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운 오스트리아 여행
아침 조깅을 하고 배가 고파 슈니첼로 점심을 먹어보기로 했다. 비엔나 맛집이라는 피그뮐러를 예약까지 했는데 여차저차 타이밍이 맞지 않아 취소하고 슈니첼을 먹지 못 했었다. 사실 이전에 빈에 왔을 때 먹어 본 슈니첼이 별로였기 때문에 큰 욕심도 없었다. 그러다 첼암제 레스토랑에서 슈니첼과 리슬링 와인을 먹게 되었는데..
돈가스에 딸기잼이 어울린다고? 슈니첼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질색할지도 모를 일이다. 짭조름한 얇은 튀김옷의 돼지고기와 단단하면서도 폭신한 감자, 그리고 달달한 딸기잼의 조화. 거기에다가 산뜻하고 상쾌한 리슬링 와인까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로 누구나 맛있어하는 조합을 찾은 것을 보면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참 독창적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빈 예술사의 분리파처럼 흘러오는 시대의 예술을 거슬러서 새로운 도전을 하듯이. 물론 분리파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슈니첼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이것만은 차이점이 있겠다.
첼암제 슈니첼 맛집
Restaurant Steinerwirt
+43 6542 72502
https://maps.app.goo.gl/yUQaU1FBdMETyLZk8?g_st=ic
비엔나에서 느낀 예술사를 생각하며 진짜 너무나 맛있는 슈니첼을 먹음에 감탄했다. 첼암제에서 맛있게 먹으려고 지금까지 못 먹었던 건가 할 정도로 순식간에 식사를 마쳤다. 레스토랑 인테리어도 맘에 들었고 조용한 분위기가 음식을 먹는데 집중하게 해 줘서 인상적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키츠슈타인호른에 가기 위해 660번 버스를 타러 갔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해가 쨍쨍해 다행히 알프스 산맥이 잘 보일 것 같았다. (미리 웹캠 라이브로 봤을 때도 날씨는 좋았다.) 660번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 나온다. 케이블카 시작 지점은 아래 위치이다.
Gletscherjet
+43 6547 8700
https://maps.app.goo.gl/f4hF3aDQbhWNseva7?g_st=ic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보다 렌터카를 빌려 스키장비와 함께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번째 케이블카를 탔는데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다. 10여분 정도 지나서 첫 번째 지점에 내렸다. 눈은 없지만 높이 올라와 작은 마을들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 다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키츠슈타인호른까지 가는데 꽤 무서울 것 같다. 케이블카 속도도 빠르고 고지대니..
두 번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이제부턴 눈이 보인다. 꼬맹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스키를 타는 모습을 보니 나도 스키를 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썰매라도.. 아쉽게도 나는 스키 실력이 형편없어서 타지는 못 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배워서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꼬맹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현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니 확연히 다른 온도 차가 콧 속까지 느껴졌다. 동굴 같은 길을 약 8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뷰 포인트가 나오는데 도착해 유리문 바깥으로 나간 순간, 나도 모르데 절로 탄성이 나와버렸다.
와..
알프스 산맥의 차가운 온도는 속눈썹부터 시리게 했다. 찬 바람으로 차가워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으니 키츠슈타인호른의 온도를 피부로도 느낄 수 있었다. 둘러보는 내내 감탄사만이 나왔고 여기에 도착한 몇 안 되는 관광객들도 나와 같이 감탄사와 그저 광활한 풍경을 눈과 사진기에 담기 바빴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빈에서 들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은 웅장함과 극적인 요소가 많은데 꼭 이런 대자연을 마주한 느낌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하고 드넓은 만년설을 보며 혼자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감탄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 할아버지가 힘들게 셀카를 찍고 계시길래 도와드릴까요? 하고 먼저 물어보니, 방긋 웃으시더니 예스! 예스! 하신다. 대자연의 장엄한 위협과 위대함 속에서도 인간은 이렇게 순수한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나 너무 추워서 내려가기 위해 보니, 오후 3시까지가 정상 케이블카의 마지막 탑승 시간이다. 나는 운 좋게? 두시 반에 케이블카를 탑승해 내려갔다. 가는 동안은 올라오는 케이블카와 다르게 스키를 들고 타는 젊은 외국인 청년들과 함께 탔는데, 모르는 독일어지만 대충 들어보니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로 보였다. 한 청년이 이런 얘길 하는 것 같았다.
“난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혈통이 다 섞였어.”
융합의 시대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면서 낮에 먹은 부조화스러운 비주얼이지만 맛만큼은 맛있는 슈니첼이 떠올랐다. 한 가지에 몰두하기보단 여러 방법들을 계속해서 시도해보며 나만의 조합을 찾아가 보자는 생각. 나만의 슈니첼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이번 휴가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것도.
https://youtu.be/FZdtGlFrK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