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이라는 감옥, 엄마라는 고행

by 활보

아이를 키우며 가장 가슴 철렁하는 순간은 무심코 만진 아이의 손이나 등이 뜨끈할 때다. 체온계를 가져와 귓구멍에 찔러 넣고 숫자가 뜨기 전 2초 정도, 제발 아니길 삼신할망께 기도한다. 하지만 10년간 키운 손과 감은 제법 쓸 만해서 틀리는 법이 없다. 이번에도 고열의 시작이었다.


자주 열치레를 하는 아이지만 초등학생이 되더니 이틀 정도면 말끔히 열이 내리고 기침이나 다른 증상도 없었다. 코로나는 하루, A형 독감은 이틀이면 됐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틀이 지나도 열이 잡히지 않아 병원엘 갔다. B형 독감이었다.


간호하던 나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미천한 면역으로는 역부족. 열 끓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병원도 못 가고 링거도 약도 없이 타이레놀로 버텼다. 회사에는 아이 돌봄으로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마감인 까닭에 업무를 보면서 아이를 돌봤다. 끼니를 챙기고 각종 요구를 들어주며 업무를 하고, 밤에는 물수건을 해주고 다리를 주물러주느라 거의 비몽사몽이었다.


남편은 회사에 있는 시간, 가까이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쌍화차, 죽, 열이 내린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타코야끼를 사다 달라 부탁했다.

"언냐, 그냥 배달시키면 안 돼?"

"쌍화차는 배달이 안 되니까 그렇지. 암튼, 알겠어."


K장녀라는 지독한 병에 걸린 나는 어지간하면 혹은 무리를 해서라도 동생들을 돌봐왔다. 가까이 사는 동생을 자주 불러다 밥을 먹였다. 아프다고 하면 들여다봤고 맹장수술 때는 간호도 했고 전세금도 빌려주었는데! 덜 여문 나는 그동안 동생에게 해준 것을 주워 삼켰다. 서운한 마음이 약해진 몸과 마음을 덮치려던 그때, 곧장 다시 걸려온 전화.


"언냐,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봐. 사다 줄게. 지금 막 뭘 하려던 참이었는데 심부름시키니까 귀찮은 마음에. 내가 은혜도 모르고 왜 그랬지. 사과합니다!"


옮을까 봐 동생을 내쫓듯 보내고 사다 준 죽을 먹는데 동생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언냐, 그거 갖다 주고 오는 길에 나 눈물 났어. 언니 너무 불쌍해서."


골골대고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아이부터 챙기는 내가 안쓰러웠던가. 미혼인 동생은 평소에도 "언냐, 엄마 되더니 진짜 다른 사람 됐네!"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아이를 대하는 나를 보며 참을성이 늘고 성격도 좋아졌다고 했다.


"그치 나 불쌍하지? 나도 엄마 있는데. 엄마 보살핌 받고 싶다!"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걱정할까 힘든 이야기는 잘 안 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앓는 소리가 술술 나왔다. 아이는 열이 많이 떨어졌지만 나는 한창 아픈데 애를 돌보며 일도 해야 한다고. 동생이 처음에 부탁을 거절해서 서운했다고. 엄마는 미혼인 동생이 '생 속'이라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라면서 묻는다.

"내가 갈까?"


옮으면 어쩌지 걱정 않고 딸이 안쓰러 3시간을 달려오려는 엄마와, 연세 있는데 옮을까 걱정돼 절대 오지 말라는 딸. 같이 '생 속'으로 태어났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시커먼 속'이 되어버린 엄마와 나는 서로 너무도 애틋하고 염려하는 동지가 되었다.


전화를 끊고 눈물이 났다. 레토릭 아니고 정말로. 고단했다. 한낱 독감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막강한 이 바이러스는 열을 39.5도까지 올렸고 오한과 근육통을 주었으며 코로나 때처럼 미각과 후각을 앗았다. 잘 없던 소화불량과 속쓰림도 생겼다. 아이는 설사와 뉘엿거림까지. 육신이라는 커다란 병에 갇혀 꿈틀대는 한낱 애벌레처럼 힘겨웠다. 아픈 아이를 지켜보는 것도 육신의 고통만큼 힘겨웠다. 통증에 무디고 '시간이 약이지' 하며 뭐든 견디는 데 익숙하던 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고통 앞에 단단했던 몸과 마음이 물렁하다 못해 물컹해진다는 의미였다. 고통을 새겨 더 나은 자신이 된다는 말들에 코웃음을 치게 되는 거였다.


"제게 아팠던 경험은 언제나 대단히 유익합니다. 어떤 면에서든 저를 아프게 하지 않았던 경험으로부터는 거의 배운 게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분노와 애정>, 앨리스 워커

- 예전 같으면 밑줄 쳤을 이런 문장에 이젠 코웃음이 나...


놀라운 건, 지금까지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게 내 몫이라는 걸 한 번도 불평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적이 없다는 거다. 그건 아마도 혹독한 환경에서 놀라울 정도로 엄마됨을 수행했던 우리 엄마, 정덕남 씨 때문이 아닐까. 모성을 타고나지 않아도 나를 품어주는 이에게서 맡은 냄새와 지켜본 몸짓과 태도가 DNA처럼 새겨져 버린 게 아닐까. 사회에서 북돋는 엄마됨을 내면화하지 않으려 그렇게 애썼지만 나의 엄마에게서 나도 모르게 배운 것 앞에선 도리가 없었다.


아이는 꼬박 5일 열이 났다. 6일째 미열 수준으로 떨어진 걸 확인하고는 끝이구나 안심했는데, 7일째 되는 날 다시 치솟은 열! 이번엔 폐렴이었다. 아이가 폐렴약을 먹으며 낫는 동안 내가 폐렴에 걸렸고 동생과 남편이 차례로 B형 독감에 걸렸다. 완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