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낙산 비우당 원림
왕조 시대에서조차 백성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권력 나부랭이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행하는 국가권력 사유화 중 가장 손가락질을 받던 게 매관매직이다. 그것도 대놓고, 대규모로, 대집행 구조로 금자탑을 만들었다. 한국의 문화 유전자는 여전히 청렴을 공직자의 덕목으로 우러러 공경한다. 알선수뢰, 제삼자뇌물제공 등의 수뢰를 금기시한다. 봉사와 헌신으로 직에 대한 소명감을 긍지로 여긴다. 공사의 구분이 뚜렷하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리더가 지는 게 기본 상식이다. 그래서 청백리에 대한 존경과 숭모의 정은 대를 이어 칭송으로 전승된다. 더군다나 권력이 거래의 대상이 되다니! 이건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 요소 나열에서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는 거듭 거악의 최고봉이다. 이러한 극악한 부패의 시대에 들어섰음에도 무감하기만 세태가 낯설다.
지금은 사라진 정원 문화를 답사하는 세 번째로 지봉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낙산 비우당 원림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 최초의 청백리라 일컫는 하정 유관(柳寬, 1346~1433)이 살던 집터에서 시작되었다. 조선 초 3대 청백리는 황희(黃喜, 1363~1452), 맹사성(孟思誠, 1360~1438), 유관이다. 유관은 맹사성보다 14살, 황희보다 17살이 많다. 총리급 관료가 낙산 밑 어귀에 울타리도 없는 초가집 두어 칸에서 살았다.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져 방 안에서 우산을 펼치고 부인에게 “이 우산도 없는 집은 비를 어찌 피하겠소”라고 하니, “우산이 없는 집이라도 우리처럼 비는 새지 않을 테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어라! 이 대화 분위기 낯설지 않다. 남 얘기 같지 않은 기시감이 드는 건 웬일일까. 해서 유관의 집을 세간에서는 우산각(雨傘閣)이라고 불렀다.
출퇴근도 말을 타지 않고 ‘걷는 정승’으로 일화를 남긴다. 벼슬 높은 권력자임에도 평민과 다름없이 행동하는 겸손한 공직자의 자세이다. 고려 말 16세에 문과 급제하여 조선의 문치와 국방을 아우른 문무겸비의 인재이다. 만 나이 78살(1424, 세종 6)에 우의정에 오른 공직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다. 그러고도 11년을 더 살았다. 재물에 초연하고 고서나 역사서를 뒤적이며 물질보다 정신 가치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제시한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인재를 양성하며 지속 가능한 공직 사회의 발전을 도모한다. 유관의 청백리 정신은 단순히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삶 곳곳에 배어있는 청빈, 애민, 겸손, 교육이라는 오늘날 꼭 필요한 핵심 가치를 그의 너그럽고 공손하며 곧고 바른 성품에서 배운다. 매관매직 나부랭이의 횡행과 부하에게 책임 지우는 거악의 출현에 조선의 청백리가 살았던 집터를 찾는 마음은 한결 더 씁쓸하다.
그후 우산각은 유관의 외증손이며 장관급 관료인 이희검(李希儉, 1516~1579)이 물려받는다. “옷은 몸을 가리는 것으로 족하고[衣足以蔽身],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으로 족하다[食足以充腸]”라는 신조로 일상을 영위한 이희겸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집을 이희겸의 아들인 이수광이 조촐하게다시 지어 ‘비우(庇雨)’라는 편액을 단다. ‘비우’라는 말은 ‘근비풍우(僅庇風雨)’ 즉 겨우 바람과 비를 가린다는 의미이다. 청빈의 생활을 실행에 옮기는 ‘비우사상’의 시작이다. 유관은 이수광의 외가 쪽으로 5대 조상이다. 이수광은 여기에서 20권 10책 분량의 『지봉유설』을 4년만에 정리, 완성한다. 비우당을 짓고 지은 시가 『지봉집』에 있어서 이때의 감흥을 알 수 있다.
