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수서원 죽계원림
서원 공간은 크게 세 개의 골격으로 공간을 나눈다. 책 읽는 소리가 담장을 가득 메우는 강학 공간, 스승의 뜻을 기리며 옷깃을 여미는 제향 공간, 산수 자연에서 쉼과 사유를 병행하는 유식 공간이 그것이다. 유식(遊息) 공간은 단순히 노닐며 어슬렁거리는 유유자적한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학습한 지혜가 깊숙이 스며들어 삶의 철학으로 체화되는 곳이다. 산수를 거닐며 되새기고 고요한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는 성찰의 공간이다. 맑게 비워진 정신을 다시 채우는 이곳은, 세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쉼’과 ‘감성’이 조화되는 영혼의 안식처이다. 유학이 지향하는 ‘즐거운 배움’이 자연의 품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매화 꽃망울이 기필코 터지려 팽팽한 날, 훌쩍 소수서원을 찾는다. 그동안 이곳을 학업과 선현을 모시는 공간으로만 기억해 왔다. 서원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것은 쉼과 사유의 실체가 드러나는 유식 공간의 현존이다. 조선을 관통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종교, 지위와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이곳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원을 찾기 위해 오래도록 질문을 품어 왔다. 강학 공간의 엄숙함과 제향 공간의 경건함 너머의 유식 공간은 서원 정신을 온전히 체험하는 열쇠이다. 죽계의 물소리를 따라 경렴정에 오르고 취한대에서 바람을 맞으며 탁청지에 비친 하늘을 바라본다. 이런 경험과 감성은 우주와 인간이 상호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신인묘합(神人妙合)’의 경지를 추구한다. 산수 자연에서 심신을 수양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서원은 건축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산수의 기운으로 자연에서의 소박과 평온, 풍류로서의 해학과 신명의 미적 이상을 완성하는 살아있는 장소성을 지닌다.
이번 답사에서는 소수서원을 스치듯 지나지 않고 한나절 동안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로 꽤 긴 시간을 머문다. 발걸음을 늦추자 섬광처럼 스친 통찰이 ‘죽계원림(竹溪園林)’이라는 개념이다. 소나무 숲과 죽계, 경렴정과 탁청지, 취한대와 경자 바위, 그리고 광풍대 등의 경관 요소를 하나로 꿴다. 소수서원을 감싸 안은 이 풍광을 개별적 요소가 아닌 하나의 통합된 원림으로 조명한다. 비로소 소수서원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이 ‘죽계원림’이 ‘서원 조경헤리티지’의 표준이 될 만한 의미를 지니는지 유식 공간을 거닐며 찬찬히 헤아려 본다.
영주는 경상북도 북부의 관문 도시이다. 소백산맥의 동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고려시대부터 순흥부(順興府)로 불리며 영남과 호남을 잇는 교통 요충지이다. 소수서원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풍기IC를 빠져나와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죽계천변에 자리한다. 죽계는 순흥 읍내 동편에서부터 소수서원, 배점을 거쳐 초암에 이르는 시내를 부른 명칭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안향(安珦, 1243~1306)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그로 인하여 이곳은 조선 유학의 성지로 일컫는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 세워진 것은 이러저러한 근원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수서원이 자리한 죽계천(竹溪川)은 소백산 비로봉(1,439m)에서 발원하여 영주 순흥 땅을 부드럽게 휘감아 굽이치며 낙동강 수계로 흘러든다. 죽계의 물줄기는 소백산 화강암대를 깎아 만든 물길이다. 계곡 곳곳에 암반과 바위가 드러나며 그윽하고 아늑한 골짜기의 풍광을 꼽는다. 소백산 화강암대를 깎아 만든 이 물길은 곳곳에 암반과 바위가 드러나며 그윽하고 아늑한 골짜기의 풍광을 자아낸다. 소수서원이 자리한 죽계천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시문이 여럿 전한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은 “산은 경건한 빛으로 서 있고[山立祗祗色], 시내는 부지런히 힘쓰며 소리내어 흐른다[溪行亹亹聲].”며 산수가 지닌 경건한 품격을 노래했다(『무릉잡고』 권2○별집, 「경렴정」). 이황(李滉, 1501~1570)은 소백산 남쪽 옛 순흥 고을을 두고 “죽계 찬 냇물 위에 흰 구름 드리웠다[竹溪寒瀉白雲層]”라며 그윽한 운치를 더했다(『퇴계집』 권1, 「백운동서원, 시제생」). 또한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은 “푸르름이 한 줄기 시내 소리를 누른다[碧壓一溪聲]”하여 시각적 이미지가 청각을 압도하는 풍경을 선명하게 그려냈으며(『금계집』 외집 제3권, 「차경렴정」), 한 세기 뒤 이재(李栽, 1657~1730)는 “시내는 만고의 소리를 머금었다[溪含萬古聲]”라며 죽계의 물소리가 영원히 이어지는 속성을 천명하였다(『밀암집』 권1, 「소수서원 경차경렴정운」). 근대에 이르러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동유록(東遊錄」에서 “시냇물 맑아 달빛 넘실대고 고기들은 잠겨 헤엄친다[溪淸漾月魚涵泳]”라고 읊어, 맑고 평온하게 흐르는 죽계의 정취를 완성하였다(『면우집』 권4, 「동유록」).
