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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Nov 20. 2022

잘츠부르크 첫날, 한인 민박집에서 도망쳤다

계획형 J에게 이런 일이 닥치다니..

첼암제를 뒤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잘츠부르크행 기차를 탔다. 첼암제에서 잘츠부르크까지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관광지답게 중앙역에 내리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스트리아에 머문 지 일주일이 거의 다 되어가서 그런지 낯선 도시임에도 나의 행동엔 이전보다 훨씬 여유가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교통 카드를 구매해 예약한 한인민박까지 콧노래를 부르며 도착했다. 



도착하니 1층엔 한인 식당이 있고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야외석에 차를 내어주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십여 분 정도 민박 매니저를 기다리는 동안 한인 식당에는 꽤 여러 명의 현지인들이 오고 갔다. 장사가 잘 되나 보군. K푸드의 위력인가? 하고 잡생각을 하던 중, 매니저가 와서 체크인을 해주겠다며 나를 2층 민박집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어 무거운 짐을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다.


안내를 받고 여자 도미토리 방에 짐을 풀고 나는 멘붕에 빠져버렸다. 전등은 반이 나가 있고 바닥과 화장실은 청소를 한 건지만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심지어 나는 그날 생리 중이었는데 화장실과 방엔 휴지통조차 없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현관문 열쇠는 발매트 밑에 다가 보관하고 다니라니.. 이런 위생관념이 없는 곳에 나의 몸을 4일 동안 뉘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누군가 미라벨 궁전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는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았다. 일단 이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 가자.




그렇게 나는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새로운 한국 사람을 여행지에서 만났다. 독일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분이었다. 숙소 때문에 멘붕 온 나를 정신 차리게 할 만큼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만나서 통성명을 하고 오늘 왜 이 공연을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으며 공연을 관람했다. 나의 숙소 상황과 민박집의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니 다른 데 묵는 게 어떻겠냐며, 에어비앤비에도 좋은 곳을 많으니 찾아보라며 권유했다. 


그렇게 공연 1부가 끝나고 2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한국인 여성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에 오는 사람들은 취향이 다들 비슷하다며 우리 셋은 감탄했고, 우리는 내일도 같이 만나 여행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물론 나는 숙소를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말이다. 민박집에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 우연히 좋은 분들을 만나서 즐겁게 공연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번 여행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도 생겼구나.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임을 다행이라 여겼고, 침착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안도했다.


그렇게 잘츠부르크에서의 첫날밤은 일 분도 있기 싫은 그 민박집에서 끔찍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저녁 10시 반쯤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이불은 빨았을까? 하는 잡생각에 잠이 계속 오지 않았다. 그렇게 12시가 지나서도 잠이 안 왔는데, 아까부터 부엌에서 남자분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래 여행 온 사람들끼리 친해져서 이야기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에 참고 자려고 했으나, 1시가 지나서도 계속 떠드는 소리가 가라앉질 않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미안하지만 잠 좀 자자고 이야기했다.


아.. 진짜 최악의 숙소다. 그렇게 뒤척이다 3시에 잠들고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바로 짐을 챙겨 민박집을 나와버렸다. 해도 안 뜬 그 새벽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아름다운 잘츠부르크 도심을 지나 새로 예약한 호텔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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