하정유지낙동우(夏亭遺址洛東隅) 하정의 옛 터는 낙산(駱山) 동쪽 모퉁이에 있어
청백가전야도오(淸白家傳也到吾) 청백의 가풍이 또한 나에게 이른다.
안득산주천만리(安得傘周千萬里) 어찌 우산이 천만 리에 두루 미치게 할 수 있을까?
진차천하불첨유(盡遮天下不沾濡) 천하를 모두 가려 젖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수광, 「비우당」, 『지봉집』 제20권 / 별록
『지봉집』은 수원전사(水原田舍, 경기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썼다. 유관의 호인 ‘하정’의 옛터가 낙산 동편에 있고 바로 이곳이 비우당이고 명확히 선언한다. 널리 알려진 청백리의 집을 이어받아 청렴을 가문의 풍습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읽는다. 이수광은 아버지에 이어 자신이 그 정신을 계승했음을 밝히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유관이 비 새는 집에서 우산으로 비를 피하면서도 백성을 걱정했다는 일화를 떠올린다. ‘우산’이 백성을 보살피는 위정자의 마음을 상징하는 순간[安得傘周千萬里]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의 염원이 간절하다. 선조 유관의 청백과 애민 정신으로 온 백성이 편안하게 살도록 소망을 내건다. 이수광 역시 자신의 안위보다는 광대한 포용의 미학을 표상한다. 비우당이 ‘겨우 비를 피하는 집’이라는 겸손이지만 그 정신은 ‘천만리 천하를 덮어 백성을 비에 젖지 않게 하려는’ 지극한 염원으로 승화된다. 이수광이 추구한 정치의 이상과 개인의 덕목이 나타난다. 동아일보 1997.02.06.일자 19면에 실린 「새로 쓰는 선비론.12 – 지봉 이수광」 기사의 ‘황창배’ 화백의 그림을 보았다. 비우당에서 저술에 집중하는 이수광의 비우당 풍광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네이버 라이브러리, ‘비우당’으로 검색).
이수광은 ‘도시 속의 재야[城市山林]’를 표방하며 『지봉유설』에서 민족의 자존과 실학, 지도층의 정신 개혁과 솔선수범을 촉구한다. 성리학의 자기 혁신이 실학이고 이는 이론보다는 무실과 지행합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광해군 말년에 그는 창덕궁 서쪽의 침류대(枕流臺) 계곡에 모여든 장안의 문인들과 어울린다. 이들이 서울의 실학을 일으키는 선구자로 등장한다. 이수광은 이 시기에 「채신잡록」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낸다. 대사헌으로 있던 1623년(인조 3)의 상소문의 개혁안에는 “만약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쓰지[務實] 아니하고 헛되이 실속없이 거죽만 잘 꾸미면서[文具] 정치의 공을 쌓는다면[治功] 만가지 일이 허사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수광이 직접 작성한 「동원비우당기(東園庇雨堂記)」를 읽는다. 비우당은 동대문 밖의 낙산 바로 동쪽 편[直駱峯之東偏]에 있다. 이 지점이 한양도성의 내사산 중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동쪽 기슭이다. 서쪽의 인왕산과 동서로 마주 보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흥인지문 명칭에 ‘지(之)’를 추가하는 문자 비보풍수를 적용하게끔 낙산의 지세가 인왕산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비우당의 앞뜰이었던 동원은 사라졌다. 이수광의 손길로 조성된 비우당 원림은 낙산과 숲으로 이어진 산천의 일부였다. 사라진 동원의 백 무(畝, 1무는 30평) 위에 흐르던 풍류와 비우당의 청백한 유풍을 되새긴다. 산골짜기에서 소박하게 살았던 그의 삶에서 더 큰 세상을 헤아리는 실천 의지를 겨우 읽는다.