소수서원은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뒤로는 소백산이 동남으로 뻗은 비봉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영귀봉(迎龜峰)이 주산이 되고, 앞으로는 죽계천이 흐른다. 그러나 서원이 평지에 자리 잡아 뒤쪽이 허한[背後虛] 풍수적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고자 서원 주위에 학자수림(學者樹林)이라 불리는 소나무 숲을 비보숲으로 조성한다. 이 소나무 숲은 경관 조성과 선비의 기상을 동시에 담은 조경 장치이다.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굳건한 기상을 염원한다. 울창한 학자수림을 거쳐 서원으로 들어가는 진입 동선은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하는 준비 과정이 된다.
죽계원림의 지리는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계천 유역이다. 「죽계별곡」은 고려 후기의 문신인 안축(安軸, 1287~1348)의 작품이다. 이곳을 죽령의 남쪽, 영가(永嘉, 안동)의 북쪽, 소백산 앞에 위치한다고 영역을 설정한다. 왕의 태실이 묻힌 취화봉(翠華峯)을 품은 지세의 정기 덕분에 비범한 인물의 배출과 고을의 중흥(中興)이 이루어졌다고 노래한다.1) 「죽계별곡」은 고장의 경물과 역사를 신임 수령에게 시로 아뢰던 관례에 따라 지어졌다. 고장 예찬과 애향심 고취가 기본이다. 산수를 통한 애향심 고취와 사상을 드러내는 공간 구성임을 보여준다(안축, 『근재집』 제2권, 「죽계별곡」).
죽계천을 중심으로 유교의 이념을 상징하는 죽계원림의 주요 구성 요소를 만난다. 경럼정, 취한대, 경자 바위, 광풍대, 탁영지 등이다. 경렴정(景濂亭)은 주세붕이 건립한 정자이다. 소수서원의 유식 공간 중 가장 중요한 경관 감상처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구조이다. 사방이 탁 트여 있다. 경렴정 맞은편 시냇가에는 이황이 터를 닦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어 명명한 취한대(翠寒臺)가 있다. 취한대는 「죽계구곡」을 설정할 때 제1곡으로 불린다. 죽계천 바위에는 주세붕이 새긴 붉은색 ‘경(敬)’자가 있어, 이 바위를 바라보며 공경하는 마음을 체득하고 사악한 기운을 막는다. 성리학의 핵심 덕목인 ‘경이직내 의이방외(敬以直內 義以方外)’를 ‘敬’ 한 글자로 응축한다. 『주역전의』 권2 「곤괘」에 나오는 말로 경으로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 외연을 반듯하게 한다”는 말이다. 바위 위의 흰 글씨인 ‘白雲洞’은 퇴계 이황이 추가로 새긴 글씨이다. 주세붕의 『죽계지』는 풍기군수 때 백운동 서원 설립 취지와 운영 내용을 정리한 서원지이다. 여기에 ‘경석’을 새긴 경위를 이렇게 기록한다. 길지만 보물 같은 조경헤리티지이기에 전문을 실는다.
