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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Mar 10. 2017

절로 피는 꽃

바람결의 훈기에 쏘이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생각을 펼친다. 금요일 아침이다. 통과 의례처럼 겪는 일들이 많다. 고스란히 받아 들이기를 의례라고 여긴다. 이조차 스트레스였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자연스러워지기까지 묵은 시간들이 필요했던 거다. 오늘 환영회에 들렸다가 동기 모임인 홍천으로 향한다. 다행 두 개의 일정을 소화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아침마다 문을 열면 꽃에게 발걸음을 앗긴다. 저절로 그 앞에 서서 살핀다. 사랑은 살피는 것이고 그래서 돌보는 것이라고, 조경이라는 것이 종국적으로는 살피고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과 조경을 동일선상에 두고 말했다. 전혀 다르지 않은 합리적 발상이다. 꽃은 절로 핀다. 지난주에 단풍나무 수형을 라운드형으로 교정하는 기본 골격 전정을 하였다. 오늘은 백송의 가지치기를 할 참이다. 차를 마시느라 자꾸 늦어진다. 보이숙차의 검정 눈망을 앞에서 놓이면 마음이 약해진다. 저 진한 눈망을이 나를 닮은 적당한 홍채로 바뀔 때까지 나의 바다는 젖어있다. 까만 외현 안에 흥미진진한 홍채가 번득이지만 실제로 그 색감을 띠기에 아직 나의 바다는 낯설다. 더 축이고 출렁거려야 보이차는 제 색감을 보일테다. 차호에 잠깐 묵히는 데도 진하다. 차의 양이 많았던 것이다. 여전히 입안은 화하다. 환하다. 좋은 차는 약리로 신호한다. 그냥 즐기기에도 황홀한데, 이건 꼼짝없이 붙잡힌다. 음차에 드는 동안 바람결 하나 스치지 않는다. 절로 꽃이 피듯 절로 바람결이 스쳐야 하는데, 고스란히 막혔다. 그럼 어쩌랴. 허구의 세상을 열어 놓고 그안에서 가타부타를 논하는 동안 내가 나였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의 세포를 열어준다. 몽우리져 뭉쳤던 근육이 풀린다. 차는 생각의 발기를 돕는다. 분명 세계의 문을 지녔다. 또 다른 세계의 저절로를 가졌다. 꽃처럼, 차처럼 세계가 뚜렷하되, 없는 듯 절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내 안의 바다가 온통 출령여서야 조금 알게 된다. 절로 스치는 바람결을 만나려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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