이곳에 상산이라는 산이 있다[有山曰商山]. 비우당은 낙산의 상산이라는 또 다른 산줄기에서 뻗어 내린 지맥에 연결되었다는 설명이다. 이 상산의 줄기가[山之一麓] 남쪽으로 비스듬히 뻗어[邐迤而南] 내려온다. 산줄기가 험준하지 않고 완만하게 경사졌음을 표상한다. 이는 따뜻한 남향을 받아들이기에 유리한 지형의 이점을 가진다. 이 비우당을 감싸안는 산자락이 마치 읍하는 듯한 모양[若拱揖之狀]인데 이곳을 지봉이라 부른다[者曰芝峯]. 동아일보 1993.10.13.일자 9면에 실린 「명저의 고향.39 – 이수광 지봉유설」 기사에 지봉 추정 사진이 실렸다(네이버 라이브러리, ‘비우당’으로 검색).
이수광의 ‘상산’과 ‘동원’, ‘지봉’은 상산사호(商山四皓) 고사에서 가져와 명명한 지명이다. 진(秦) 나라 말기, 한 고조의 초빙에도 불구하고 ‘상산’의 산속으로 들어가 나물을 캐 먹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던 네 명의 현인[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대표하여 ‘동원’을 취한다. 그리고 비우당 뒤뜰에 지초(芝草)를 심어 ‘지봉’이라 부른다. 덕을 쌓고 혼탁한 세상을 피해 은거하려는 자신의 이념 지향과 의지를 상산이라 이름지은 산자락에 드러낸다. 비우당의 좁은 공간을 무한한 정신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이수광의 원림 경영 의지를 엿본다.
지형의 ‘공읍(拱揖)’ 형상은 풍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읍(揖)’은 공손하게 절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는 산줄기가 비우당을 향해 겸손하게 감싸안거나 보호하는 듯한 형세를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지형은 외부의 거센 바람을 막아준다. 내부의 아늑함을 조성하여 안정감과 포근함을 부여한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포옹(抱擁)’ 또는 ‘읍곡(揖谷)’의 형상은 기가 모이는 이상적인 길지의 모습으로 여긴다. 지봉이라는 지형에 의하여 비우당은 편안하고 고요한 사색의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경관 가치를 보유한다.
지봉 위에는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盤石]가 있다. 또 우산처럼 드리워진 큰 소나무 10여 그루[大松十餘株如偃蓋形]가 있는데, 이곳을 서봉정이라 한다[者曰棲鳳亭]. 그 아래 땅은 더욱 평평하고 넓어[更平衍], 약 백 무 정도[周百許畝] 된다. 이곳을 구획하여 정원을 만들고 이름을 동원[畫以爲園曰東園]이라 하였다. 동원은 비우당 앞으로 펼쳐진 원림이다. 동원은 깊고 그윽하며 넓고 한적하여[深邃夷曠] 그윽하여 거주하기 좋은[有幽居之勝] 곳이다.
동원의 경관을 ‘심수이광’으로 묘사하였다. ‘깊고 그윽하다’는 ‘심수’는 개방감보다는 내부로 들어갈수록 깊이와 은밀함을 지닌 공간이라는 표현이다. 이런 곳은 고요한 사색의 분위기이며 외부의 번잡함을 단절하는 안식처 역할을 암시한다. ‘넓고 한적하다’는 ‘이광’은 원림의 규모가 주는 여유로움을 나타낸다. 비우당 주변에 삼천 평 정도의 넓은 정원으로 조성되었다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넓은 공간은 시야 확보에 유리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여유롭다. 한적하다는 것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한 분위기를 지닌다는 경관 설명이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창신동에 소재한 이수광의 비우당 터는 찾기에 쉽지 않다. 좁은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로 400년 전 시절의 정취를 떠올린다. 복잡한 주택과 아파트 사이사이로 옛 흔적을 더듬지만 가당찮다. 낙산 자락의 완만한 경사에 협착의 통증을 가볍게 올린다. 드디어 비우당 복원지 앞에 다다르니 울타리 문이 닫혀 있다. 예전에 ‘조경문화답사동인’ 『다랑쉬』에서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마루에 앉아 한참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집 뒤의 ‘자지동천(紫芝洞天)’ 바위글씨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울타리 밖에서 사진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마루에 앉고 싶었는데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서 더욱 비우당 뒤뜰과 옆뜰을 더 살폈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댄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400년 전 그 시간으로 들어간다. 담장 밖에서 바라본 비우당의 고요한 풍경이 마음을 적신다. 이곳에서 지봉 이수광이 동지세류부터 산정대월까지 여덟 가지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남겼으리라. 울타리 너머 보이지 않는 풍경들을 상상하며 한 편의 시를 남긴다.
