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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Feb 16. 2017

오리나무 네 번

손목의 스냅으로 십리 길을 걷다.

쏟아내는 별로 참호는 추위를 잊게 했으나 잠시 눈을 뜨니 입이 메말라 아득한 태초의 언어로 밤새 방언을 일삼은 게다. 입이 쩍마른다. 이제 혼절에서 깨어나고 있다. 따뜻한 차로 마른 몸에 시들지 마라고 벌컥이듯 우기로 돌입한다. 밤새 쥐어짜듯 빠져 나간 건 칠흑같은 해저의 물살같은 몸살. 손목에 스냅을 넣어서 숙우를 털어내듯 우린다. 십리 길을 두 번은 지났을 시간이고, 오리나무를 네 번은 만났을 지점이다. 들판 가장자리 신작로로 쌍전봇대를 왕복하여 네 번은 짚어 냈을 달리기다. 이쯤하여 찻잔에 따라내는 찻물 소리가 여름 폭포 소리만큼 커진 것을 보니 말라 터지러던 갈라진 몸에 마중물이 터졌나보다. 그제야 꽃이 스르륵 피는 고요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황차에게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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