文成公廟前。有石壁如削。欲刻敬字。書院諸友。皆以取怪世俗爲戒。且曰。當自敬於心。何必刻之於石。世鵬亦不敢強。及得晦翁與蔡季通書。然後乃開視諸友曰。先天諸圖尙可刻。獨不可以刻敬字乎。嘗謂敬者苟之反。纔苟便不敬。此固吾晦軒之所契於晦翁者。愈不可不刻。廟院雖不克久存。此刻不剝。則千載之下。稱之曰敬石。可也。諸友曰然。遂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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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文成公, 안향) 사당 앞에 깎아지른 듯한 석벽이 있어 거기에 ‘경(敬)’ 자를 새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원의 여러 벗들이 “세상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다”며 경계하였고, 또 말하기를 “마땅히 스스로 마음속으로 경을 지녀야지, 어찌 굳이 돌에다가 새길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니, 나(세붕) 또한 감히 강행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회옹(晦翁, 주희)이 채계통(蔡季通)에게 준 편지를 보고 나서야, 여러 벗들에게 그 글을 열어 보이며 말했다. “선천도(先天圖) 같은 여러 그림들도 (돌에) 새길 수 있는데, 유독 ‘경’ 자를 새기는 것만 불가하겠는가? 일찍이 주자가 이르기를 ‘경’은 구차함의 반대이니, 잠깐이라도 구차하면 곧 불경(不敬)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우리 회헌(晦軒, 안향) 선생이 회옹(주자)과 부합하는 점이니, 더욱 새기지 않을 수 없다. 사당과 서원이 비록 오래도록 보존되지 못하더라도, 이 새긴 글자가 벗겨져 떨어지지 않는다면 천 년 뒤에 이것을 일컬어 ‘경석(敬石, 경자바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하니, 벗들이 모두 “그렇다”고 하여 마침내 새기게 되었다.
-주세붕, 「경자 각석」, 『죽계지』 잡록5; 「백운동석벽각경자」, 『무릉잡고』 별집 권6, 한국고전종합DB.
돌에 새긴 한 글자가 이렇게 오래도록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닐 줄 그때는 알았을까? 조경사의 사건이고 정원문화의 철학 깊이를 좌표로 새기는 행위이다. 시간을 건너뛰는 경관 디자인의 선언이기도 하다. 『주자평전-하』에 보면, 1197년 ‘합조산’2) 석벽에 하도, 낙서, 선천도를 새겼다고 한다(수징난, 김태완역. (2016). 『주자평전』 종합편, 1037쪽). 4세기 후의 주세붕이 이를 어떻게 알았을까. 인간 내면 최고 덕목인 ‘경’자를 새기는 것을 그림인 선천도를 새기는 것과 비유하여 정당성을 확보한다. 정원을 거닐 때마다 만나는 ‘경’은 매 순간 각성하는 태도를 안긴다. 바위에 새긴 ‘경석’은 장소에 대한 존중이고 디테일에 깃든 영혼이다.
‘경석’은 죽계원림에서 단연 돋보이는 경관 요소이다. 서원 건물은 소멸하더라도 바위는 남는다는 것을 주세붕은 예견한다. 건물이 사라진 후에도 장소의 정신을 전승하는 ‘장소 기억의 매체’로서의 ‘문화 경관(cultural landscape)’이다. 서양 정원에서 조각상, 분수, 건축물 등으로 사상을 표현했다면 ‘한국정원문화’에서는 택스트와 경관이 결합한 ‘각자(刻字)’ 문화가 핵심 조경 요소로 발현된 사례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세붕은 16세기 최고의 ‘인문 조경가’임에 분명하다. 『함안 무진정 원림』의 조삼(趙參, 1473~?)과 교류하면서 1542년 건립 기념으로 「무진정기」를 작성한다. 주세붕은 이 기문에서 무진정의 위치와 풍광을 탁월한 원림관으로 묘사한다. 요즘 낙화놀이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곳의 아름다움을 “반걸음조차 움직이지 않아도[不出跬步] 온갖 경치가 모두 다 모여든다[萬像咸集]”고 평론한다(주세붕, 「무진정기」, 『무릉잡고』 권7).
“여기 새긴 글자가 벗겨지지 않는다면[此刻不剝則] 천 년 후에[千載之下], 이것을 일컬어 경석이라 부르기에 마땅하다[稱之曰敬石可也].”
일천오백사십삼년, 중종 38년에 백운동 서원이 창건된다. 지금 이천이십오년이니 사백팔십이년이 흘렀다. 주세붕이 천 년 뒤에 경석이라 해도 좋다고 하였으니, 천 년의 절반이 남은,
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건너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서도 살아 남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견뎠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격랑에서 묵묵히 정진하더니
붉은 일편단심을 드러냈다 숨기기를 여러 차례
그날,
정을 들고 바위를 두드리더니
쩡, 쩡 맑은 하늘이 먼저 울며 허공을 가르더니
한 획 한 획, 敬이 눈을 뜨고 모습을 드러낸다.
돌을 깨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천 년을 가로질러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너를
고요히 빛나는 글자 한 자를 향하여
구차하게 살지는 않았는지 무릎을 꿇고
이 순간 나는 경건하게 매무새를 다잡는다.
바위에 새긴 우주
천 년을 견디는 한 글자 앞에서
각성이라는 이름의 깨우침을 끝내 놓지 않는다.