낙타의 등을 닮았다는 낙산에서 오장육부와 심산구곡이 있었을 어느 층위 지점의 켜를 끄집어 펼친다.
세속에 살면서 나물 뜯는 은일을 거두자니
멀지 않으면서 오르내리기 벅찬 산꼭대기 지나
산줄기 이어지되 투둘대는 산마루 몇 개 더
이쯤이겠지 싶어 주저앉는 미혹의 자리 몇 개 더
구불한 산길로 마음의 행처를 잃게 장치한다.
직바로 닿도록 도모하는 영리가 매관매직이라면
수레나 지게에 매어 둘 기운 없도록 깊은 동천에
그때도 어디라고 했으나 아득하여 찾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나물 뜯던 지봉조차 흔적 없어
상산의 흰 눈썹 노인은 보이지 않고
비우당 원림,
여덟 경치만 안개 낀 날 아스라이 피어오른다.
낙타 등 같은 산등성이에 발을 디딘다. 이수광의 숨결을 찾아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곳을 찾아왔건만 한 가운데에 놓였다.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마음은 더 높은 곳을 향한다. 낙산의 오장육부와 심산구곡이 있었을 어느 층위 지점의 켜를 끄집어낸다. 산길이 구불거릴수록 내 마음도 함께 구불거린다. 직선으로 가면 쉬울 텐데, 굳이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찾아온다. ‘이쯤이면 되겠지’ 하는 타협의 순간들이 반복된다. 하지만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 숨은 진짜 안식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예전에 들었던 지정학적 위치도 이제는 아득하다. 나물 뜯던 작은 봉우리조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상산의 지혜로운 노인은 어디로 갔을까. 비우당의 아름다운 정원도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 오직 여덟 가지 아름다운 풍경만이 안개 속에서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흐릿함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진실을 본다.
「동원비우당기」의 말미에 비우당 주변에는 여덟 가지 풍경[景有八]이 있어 이를 기록한다고 하였다. 「비우당팔영(庇雨堂八詠)에 수록된 여덟 가지 풍광은 다음과 같다.
비우당 1경 : 동지세류(東池細柳) 동쪽 연못의 가는 버드나무
비우당 2경 : 북령소송(北嶺疏松) 북쪽 고개의 성긴 소나무
비우당 3경 : 타락청운(駝駱晴雲) 낙산의 맑게 갠 하늘의 구름
비우당 4경 : 아차모우(峨嵯暮雨) 아차산의 저녁 비
비우당 5경 : 전계세족(前溪洗足) 앞 시내에서 발 씻기
비우당 6경 : 후포채지(後圃採芝) 뒷밭에서 지초 캐기
비우당 7경 : 암동심화(巖洞尋花) 바위 골짜기에서 꽃 찾기
비우당 8경 : 산정대월(山亭待月) 산속 정자에서 달마중
이수광의 ‘비우당팔영’은 청빈과 고결의 정신이 배어있다. 연못가 버들가지에 스며든 봄의 속삭임부터, 북녘 산자락 소나무의 강건한 기상, 유유히 흐르는 구름 속 무위의 한가로움, 그리고 고요한 밤 정자에서 달을 기다리는 그윽한 마음에 이르기까지 화려하지 않은 겸손과 소박의 미학을 지녔다. 각 풍경은 덕성 함양의 내면이자 물아일체이며 천인합일의 진정한 자아를 발효시킨 신인묘합의 여정이다. 이는 티끌세상의 번뇌를 씻어내고자 했던 갈망의 표면화이다. 지초를 캐듯 불로장생을 꿈꾸며 자연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의 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무릉도원을 찾아 헤매듯 이상향을 갈망했던 내면 풍경을 은유한다. 자연과의 교감과 자아 성찰을 보여준다. 이수광의 고결한 속삭임은 원림을 통해 시대를 관조하고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한국정원문화의 뛰어난 기록이다.
