골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관을 빌려서 향유하는 ‘응시이차(應時而借)’의 경관이다. 초간정에서 멀리 있는 경치를 빌려서 조망하는 계곡과 용문산 자락, 농경지 등의 ‘원차(遠借)’의 공간도 초간정 원림의 외원에 해당한다. 이러한 내원·외원의 이중 구조는 초간정을 고립된 은거 공간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와 자연 생태계, 그리고 우주적 질서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개방 체계로 만든다. 이는 서구 정원의 담장으로 경계 지워진 폐쇄 공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정원의 특성이다.


권문해의 ‘초간집연보’, 49세 2월에 ‘초간정사 완성’이라는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二月。草澗精舍成。先生雅好林泉。常有藏修終老之計。久縻州紱。非其志也。至是。愛汶水之下溪山明媚幽絶。卜築三間屋子。又於東畔巖下。鑿池養魚。種以松竹

2월, 초간정사가 완성되었다. 선생은 임천을 좋아하는 아취가 있어 늘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쓴다는’ ‘장수(藏修)’로 노년을 지낼 계획이었다. 오래도록 고을 원님으로 매여 있는 ‘구미주불(久縻州紱)’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이에 이르러 문수(汶水) 아래 계류가 밝고 예쁘며 그윽하여 세 칸을 지었다. 또 동쪽 물가 바위 아래 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었다.


-권문해, 「초간집연보」『초간집』, 한국고전종합DB.


48세 12월에 공주목사를 사임하여 두 달만인 2월에 초간정사를 지었으니 예전부터 미리 작정하고 도모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권문해가 48세에 공직을 사임한 것은 당시 조선 관료의 평균 퇴임 연령(50대 중반)보다 이른 것으로, 학문적 완성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보여준다. 단 두 달 만에 초간정사를 완공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입지를 물색하고 설계를 준비했음을 의미한다. 감추어 닦는다는 ‘장수(藏修)’가 책 읽고 학문에 힘쓴다는 면학의 의미이며, 고을 수령으로 오래 매이는 ‘구미주불(久縻州紱)’에는 뜻이 없었다.


책 읽고 학문에 힘쓰는 면학의 장수를 위하여 계류가 밝고 아름다운 ‘명미유절(明媚幽絶)’의 장소를 찾는다. 명미유절은 네 글자로 초간정 입지의 본질을 압축한 탁월한 표현이다. ‘명미(明媚)’는 밝고 아름다워 정신을 맑게 하는 양(陽)의 특성이며, ‘유절(幽絶)’은 그윽하고 세상과 절연되어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음(陰)의 특성이다. 학문 공간에 필요한 청명함과 고요함, 개방성과 폐쇄성의 변증법적 조화가 이 네 글자에 담겨있다. 그리하여 별서 원림을 조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의 면학과 집필로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이 탄생한다. 권문해는 초간정에서 7년간(1582~1589) 집중적으로 『대동운부군옥』을 집필하여 완성한다. 이는 장수지소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불후의 학문적 성과를 낳은 실천적 공간이었음을 입증한다. 초간정은 조선시대 별서원림이 학문 생산의 구체적 장소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계류에 우뚝 심겨진 충적암의 암벽과 거목의 맑은 송림


겨울 한복판의 취재 답사인 초간정 원림의 풍치는 다소 경직된 소박함으로 가득하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제약은 오히려 초간정 경관의 본질적 구조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화려한 꽃과 짙은 녹음이 사라진 겨울 경관은 공간의 뼈대인 지형, 암반, 수목의 골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초간정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사면은 푸른 솔잎으로 선명하다. 오래된 거목의 소나무가 군식 형태로 송림을 이룬다. 소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팽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참나무류가 주요 식생이지만 겨울이라 송백의 푸르름만 돋보인다.