영주 소수서원 죽계원림 경렴정 맞은편에 새겨진 ‘경(敬)’자 앞에 섰다. 1543년 주세붕이 서원의 벗들을 설득하며 “此刻不剝則 千載之下 稱之曰敬石 可也(여기 새긴 글자가 벗겨지지 않는다면 천 년 후에 이것을 일컬어 경석이라 해도 좋다)”라고 한 그 선언이 나를 응시한다. 천 년을 설계한 주세붕의 상상력에 놀란다. 바위에 새긴 한 글자가 시대를 건너 각성을 촉구하리라는 확신은 대체 무슨 근거일까. 생각할수록 압도당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도시화의 격랑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고, '경' 자는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구차하게 살지는 않았는가, 이 순간 경건한가”를 묻고 있다.
구차함을 버리는 조경헤리티지로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기구대(棄拘臺)’가 떠오른다. 기구대는 『해남 금쇄동 원림』 입구의 하휴(下休)라고 명명된 석대를 조금 지나서 나온다. 평탄한 층암이 지붕처럼 덮여 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쉴 수 있는 곳이다. 기구대에 오르면 세상 풍진과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해남 금쇄동 원림을 찾으면 꼭 기구대에서 이 풍진 세상을 바라보는 ‘일기일회’의 만남을 체득하기를 추천한다. 기구대는 속세의 구차함과 구속을 버리는[棄拘] ‘기구’의 심미의식을 상징한다. ‘기구(棄拘)’는 외부 구속과 얽매임, 내부 거리낌과 구애받음의 근원을 버리고, 경계 짓기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윤선도의 작정 의지(作庭意志)이자 실천 덕목이다. 세상의 구속(拘)을 버리고(棄)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소박한 삶은 윤선도가 평생 추구했던 이상향인 임천한흥(林泉閑興)—풍류, 해학, 신명, 자연, 소박, 평온이 함께하는 심미의식—에 도달하기 위한 ‘경’의 또다른 실천 덕목이다. 그래서 ‘경’은 지식이 아니라 일상의 실천이다.
각설하고, 경건하냐는 물음 앞에 무릎 꿇는다. 482년 동안 내내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바위를 두들겨 글짜를 새긴 이후 여기 '경석' 앞에서 매무새를 다잡는 현재는 얼마나 끝없이 길고 먼 현재진행형일까. 너는, 그날 이후, 몸과 마음을 받드는 경건함을 직조하여 새겼다. “바위에 새긴 우주 / 천 년을 견디는 한 글자” 앞에서 각성은 마땅하다. 한국정원문화에서 원림을 대하는 철학의 핵심이 ‘경’이다. ‘경석’은 물질 경관 요소(바위)가 비물질 가치(경의 철학)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주세붕이 천 년을 내다보았듯이 482년을 건너온 ‘경석’이 앞으로 518년을 더 건너가며 변함없이 각성을 요구한다. 그러니 한국정원문화는 천 년을 설계하는 예술이다. 정원을 읊은 시는 천 년의 시간을 현재형으로 번역하는 언어이다.
‘경’자바위에 눈길이 먼저 꽂힌다. 천 년의 붉은색 ‘敬’자는 주세붕이 『신재집』에서 직접 써서 새겼다고 기록한다. 위에 백색으로 ‘白雲洞’ 세 글자는 이황의 글씨이다. 취한대를 명명하면서 ‘경’자 위에 서원의 옛 이름인 ‘백운동’을 새겼다. 백운동은 주희(朱熹, 1130~1200)의 백록동서원을 본받아 지은 이름으로,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신선의 골짜기인 동천을 뜻한다. 바위는 표지석이 아니라 짧은 글 명문의 철학이다.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는 양과 음, 역동과 정적의 조화를 표현한다. ‘경’과 ‘백운동’은 늘 죽계의 물소리로 깨고 눕는다. 가끔 물에 비친 바위의 그림자를 보며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따지곤 한다.
취한대에 다가선다. 취한대의 ‘翠(취)’는 푸른빛, ‘寒(한)’은 차갑고 맑은 기운이다. ‘臺(대)’는 높은 누대를 뜻한다. 이황이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는다. 취한대를 두른 푸른 숲은 마음을 맑게 하고 유유자적의 경지로 이끈다. 취한대 정자 마루에 앉으면 발아래로 죽계천이 흐르고, 건너편으로 소수서원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이는 이러한 적당한 거리를 둔 조망 경관이 압권이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잠시나마 떨어져서 관조하는 기막힌 공간 설계 원리를 엿본다. 최고선을 추구하는 효율을 지닌 학습 방법이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의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특히 여름날 더위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翠寒’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온몸으로 실감한다.