한양도성의 사대문 바깥에 만든 동서남북의 못은 풍수 비보와 명당수 확보, 화재 예방 및 수구막이 기능을 한다. 연못은 물 흐름을 머무르게 하여 좋은 기운의 유출을 막는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나쁜 기운을 차단한다. 그중에서 동지는 흥인문 밖에 있는데 연꽃을 심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비고편, 「한성부」). 습지에 위치하여 잦은 범람으로 지속적 관리와 보수가 필요했다.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편에 동지 수리를 명한 기사를 읽는다.
지금 공조(工曹) 등이 적간(摘奸)한 내용을 보니, 수구문(水口門) 안의 동지(東池)가 황폐되었다 하니 수리하도록 하라. 대저 국도(國都)를 개설하는 처음에 동서남북의 못(池)을 만든 데는 반드시 그 의의가 있을 터인데, 지금 이를 절수(折受)한 자가 있다 하니, 빠짐없이 조사하여 전대로 못을 만들라(명종실록, 1546년(명종 1).
"풍수설이 비록 정론(正論)은 아니지만 서울의 산천 형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번에 민가(民家)를 철거하고 나무를 심어 다시 짓지 못하게 하고 동지(東池)를 다시 알맞게 파고 조산(造山)131) 도 수축하라고 하였더니...(명종실록, 1547년(명종 2).
이 기사가 1546년과 1547년이니 1563년생인 이수광의 시대에는 동지의 관상 가치가 매우 고조되었던 시기에 해당한다. 실버들 드리운 여름 명소로 도성 내의 ‘노닐며 경치를 즐기는 곳’인 도시의 ‘유상처’로 열린 공간이었다.
동문조도(東門祖道)는 1746년(영조 22)경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한다. 이수봉의 시대를 건너 꽤 오랫동안 동지는 오간수문 아래 청계천 변에 경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으로 떠나는 이들은 멀찌감치 동지의 경관을 감상하고 관왕묘에서 만나 석별의 정을 나눈다.
양류만지저(楊柳滿池渚) 연못가에 버드나무 가지가 가득하니
동풍초파서(東風初罷絮) 봄바람에 버들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지지양벽사(枝枝颺碧絲) 가지마다 푸른 실을 날리니
반득류앵어(絆得流鶯語) 흘러가는 꾀꼬리 소리에 비끄러매였다.
-이수광, 동지세류,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이수광은 「비우당팔영」의 첫 번째로 '동지세류'에 시선이 머문다. 동대문 밖 동지 연못가의 풍광을 시경(詩境)으로 표상한다. 직접 경영한 비우당 원림인 동원에서 바라본 정취이다. 원림과 동지 사이의 인위적 경계를 두지 않는다. 시선이 자유롭게 흘러가며 확장된 공간감을 체득하는 ‘경계 없는 시선의 미학’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연못으로 드리운 버드나무와 꾀꼬리의 소리는 시각과 청각의 즐거움을 통합한다. 꾀꼬리의 청아한 선율이 봄바람을 타고 버들가지 사이를 맴돈다. 그 버들가지가 물을 어루만진다. 고요한 연못 수면을 살포시 건드리는 순간마다 작은 동심원이 그려지며 물결이 인다. 고요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생동감을 부여하는 동중정의 원림 미학을 발견한다. 버드나무 그림자가 물속으로 스며들어 하늘거린다. 그 사이로 하늘빛이 스며들어 물과 하늘의 경계를 지운다. 물의 반사를 통해 반영(反影)은 사물의 경계를 해체한다. 전통 원림에서 버드나무는 물과 어우러져 한가로움과 운치를 더하는 정서 순화의 상징 요소로 등장한다.