소나무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세한삼우의 하나이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표적 수종이다. 『논어』 「자한(子罕)」편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는 구절은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군자의 덕을 소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선비들이 원림에 소나무를 식재한 철학적 근거가 된다. 주변 식생 중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우세 식생인데, 조영 초기부터 축대를 쌓고 소나무를 식재하였으며 느티나무를 심는 등 적극적인 조경공사에 대한 기록이 권문해의 개인 일기인 『초간 일기』곳곳에 등장한다.


『초간일기』의 식재 기록은 초간정 조영이 단순히 자연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가꾸고 조성하는 적극적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과의 교감이 관조뿐 아니라 노동과 실천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유교적 자연관을 반영한다. 소나무 식재는 상징적 의미의 구현이며, 느티나무 식재는 실용적 그늘과 경관 다양성을 위한 것으로, 상징과 실용의 조화가 엿보인다.


<초간정 남측 전경> 암반 위에 세워진 장수지소, 초간정은 금곡천 계류가 만든 거대한 충적암 암반 위에 축대를 쌓아 조성되었다. 사진은 남쪽 하류에서 북쪽을 향해 올려다본 시점


<초간정 서측 계류> 양안의 암반이 만드는 별유천지, 초간정 원림의 가장 독창적인 경관 요소인 계류와 양안(兩岸)의 암반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찾은 예천은 초간정 원림 외에도 선몽대, 회룡포 등의 명승과 천연기념물 석송령과 황목근이 있다. 소나무인 석송령은 1927년, 팽나무인 황목근은 1939년에 등기를 마쳐 토지대장이 있고 세금을 납부한다. 이는 한국 문화사에서 극히 독특한 사례로, 나무를 법적 인격체로 인정하여 재산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연보호를 넘어, 오래된 나무를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자 조상처럼 모시는 한국인의 자연관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둘 다 아들나무가 있어서 자라고 있다. 황목근의 아들나무는 오래 살라고 ‘황만수’로 작명하였다. ‘황만수(黃萬壽)’는 ‘황씨 성을 가진 만 년을 사는 나무’라는 의미로, 나무를 사람처럼 성씨를 부여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한국인의 애니미즘적 자연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로 인식하는 전통적 생태관의 표현이다.


그리고 삼강주막 등 문화콘텐츠가 즐비하다. 예천은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삼강(三江) 지역으로, 조선시대 수운(水運) 교통의 요지였다. 삼강주막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실제 주막으로 운영되던 건물이 보존된 것으로,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과 여행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좋은 계절을 찾아 오간다면 찬란한 풍광과 감동을 시의 풍경으로 읊을 수 있다. 겨울 초간정 원림의 계류는 콸콸 넘치는 물의 현란을 감추었으나, 꽝광 얼은 소(沼)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명랑하고 산뜻하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청각적으로는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 역설적 경관이다. 경관론에서 말하는 ‘음향경관(soundscape)’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한국정원이 시각 중심의 서구 정원과 달리 청각, 촉각, 후각 등 오감을 통합한 다감각적 경관 체험을 지향함을 드러낸다.


계류의 빙질이 단단하고 깨끗하여 오랜만에 올라서서 발 미끄럼을 타본다. 얼음 위를 걷는 촉각적 체험은 자연과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접촉으로, 단순한 시각적 관조를 넘어 몸으로 자연을 체득하는 ‘신체화된 경관 경험(embodied landscape experience)’이다. 이는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신체 현상학이 강조하는 ‘몸으로 세계를 경험한다’는 지각 이론과 통하며, 한국정원 체험의 신체성을 보여준다.


초간정사 호위

온형근




먼 길 쉬엄쉬엄 나르던 금곡천 찬찬한 비탈 접어들더니

물에 씻긴 매끈한 바위로 곡 긋고 폭포 소리로 흐른다.

매봉과 국사봉이 그려 낸 산골 물이라 긴 여정에도 울창


융기하여 비틀며 흘려내렸을 암반은

마주한 거리만큼 떨어져 시내로 흐르는데

정월 대보름 즈음한 얼음 바닥으로

햇살 반짝이는, 은빛 정지된 투영을 환호한다.