취한대는 단순히 서원 앞을 흐르는 물가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은 죽계원림이 소백산 깊은 골짜기로 확장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 때 순흥부사 신필하는 죽계 상류 초암사에서부터 내려오는 내림식 구곡을 설정했으나, 지역의 읍지인 『순흥지』는 이곳 취한대를 제1곡으로 삼아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오름식 ‘죽계구곡(竹溪九曲)’을 정의한다.3) 취한대에서 시작하여 금성반석, 백자담을 지나 상류의 이화동, 목욕담, 금당반석에 이르기까지, 죽계원림은 담장 안에 갇히지 않고 아홉 굽이 물길을 따라 소백산의 품으로 아득하게 뻗어 나간다. 취한대 마루에 걸터앉아 눈앞의 물길이 저 멀리 굽이쳐 흐르는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상상하며 호연지기를 길렀으리라.
취한대에서 죽계 너머 은행나무와 경렴정은 서로 두 사람이 마주 대하는 안대(案對)의 배치이다. 경렴정의 ‘景(경)’은 경치를 우러러본다는 뜻이고, ‘濂(렴)’은 주희의 스승인 염계(濂溪) 주돈이를 말한다. 따라서 경렴정은 염계 선생의 학문을 우러러보는 정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주세붕이 1543년 백운동서원을 창건하면서 서원 입구 동쪽 절벽 위에 세웠다. 이곳은 공부하며 산수를 벗 삼아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이다. 경렴정은 물을 관찰하며 도를 깨닫는[觀水悟道] ‘관수오도’의 공간이다. 맹자는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觀水有術] 반드시 그 물결(여울목)을 봐야 한다[ 必觀其瀾]”라고 말한다. 이는 흐르는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가득 채운 뒤에야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성질[盈科後進]인 ‘영과후진’과 관련된다. 학문과 수양도 건너뛰지 않고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야 도달한다. 경렴정의 마루는 죽계천보다 약 3미터 높은 곳에 위치한다. 물의 흐름을 조감도 시점으로 관찰한다. 물이 경자바위에 부딪쳐 포말을 일으키는 모습이나 소(沼)에 고여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는 모습을 본다.
이황이 아끼던 제자인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은 경렴정의 맑고 깨끗한 지세와 고고함을 “찬 기운이 여러 산뜻한 빛을 나르고[寒輸衆峭色], 푸르름이 한 줄기 시냇물 소리를 누른다[碧壓一溪聲].”라고 죽계에 빗대어 드러낸다. 그러면서 풍월이 가없이 흥취를 자아내는데, “천지에 작은 정자 하나 있다[乾坤一小亭].”며 경렴정의 단순 소박한 풍채를 묘사한다(『금계집』 외집 제3권, 「차경렴정」).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은 경렴정의 호방한 기운과 가을의 정취를 “밤에 기대니 호방한 기운이 나고[夜憑生浩氣], 맑은 물에 정자 그림자가 비친다[淸潭影幔亭].”라고 표현한다(『송암집』 속집 제2권, 「경렴정」). 이재(李栽, 1657~1730)는 세월의 흐름 속에 빛이 바랜 경렴정을 시로 남긴다. “대에는 세 계절의 색이 늙어 있고[臺老三春色], 죽계는 만고의 소리를 머금는다[溪含萬古聲].”라며(『밀암집』 권1, 「소수서원 경차경렴정운」), 경치가 옛 모습 그대로인 ‘산천의구(山川依舊)’의 풍광을 사색한다.
소수서원 공간에는 곳곳에 성리학 이념을 구현하는 조경헤리티지가 존재하지만, 그 규모가 제법 큰 연못 공간인 탁청지(濯淸池)를 빼놓을 수 없다. 탁청지는 ‘맑은 물에 씻어 스스로 깨끗해지는 연못’이라는 의미이다. 탁청은 ‘탁영탁족(濯纓濯足)’에서 따온 말로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고고한 삶을 의미한다. 탁청지에는 주돈이의 「애련설」이 깔려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왔으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특성을 지녔다. 연꽃을 심고 바라보며 「애련설」의 군자의 경지를 모방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 세포인 ‘거울뉴런’으로 공부의 대상을 탐구한다. 탁청지는 유네스코 등록 서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모범이 되는 연못이다. 꽃이 진 연꽃의 줄기와 연밥을 보면서 진흙탕의 일상에서 일정 부분 멀어져 나온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새롭지는 않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며 동시에 진흙에 물들지 않게끔 다독이는 한국정원문화콘텐츠 개발에 가일층 즐거움을 부여한다.