북령주다음(北嶺晝多陰) 북쪽 고개는 낮에도 그늘이 많고
창염요산자(蒼髥繞山觜) 푸른 솔잎이 산마루를 두른다.
가련양동자(可憐梁棟姿) 가련하다, 동량의 자태로
독수풍상리(獨秀風霜裏) 바람과 서리 속에서 홀로 빼어나다.
-이수광, 북령소송,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산그림자 속에서 고결한 절개가 피어나는 듯한 풍경이다. 북쪽 산등성이를 따라 듬성듬성 서 있는 소나무가 산마루를 두른다. 낮에도 그늘이 드리운 북쪽 비탈의 소나무 군락에 이수광의 시선이 머문다. 홀로 바람과 서리를 견뎌온 그 모습에서 동량지재(棟梁之材)의 기품을 얻는다. 마음 깊이 공명이 인다. 세파에 굽히지 않는 지조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푸른 솔잎이 바람에 살랑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소나무의 굳건한 품성에서 외가 5세조 유관의 청렴 정신을 떠올린다.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학문에 대한 열정과 백성을 향한 마음을 올곧게 바로 세운다. 산그림자 길게 드리운다. 비우당에서 바라본 북쪽 산등성이의 소나무는 속삭인다. 빼어남은 화려함 속에서가 아니라 고독과 시련 속에서 완성된다. 몇 번을 쳐다보아도 변함없는 그 은은한 푸른 소나무의 가르침이 마음에 스며든다.
아애산상운(我愛山上雲) 나는 산 위의 구름을 사랑하여
조조상대와(朝朝相對臥) 아침마다 서로 마주하며 눕는다.
아성라어운(我性懶於雲) 이내 성정은 구름보다 느긋하니
운한불여아(雲閑不如我) 구름의 한가함이 나만 못하다.
-이수광, 타락청운,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타락청운’의 풍경에서 구름보다 깊은 한가로운 시선을 만난다. 낙타 등처럼 완만하게 솟은 낙산으로 하얀 구름이 나른하다. 온갖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고요가 흐른다. 산은 무겁고 구름은 가벼우나, 둘 다 무심하다. 이수광의 마음 풍경이 그려진다. “나는 산 위의 구름을 사랑하여 아침마다 서로 마주하며 눕는다”라는 마음이 ‘비우당 원림’ 제3경에 스민다. 구름이 산을 어루만지듯 스쳐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더 한가로운 존재는 찾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무심함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자유가 아닐까. 산 아래 골짜기에 점점이 박혀 있는 나무와 멀리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도 대화에 동참한다. “이내 성정은 구름보다 느긋하니 구름의 한가함이 나만 못하다”라는 고백이 ‘타락청운’의 풍경 전체를 감싼다. 교만이 아니라 깊은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겸손한 발견이다. 비우당 처마 밑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구름과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눈다. 구름은 산을 벗어나 더 넓은 하늘로 떠나지만, 산은 여전히 그 자리이다. 떠나가는 것과 머무는 것, 둘 다 자연의 이치 안에서 역할을 다하며 풍경의 조화를 이룬다.
낙일개연환(落日開煙鬟) 지는 해가 아차산의 안개 낀 산봉우리를 열고
의의명원수(依依明遠樹) 먼 나무가 아득하게 드러난다.
경음도야래(輕陰度野來) 가벼운 구름이 들판을 넘어오니
산작평교우(散作平橋雨) 평교 위에 비를 흩뿌린다.
