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울렸고 정신과에 갔다

by 활보

"네, 말씀해 보세요."

"얼마 전에 제주도에 지진이 일어나서 재난문자가 왔었잖아요? 그 알림 소리에 너무 놀라서... 제 안에 어떤 버튼이 눌러진 것 같아요."


그리 넓지 않지만 환한 진료실, 마스크 위로 동그랗게 뜬 의사선생님의 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라 유리 칸막이를 마주한 채였지만 미리 한 번 적어본 대로 증상을 차근차근 설명해보려고 애썼다. 집중하며 끄덕이는 선생님의 고갯짓을 보자 긴장이 풀어졌다. 마스크 없는 얼굴로 웃어주셨다면 손을 덥석 잡았을지도 모른다.


신도시의 유명한 정신건강의학과들은 가장 빠른 예약이 두 달 뒤였다. 그렇다고 약부터 처방해주는, 예약 없이도 갈 수 있는 곳은 내키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면서 약으로 잠재우지 않고 정확한 상태를 알고 싶었다. 마냥 버틸 수는 없어 남편이 추천한, 환자가 별로 없다는 옆 도시의 한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광역버스를 탔다.


의사선생님께 2016년에 겪은 경주 지진, 그 후로 비행기를 못 타게 된 속사정, 엘리베이터만 흔들려도 무서웠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가장 최근의 지진 재난문자 경보음, 이후 시작된 어떤 떨림과 두근거림에 대해서, 저절로 되던 숨쉬기가 쉽거나 편하지 않다고, 불편한 기분을 잠재우려 영상이나 책에 몰두하려 해도 집중할 수 없고 마냥 불안하기만 한 상태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선생님, 이거 공황장애인가요?"

"아뇨. 공황장애로 오시는 분들은 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죠."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그럼 지진 때문에 온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인가요?"

"네, 관계가 있죠."


지진을 혼자 겪은 게 아닌데 가족 중에 나만 이런 건 내 성격이나 타고난 기질, 근래의 상태 때문일 것이라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앞으로 괜찮을 거라고 했다. 검사가 필요없냐는 질문에도 "굳이"라고 덧붙이면서.


진료실 문을 나서자 다 나은 것 같았다. 나의 증상이 정말로 가벼운 것이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별 것 아니라는 식의 그의 태도가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괜히 호들갑을 떨었나 머쓱했을 정도로.


선생님이 처방해준 한달 치 약을 보급품처럼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약 없이도 점점 괜찮아졌다. 전력질주 후에 가쁜 숨이 차차 가라앉는 것처럼 이대로 예전으로 돌아가겠구나 안도하던 날, 다시 증상이 튀어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커피숍 계산대에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병원.


"아니, 왜 또 오셨어요?"

커피숍 이야기를 했더니,

"그럴 수 있어요.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약은 드셨어요?"

"아뇨. 힘들면 먹으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맨처음보다는 힘들진 않은 것 같아서요."

"잘했어요. 안 먹는 게 낫죠. 스트레스 받거나 힘들면 다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복식호흡을 평소에도 많이 하세요. 그래야 재난문자처럼 갑자기 긴장 상태가 될 때 도움이 됩니다. 운동도 좀 하시고요."


"아니 선생님, 복식호흡으로 이 어마무시한 증세를요?"라는 질문은 꿀꺽 삼켰다. 첫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라 비교할 대상이 없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는 좀 달랐다. 약의 도움을 받아보라던가 검사를 해보라던가 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알아보라든가, 병원을 가기 전 예상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복식호흡이라는 처방만 챙겨들고, 이번에는 약도 없이 병원 문을 나섰다.


그 후로 두 번 더 증세가 나타났다. 간선도로에서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해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우기도(이때는 '천심'이라는 약국에서 파는 약을 마셨다. 우황청심원 같은 건데 기전이 다르다고 한다. 불안증세에는 우황청심원이 아니라 천심! 가격도 1500원으로 무척 싸다), 코로나에 걸린 뒤 3주 만에 커피를 마시고 심장이 요동쳐 불안 증세가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겪었으면서 어쩐지 처방약은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못 견디겠으면 먹으라고 했는데 못 견딜 일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지난번 먹지 않았을 때 선생님께 들은 "잘했어요" 한마디가 자꾸 생각나기도 해서. 말 잘 듣고 인내심 쩌는 K장녀가 인정받으려는 욕구까지 있었으니, 승산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약 3년간 아무런 증상도, 증상이 오려는 약간의 기미도 없이 잘 지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미칠 것 같아"를 레토릭이 아니라 온몸을 관통하는 꽤나 구체적인 감각으로 이해한다. 어찌 할 바 모르는 상태. 글로는 도무지 진부하게밖에 표현할 길 없는.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무엇 같다가도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이 된 듯 끝도 없이 아득해지는 기분. 허리통증, 변비 같은 구체적인 실체가 아니라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인데도 어디인지 환부를 찾을 수 없어 막막한. 그럼에도 증세는 꽤나 강력해서 모른척 넘길 수도 없고 참아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공황 증세가 가져다준 변화. 남자친구와 이별하고도 한 끼 정도는 예의상 깨작대다 먹성 좋게 끼니를 거르지 않았던 내가 식욕이라는 걸 잃었(었)다. 뭘 해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저절로 2kg 줄었다, 물론 다시 쪘지만. 심장이 뛰는 것을 뇌가 공황으로 오해할까봐 카페인 든 커피를 끊고 디카페인의 세계로 들어섰다. 임신 기간까지 포함해 20년 넘게 카페인에 절여진 몸이 서서히 정화되었다. 그리고 복식호흡의 생활화. 잠이 오지 않을 때, 운전할 때, 문득 생각나는 아무 때나 나는 복식호흡, 정확히는 흉곽+코호흡을 한다. <호흡의 기술>이라는 책도 읽었다.


인체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지구의 초기 유산소 생명체에서 진화해 온 그 반응을 모방하는 것, 특히 “강한 전자수용체”인 산소를 지속적으로 우리 몸에 범람시키는 것이다. 느리게, 더 적게, 그리고 코로 숨을 쉬는 것이 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몸 안의 호흡 기체 농도가 균형을 이룸으로써, 최대한 많은 산소가 최대한 많은 조직에 전달되어 우리 세포의 전자 반응성이 최대화된다. - <호흡의 기술> 中


나는 그렇게 코호흡의 달인이 되었다. 작은 떨림들, 긴장들이 신경을 타고 가다 결국 어느 한곳을 눌러 꽉 막아버리진 않을까 싶을 때면 몸속을 산소로 가득 채워 터뜨려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들이쉬고, 미세한 그것들을 몸밖으로 다 내쫓아버리겠다는 결기로 끝까지 숨을 내뿜는다. 이 모든 것은 글로 적어놓은 것처럼 파워풀하진 않아서 아주 느리고 비교적 조용히(내쉴 때는 윙 드라이기 소리 같은 게 나기도 하지만) 이뤄진다. 그 날숨과 들숨이 나를 지탱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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