이전 사찰 숙수사의 연지(蓮池) 유적으로 보이는 탁청지의 조성 기록은 『국역 재향지』에 잘 드러난다. 1614년(광해군 6) 풍기군수 이준(李埈, 1560~1635)이 조성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준은 탁청지를 만들고 다음의 시를 남긴다.
화진파타작옥연(化盡坡陀作玉淵), 비탈진 언덕을 다듬어 맑은 연못 만드니
좌래유취전유연(坐來幽趣轉悠然), 앉아서 느끼는 그윽한 정취 절로 인다.
도함허백삼경월(倒涵虛白三更月), 물 속에는 한밤중의 달이 잠겨 빛나고
절파공청일말연(截破空靑一抹烟), 공중에는 흰 이내 비껴 날린다.
봉도기수방외지(蓬島豈須方外地), 봉래가 어찌 세상 밖에만 있으랴
죽계환유동중천(竹溪還有洞中天), 죽계가 도리어 신선계이다.
욕지과육공하자(欲知果育功何自), 선비를 기르는 일 어떻게 할까
방촉종금소왕현(芳躅從今泝往賢), 아름다운 자취 옛 현인 따른다.
-이준, 「탁청지」, 『재향지』 순흥지 학교, 한국고전종합DB
탁청지를 “험한 비탈을 다듬어 만든 맑은 연못[玉淵]”인 ‘옥연’이라고 했다. 그 위에 앉으니 그윽한 멋이 절로 일어나며, 이곳이 속세 밖의 봉래도가 아니라 죽계에 있는 신선계라고 찬탄한다. “그윽한 멋 절로 이네[幽趣轉悠然]”라며 경관의 심미성을 높게 표현한다. 그는 물속에 달빛이 잠기고 공중에 흰 이내가 비껴가며 날리는 경치를 묘사한다. 신선이 즐기는 탁청지에 ‘앙고대(仰高臺)’를 만든다. 앙고대는 지락재 동쪽에 있으며 대 위에 잣나무가 서 있고 탁청지는 앙고대 아래에 있다. 앙고는 ‘고산앙지(高山仰止)’에서 따온 말로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학문과 덕행을 사모한다는 뜻이다. 그 앙고대의 위치를 재현 복원하면 근사하겠다. 지락재와 탁청지 사이 담장 아래 앙고대를 복원할 당위를 제언한다.
죽계원림에서 비교적 뒷짐 지듯 물러나 높은 돈대에서 원림과 탁청지를 내려다보는 곳이 광풍대이다. 광풍정은 광풍대에 해당하는 높은 누대에 아예 정자를 하나 올려서 대와 정자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게끔 구체성을 부여한다. 이황은 이곳을 광풍대라 명명한다. “취한대 북쪽 1백 보 쯤 되는 시냇가에 푸른 절벽이 8~9길 우뚝하게 서 있는 곳”이다(『국역 재향지』, 94쪽). 광풍(光風)이라는 명칭은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유래한다. 광풍제월은 ‘비가 갠 뒤의 화창한 바람과 구름이 걷힌 뒤의 달’을 의미한다. 인품이 매우 훌륭하다는 뜻을 담는다. 중국 북송대의 학자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주돈이의 인품을 칭찬하며 “속이 시원스러워 비가 갠 뒤의 화창한 바람이나 비 그친 뒤의 달과 같다”고 한 데서 비롯한다. 주희 역시 주돈이를 광풍제월에 비유한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 광풍제월을 최고의 인품으로 여겨 정자 이름으로 즐겨 사용한다. 『담양 소쇄원 원림』의 ‘광풍각’과 ‘제월당’도 그러하다. 소수서원의 광풍정은 경렴정과 짝을 이루며 죽계원림을 주돈이의 인품이 스며든 장소성으로 치환한다. 광풍정은 소수박물관으로 가는 길목 죽계 언덕에 최근에 세워져 제월교와 함께 죽계원림 경관을 풍요롭게 한다. 이곳에 올라 산수 자연의 맑고 드높은 기운을 통해 세속의 번뇌를 씻고 심성을 수양한다.
죽계원림을 미음완보하다 취한대에서 경렴정으로 향하는 보의 건널목에서 위로 조망하는 순간 웅장한 규모의 산수가 펼쳐진다. 멀리 원경으로 소백산의 봉우리를 굽어보고 가까이에는 백운교가 구역을 설정한 듯 감싼다. 그 사이에 놓여진 경물로 취한대와 경자바위, 은행나무와 경렴정의 모습이 숨은 듯 뽐내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러나지도 않으면서 내달리지도 않는다. 탁청지의 연꽃향이 바람에 실려온다.