-이수광, 아차모우,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석양이 아차산의 안개 낀 산봉우리를 어루만진다.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이 운무에 싸인 산 능선을 드러낸다. 나무들이 아득하여 마치 현실과 환상 사이 어디쯤 머무는 풍경을 연출한다. 가벼운 구름이 들판을 넘나들며 저 멀리 평교 위로 비가 되어 흩뿌린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황혼빛을 머금고 내려앉으며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비우당에서 바라본 이 풍경은 단순한 날씨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수광이 매일 느꼈던 변화무쌍한 주변 풍광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지는 해가 안개 낀 산봉우리를 열고 먼 나무가 아득하게 드러난다”는 시구처럼, 저녁 무렵의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원림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원경(遠景)의 경관이 포함될 때 깊은 사유를 촉발한다. 낙산과 아차산의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 사유의 조망으로 ‘마음이 멀리 닿는다’는 ‘심원(心遠)’의 미학이다. 가시권의 풍경만을 원림으로 한정하지 않고 마음으로 도달 가능한 원림 영역의 확장이다. 원림의 확장된 공간 개념은 ‘경계 없는 시선의 미학’이라는 한국정원문화의 독창성을 상정한다. 우주와 자연 전체를 자신의 정신적 거주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초월의 시도이다.
계두신우과(溪頭新雨過) 시냇가에 새 비가 지나자마자
계수장수척(溪水長數尺) 시냇물이 몇 자나 불어났다.
탁족계수중(濯足溪水中) 시냇물에 발을 담가 씻고는
환와계두석(還臥溪頭石) 다시 시냇가 바위에 눕는다.
-이수광, 전계세족,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비우당 옆을 흐르는 작은 시냇물을 찾는다. 비 내린 시냇가에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담고 앉는다. 시냇물이 소리 내며 흐른다. 새 비로 불어난 물줄기는 바위와 바위 사이를 휘돌아가며 작은 소용돌이를 그린다. 물결은 율동으로 생기를 띤다. 발을 어루만진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발끝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마음 깊이 청량하다. 소박한 몸짓으로 바위에 눕는다. ‘환와계두석(還臥溪頭石)’의 경지는 세상의 티끌과 마음의 때를 함께 씻어내는 정화의 의식이다. 계두석은 계류의 물줄기 앞머리나 중요한 전환부에 놓인 큰 바위나 돌을 의미한다. 체면의 무게와 속세의 번잡함을 맑은 물에 맡긴다. 물소리에 바람 소리가 달라붙는다. 바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음도 구름처럼 자유로워진다. 탁족은 마음을 씻는 풍류 행위이자 은일의 상징이다.
노습춘원조(露濕春園早) 이슬 젖은 이른 봄 원림에
지생향만포(芝生香滿抱) 지초 돋아 향기가 품에 가득하다.
찬래골욕경(餐來骨欲輕) 이를 먹으니 모이 가벼워지는 듯하니
하사상산로(何似商山老) 어찌 상산의 노인들과 다르겠는가
-이수광, 후포채지,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새벽이 밝아오는 비우당 뒤뜰이다. 밤사이 내린 이슬이 온 세상을 촉촉하게 적신다. 지초와 갖가지 꽃들이 향기로운 숨을 내쉰다. 밭 사이를 거닐며 지초를 캔다. 움직임은 느리고 정중하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듯하다. 한 뿌리 한 뿌리 조심스럽게 땅에서 건져 올린다. 지초의 향기가 품에 가득 차오르고[芝生香滿抱], 이를 먹으니 뼈가 가벼워지는 듯하다[餐來骨欲輕]. 얼굴에 기쁘고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어찌 상산의 노인들과 다르겠는가[何似商山老]”라는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닿는다. 나물 먹고 물 마시며 눈썹 허연 네 삼의 고사인 ‘상산사호’를 들어 은일의 일상을 자화자찬한다. 이수광에게 비우당 원림에서의 은일은 도피가 아니다. 후포채지의 고요한 아침마다 신선이 된 듯 경건해진다.
곡구유차조(谷口幽且阻) 골짜기 입구는 그윽하고도 막혔으니
도원재하허(桃源在何許) 무릉도원이 어디에 있는가?
한수협접래(閑隨蛺蝶來) 한가로이 나비 따라오니
시득화개처(始得花開處) 비로소 꽃이 핀 곳을 찾았다.