앞서 얼음 밑으로 빛나는 물방울 몸부림치더니

암반 두들겨 차고 명징한 빠른 징소리

돌로 입 헹구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아 한참 소요하더니

석조헌夕釣軒 건너편 단애 밑으로 순순해져 흐른다.


초간정사 난간에서 글 읽는 소리는

담장에 걸려 넘어오지 못하고

한 바퀴 휘돌며 콸콸 물 읽는 소리는

망연히 바라보는 시간의 거처로 옮겨 다닌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고요의 깊은 속내에 가둔다.


산 너머로 햇살, 기를 쓰고 얼음을 내리 쫀다.

단단하고 빛나는 빙질의 얼음 위를 요동 없이

이쪽과 저쪽의 겨울 바위, 호안을 번갈아 누린다.

맑은 솔바람 쓸어내는 호위, 그가 일어나 걷는다.


(2023.02.06.)


<초간정사 호위> 시상을 형상화한 상상 그림, 단단하고 빛나는 빙질의 얼음 위를 요동 없이, 맑은 솔바람 쓸어내는 호위가 머무는 곳. 겨울 초간정의 고요한 시간.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에서 ‘명징한 징소리’를 듣는다. 혼탁한 세상을 깨우는 선비의 죽비소리이다. 내면의 울림이 터쳐나온다. 시골 조용한 들판으로 낮게 기울며 흐르는 시냇물은 움직임새가 없다. 눈 녹은 물로 생기를 회복하기에도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초간정 계류에 접어드는 원림 입구 콘크리트 교량을 지나면서 굽이친다.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또박또박 걷는 구두 소리처럼 똑똑하다. 낮은 기울기임에도 어슷비슷 좌우로 그어 나가면서 높낮이를 달리한다. 그때마다 또렷하게 소리가 커진다. 커진 소리 앞에 참외에서 수박 크기의 시냇돌을 두들겨 찰싹댄다.


물소리의 변주는 자연이 만드는 무한한 음악성을 보여준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에서 ‘천적(天籟)’, 즉 하늘의 소리로 불리는 자연의 음악이다. 장자는 『장자』 「제물론(齊物論)」에서 “땅의 소리(地籟), 사람의 소리(人籟), 하늘의 소리(天籟)”를 구분하며, 천적이 가장 순수하고 근원적인 소리라고 하였다. 초간정 계류의 물소리는 인위적 음악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천적으로서 수양자의 마음을 정화한다. 어느덧 초간정 아래 깊은 소(沼)에 이르러 꽁꽁 언 얼음 밑으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차고 명징한 징소리로 몸을 부린다.


글 읽는 소리도 물 읽는 소리도 시간의 거처로 옮아간다. 세상의 모든 시끄러움을 고요의 깊은 속내에 가둔다. ‘시간의 거처’라는 표현은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고 기억이 쌓이는 존재론적 거처임을 암시한다. 바슐라르(Bachelard)가 『공간의 시학』에서 말한 ‘친밀한 공간(intimate space)’으로서의 거처, 즉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존재가 뿌리내린 곳으로서의 장소 개념과 통한다.


맑은 솔바람을 쓸어내는 우뚝 솟은 양안(兩岸)의 암반의 호위가 초간정 원림의 시그니처이자 개성이고 대표하는 상징임을 겨울이라 더욱 뚜렷하게 헤아린다. ‘호위(護衛)’라는 표현으로 암반을 의인화한다. 초간정을 지키는 수호자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자연 요소에 영적 존재성을 부여하는 애니미즘적 자연관이자,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보살피는 상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태적 세계관의 표현이다. 암반은 단순한 물리적 지형이 아니라, 초간정이라는 성역을 외부로부터 차폐하고 보호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된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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