이처럼 죽계원림은 죽계천을 따라 펼쳐지는 수많은 산수 자연 요소를 포함한다. 죽계원림과 관련하여 「죽계구곡」의 구곡원림을 따라 경관 영역을 살핀다. 죽계구곡은 조선 영조 대에 순흥부사를 지낸 신필하(申弼夏)가 죽계의 명소 아홉 굽이를 계곡의 상류인 초암사 금당반석에서 제1곡을 시작하여 시내를 따라 하류인 배점에서 제9곡을 새기는 내림식 구곡이다. 그러나 『순흥지』에서는 무이구곡의 설정을 따라 동구(洞口, 하류/입구)에서 시작하여 거슬러 올라가 계곡 마지막(원두)까지 가는 오름식 구곡으로 재명명한다. 『순흥지』에서 새로 설정한 오름식 죽계구곡의 아홉 명소는 1곡-백운동 취한대, 2곡-금성반석, 3곡-백자담, 4곡-이화동[9곡], 5곡-목욕담[6곡], 6곡-청련동애[5곡], 7곡-용추[4곡], 8곡-금당반석[1곡], 9곡-중봉 합류(원두)로 이어진다.
죽계원림은 산수 자연에 당대의 풍류 생활상까지 담고 있는 복합 경관이다. 봄에는 읊조리고 여름에는 연주하는 춘송하현(春誦夏絃)의 문화 경관을 지녔다. 「죽계별곡」에서는 붉은 살구꽃과 향풀이 무성한 봄, 녹음 짙은 여름, 황국과 단풍이 수놓은 가을, 그리고 눈 덮인 겨울의 계절에 맞춰 학문을 닦는 조화로운 장소성을 지녔다. 죽계원림은 이러한 아름다운 즐거움을 길이 즐기자고 권유하는 풍류 요소를 내포한다.
죽계원림에서의 풍류와 자연의 소박한 평온에 도달하기 위한 ‘경’의 실천 덕목을 경관 미학의 일상으로 읽는다. ‘경’의 철학이 경관의 미학으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살핀다. 인위의 기교 없이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경관 미학으로 ‘자연미’를 들 수 있다.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죽계천의 차가운 물과 그 위에 드리운 흰구름의 경관을 이황이 표현한다. 주세붕은 산의 경건한 빛의 존재감을 ‘祗祗(지지)’로, 물의 끊임없는 흐름을 ‘亹亹(미미)’로 대비시켜 자연의 음양 조화를 표현한다. 눈으로 보이는 푸르름[碧]이 귀로 듣는 시내 소리를 압도한다고 웅장한 자연미를 강조한다. 특히 이준은 자연 지형인 비탈을 이용하여 맑은 연못인 탁청지와 앙고대를 조성하는 자연 순응의 경관 미학을 실현한다.
경관을 형성하여 은거의 정취를 내는 데는 ‘소박미’ 만한 것이 없다. 이익(李瀷, 1579~1624)은백운동서원을 방문한 기록에서 경렴정 아래 물 건너에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흙을 쌓아서 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의 취한대는 정자로 아래로 내려가 있지만, 경자바위 위에 취한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줄지어 죽 심어진 한 아름 남짓 되는 소나무는 모두 이황 선생이 손수 기른 것이고, 바위위에 새긴 백운동 글자도 마찬가지라고 소박한 경관을 칭송한다. 화려하고 요란한 조경 디자인이 아니라 직접 심고, 글씨를 새기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소박한 정원의 경관 미학을 완성한다. 취한대는 본래 소박한 정원 미학의 상징이다.
고요한 가운데 경관을 관조하며 내면의 안정을 찾고 수양과 사색이 잠기는 경관 미학으로 ‘평온미’를 읽는다. 죽계원림의 달빛 경관의 고요함이 두드러진다. 이준은 깊은 밤 물에 잠긴 달과 피어오르는 이내를 통해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서 느끼는 정신의 충만을 표현한다. 권호문 또한 맑은 못에 정자 그림자가 비치는 경관에서 흐트러짐 없는 고요한 수양의 자세를 보인다. 안정구(安廷球, 1803~1863)는 경자바위가 주는 엄숙함이 내면의 경건함과 평온함으로 이어지는 심미적 체험을 서술한다.
산수 자연에서 시와 음악을 나누며 벗과 교류하는 정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고상한 멋인 ‘풍류미’의 경관 표현을 읽는다. 안축은 「죽계별곡」에서 산수 자연에서 글을 읽고 거문고를 타며 학문과 예술을 동시에 즐기는 풍류 생활을 노래한다. 봄에는 읊조리고 여름에는 연주하는[春誦夏絃] ‘춘송하현’의 풍류이다. 권호문은 취한대를 시로 창작하면서 대나무 그림자와 달빛, 소나무 그늘과 차 끓이는 연기를 연결한다. 시각과 미각이 어우러진 고상한 정취인 풍류의 경관 미학을 표현한다.