-이수광, 암동심화,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깊고 그윽한 골짜기가 입을 벌리고 있다. 골짜기 입구는 그윽하고도 막혔다[谷口幽且阻]. 막힌 듯한 입구를 바라보며 무릉도원을 떠올린다. 한 마리 나비가 날아든다. 날개를 펄럭이며 골짜기 깊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길 안내를 하듯 은은한 춤을 추며 앞서간다. 한가로이 나비를 따라나선다[閑隨蛺蝶來]. 나비가 이끄는 골짜기 안쪽에는 연분홍 꽃송이들이 온 골짜기를 뒤덮는다. 비로소 꽃이 핀 곳을 찾은[始得花開處] 기쁨의 순간이다. 유토피아는 억지로 찾아 헤매는 게 아니다. 천연의 이치에 따르는 순간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노력과 조급함을 내려놓는다. 나비의 무심한 날갯짓처럼 본래면목을 따라간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진다. 무릉도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 펼쳐진다. 이것이 ‘암동심화’의 풍광이 전하는 울림이다.
창망천우정(蒼茫天宇淨) 아득한 높은 하늘 깨끗한 밤에
정상대청영(亭上對淸影) 정자 위에서 맑은 그림자 대하였네
거주권항아(擧酒勸姮娥) 잔 들어 항아에게 권하노니
섬궁야응랭(蟾宮夜應冷) 섬궁은 밤이 되면 분명 차가울 것이다.
-이수광, 산정대월, 「비우당팔영」, 『지봉집』 제1권 / 오언절구
깊은 밤이다. 아득한 높은 하늘이 티끌 하나 없이 맑게 갠[蒼茫天宇淨] 순간을 맞이한다. 비우당을 감싸는 소나무 숲으로 밤하늘의 고요가 흐른다. 둥근 달이 천천히 떠오른다. 은빛 광채가 부드럽게 주변을 감싼다. 서봉정 위에서 맑은 달그림자를 마주한다[亭上對淸影].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은은한 서정이 마음을 적신다. 잔을 들어 달을 향해 조심스럽게 올린다[擧酒勸姮娥]. 혼자 마시는 술이지만 외롭지 않다. 밤하늘 가득한 별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홀로 있어도 차가운 밤을 응대한다. 고독하지만 천지 만물과 대화한다. ‘산정대월’의 풍광은 달그림자를 벗 삼아 나누는 몰아의 순간으로 읽는다.
이수광의 ‘비우당팔영’을 통해 비우당 원림의 원형질을 찾아보았다. 동지세류에서 산정대월까지 이어지는 여덟 풍광을 읽는다. 비우당 원림은 한양의 세속적 중심과 가까우면서도 낙산 기슭의 은밀한 천연의 원림이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깊이 있는 철학 성찰의 여정이기도 하다. 지봉의 품에 안기고 동원을 마주하며 상산의 고요한 정신을 은유한다. 이곳에서 이수광은 외부와 단절하고 내면을 탐색하며 좁은 뜰에서 천하를 상상하는 초월의 사유를 실현한다. 마침내 『지봉유설』이라는 방대한 지식의 숲을 일궈낸다. 비우당 원림은 들뢰즈(Gilles Louis René Deleuze, 1925~1995)의 표현을 빌려 표현한다면 위대한 ‘노마드(nomade)’의 거처였다. ‘경계 없는 시선의 미학’으로 확장된 공간 개념은 아차산의 저녁 비까지 품어 안는다. 반영과 경계 해체를 통한 물아일체의 경지에 든다. 그리고 동중정의 미학으로 고요함 속에서 생동하는 자연의 리듬을 포착한다. 낙산 비우당 원림의 풍광에서 한국정원문화의 깊은 성찰을 탐색하고 발견한다. 비우당의 지정학적 위치는 시대를 건너도 퇴색하지 않는다. 의경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비우당 원림은 지혜의 정원이자 사유의 지평을 펼치는 곳이다. 지리적 경계에 매몰되지 않고 우주와 인간,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루는 원림 정신의 본질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