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손화신의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글감을 적어놓은 메모지를 치워버렸다는 대목이었다. 물론 미루지 않고 지금 쓰기 위해서 내린 처방이었다. 이때 저자가 인용한 인터뷰 한 대목이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다.
“당시에 느낀 것을 바로 표현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서 표현한다면 그건 그때 당시를 카피하여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신선한 재료로.”(넬 인터뷰)
그동안 나는 오지게 카피했구나, 그때 그 시절을. 이 브런치를 만들면서 쓰려 했던 것도 예전 그때의 이야기들인데 시작부터 글렀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도 '나중'을 기약하며 온갖 메모를 한다. 대부분은 구글 킵에 저장해놓고 글감은 생각나는 대로 브런치에 제목이라도 입력해두는 편이다. 그렇게 저장해둔 제목만 있는 글, 쓰다 만 글, 거의 완성되었지만 발행하려고 보니 어라 애매하네 싶어 냅둔 글이 98개나 되었다(스크롤의 압박을 뚫고 세어봤습니다....). 쓰고 싶은 것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다가도 (아직은) 쓰지 못한 것을 보면 그리 쓰고 싶은 건 아닌가 보다 싶기도 하다.
글을 완성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붙일 살이 없다. 인풋과 감성의 절대적 빈곤 시기를 지나고 있다. 예전처럼 읽지 않고, 보지 않고, 만나지 않는다. 마음 속 웅덩이에 물결 일 일이 별로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쓰면서, 쓰고 있는 글이, 당췌 만족스럽지가 않다. 누가 보면 공모전이나 문예전 준비하는 줄. 결국은 적당한 양을 채워 마무리하면서 말이다.
글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없는 것은 무엇보다 글쓰기가 일종의 숙제가 되어버려서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에 들어와 화장도 지우지 않고 싸이월드 일기를 쓰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떠오른 생각과 상념을 글로 토해버리지 않고서는 하루가 맺어지지 않던 때는 글이 나를 끌고 가서 어딘가로 놓아주었다. 지금은 '제주도 씩이나 와서 기록해놔야지 아니면 다 잊어버릴 텐데' 하는 이상한 책임감 말고 나를 끌어주는 것이 없다. 눈부신 햇살과 해변을 보면서 글을 쓸 바에는 그 안으로 뛰어드는 삶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 변명이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미루지 않고 당장 쓰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글감을 적지 않을 수도 없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어쩌면 다른 글감과 만나고 섞이고 변주되어 더 멋진 글이 될지도 모르니까(변명도 가지가지). 다만 제주의 숲과 바다를 누비다 발목과 뒤통수를 붙잡는 게 있으면 그때를 과거로 만들어 카피하지 말고 지금을 쓰겠다고.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글은 언제까지고 없을테니 그냥 지금의 감응, 감탄, 찬탄 혹은 살아가기의 괴로움과 나이듦, 작은 깨달음을 적겠노라고. 우리 삶처럼 글로 결론 내려 하지 말자고, 미완이어도 괜찮다고. 저장글 개수를 하나라도 줄여보려고, 이런 글감까지 지난날을 카피하기는 싫어서, 부리나케 써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