서원의 엄숙한 경관에서도 안축은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깬[半醉半醒] ‘반취반성’의 취흥에 몸을 맡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여유를 엿볼 수 있는 경관의 ‘해학미’라고 읽는다. 주세붕은 “석벽에 백운동 이름 새기니[磨崖題刻白雲名] 밝은 날 흰 구름이 하얀 바위서 나온다[白日白雲生白石]. 태수가 백운을 아껴 자주 찾으니[太守頻來愛白雲] 머리는 눈처럼 하얗고 눈빛은 쪽빛처럼 푸르다[白頭如雪眼藍碧].”라고 ‘白(백)’자를 반복 사용한다. 밝은 해, 흰 구름, 흰 바위, 하얀 머리를 연결시켜 해학적 경관 표현을 만든다. 자신의 늙음을 흰 구름에 빗대어 재미있게 표현한 해학의 경관 미학이다.
죽계원림이 주는 압도적인 기운이나 호방한 기개와 역동의 에너지를 담은 ‘신명’의 경관 미학을 읽는다. 권호문은 “밤에 정자에 기대니 호방한 기운 일고[夜憑生浩氣]”라고 경렴정을 노래한다. 밤의 정취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천지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인 호연지기가 솟구치는 신명의 상태를 경관 표현에 담는다. 안축은 죽계원림 주변 산세의 형상을 날아오는 봉황과 서린 용에 비유한다. 푸른 산 소나무 언덕을 생동감 넘치는 역동의 이미지로 전환하여 신명의 경관을 묘사한다. 영귀봉을 읊은 시에서는 “거북이 엎드린 듯한 산머리[靈龜形勢縮山頭], 그 아래 깊은 냇물 백 척의 누각[下有深溪百尺樓]”이라고 표현한다. 영물을 가져와서 장소의 신령스러움을 표현한다.
영주 소수서원의 경관 미학을 시문을 통해 자연미, 소박미, 평온미, 풍류미, 해학미, 신명미로 다층 경관 표현의 심미의식을 담았다. 이를 통하여 죽계원림을 향유하는 키워드로 삼는다.
지금까지 서원의 공간 해석에서 부수적으로 다루던 ‘유식 공간’을 재정의한다. 이런 시도는 건축을 감싸는 독자적인 ‘원림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이다. 서원 정신의 본질을 완성하는 통합된 원림 영역으로 독립시켜 새롭게 조망할 수 있음을 함의로 삼는다. 이곳 죽계원림은 서원의 부속물이 아닌 독자적인 실존체이다. 기존의 제향이나 강학 중심의 행사와는 별개로, 원림 그 자체를 향유하고 해석하는 독립적인 정원문화콘텐츠가 전개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원림 감상에 머무는 행태를 넘어 조경가의 고유한 비평 영역을 확보하는 일이다. 원림 공간에 깃든 철학을 읽어내는 전문가의 평론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조경헤리티지는 서원뿐만 아니라 향교, 사찰, 구곡, 팔경, 산성, 읍성에 이르기까지 기존 문화유산 체계의 하위 요소로 정착되면 곤란하다. 국토 곳곳에 숨 쉬고 있는 문화유산에서 ‘조경헤리티지’라는 층위를 별도로 분리한다. 재분류가 아니다. 한국정원문화의 본질을 새롭게 구성하고 집필하여 미래 세대에게 전할 새로운 문화유산의 지평을 여는 작업이다. 이것은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며, 앞으로 새롭게 집필하고 개발해야 할 무한한 콘텐츠의 광맥(鑛脈)이 펼쳐있음을 의미한다. 어쩔 것인가.
1) 정무룡. (2007). 죽계별곡 새로 읽기. 한민족어문학, 50, 217–262.
2) 합조선(閤皂山, 閣皂山, Gé Zào Shān)은 중국 강서(江西)성 의춘(宜春)시, 장수(樟樹)시 동남부에 위치한 도교 명산으로, 표준 한자 표기는 '閣皂山'이다. '閤'은 '閣'의 변형이나 오기일 수 있으나, 역사적·지리적 기록상 '閣'이 정식이다. 산맥은 약 100km에 걸쳐 펼쳐지며, 주봉 영운봉(凌雲峰)의 해발은 800m 정도입니다. 도교 영보파의 조산이자 제36동천복지로 유명하며, 송대 도사 감숙회가 석벽에 하도·낙서·선천도를 새긴 장소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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